리디노미네이션, 온라인은 "좋아요" 은행에선 "싫어요"
2011년 4월 전북 김제시의 한 마늘밭에서 5만원권 22만장이 발견됐다.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숨긴 110억7800만원이다. 당시 언론은 '발행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5만원이 지하로 숨는다'고 보도했다. 5년이 지난 2016년 6월 21일.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화폐단위가 너무 커졌다"며 리디노미네이션을 주장했다. 화폐 가치를 그대로 두고 숫자 0을 줄이자는 뜻이다. 같은 날 이재명 성남시장도 페이스북에서 "화폐개혁으로 지하에 숨겨진 현금을 찾자"고 주장했다. ◆비용 문제로 번번히 무산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화폐발행잔액은 5월 기준 91조2878억7100만원이다. 이 가운데 5만원권이 69조3784억5200만원을 차지한다. 화폐발행잔액은 한국은행이 내놓은 화폐에서 환수한 돈을 빼고 시중에 남은 금액이다. 고액화폐가 돌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화폐개혁은 1962년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주요국과 화폐단위가 점차 벌어져 1달러에 붙는 원화표기에 0만 세 개가 들어간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경우다. 이에 국격과 편의성, 지하자금 회수 등을 이유로 화폐개혁 논의가 이어져왔지만,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로 멈추곤 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디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지면서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이미 젊은 세대 사이에선 '0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들만의 화폐개혁이 이어지고 있다. ◆"진짜로 바뀔라" 은행원은 불안 온라인 게임에서 이뤄지는 가격 흥정에서는 0이 사라진지 오래다. '피파 온라인'을 즐긴다는 이모(28)씨는 "토레스는 3, 이동국은 0.7에 트레이드 되는 식"이라며 "각각 3억원과 7000만원을 줄여서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게임에서는 0이 모두 나오지만, 게이머 사이에선 줄여쓰기가 일상적이라는 설명이다.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도 댓글에서 흥정할 때 0을 빼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카페에서도 화폐 단위를 소수점으로 쓰는 경향이다. 4500원짜리 커피를 4.5로 표기하는 식이다. 나모(32)씨는 "서구식 표기법을 그대로 따라 쓰다보니 익숙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반면, 일선 은행원들은 일부 문화로 이어지는 화폐개혁이 현실로 닥칠까 두렵다. 달라지는 환경에 가장먼저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원 김모(35)씨는 "인프라구축과 실무적응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피곤해진다"며 "새로 들여놔야하는 기계들이 생길테고, 그걸 관리하고 구매 예산 편성 하느라 힘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상화폐 다루는 프로그래머 '느긋' 게임 업계는 느긋하다. 실제 돈의 유통을 책임지는 은행과 달리, 가상공간의 표기방식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 김모(30)씨는 "게임은 현실의 가치를 어느정도 반영한다"며 "실제 화폐에서 0이 줄어든다면, 게임 내 화폐들도 그 점을 반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 세상에선 리디노미네이션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혼란이 크다는 이유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전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