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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너 > 김상회의 사주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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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도시의 명당

시골과 도시의 모습이 차이를 보이는 건 관점에 따라 답변은 달라지겠지만 지형 즉 땅의 형세일 것이다. 시골은 인위적 개발의 흔적보다는 자연 형태의 지형이 살아있다. 도시는 지형이란 걸 찾아보기 어렵다. 작은 귀퉁이 땅이라도 모두 개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도시는 빌딩과 주택으로 가득 차고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놓이면서 지형이 사라져 버렸다. 자연 지형이 사라진 도시이지만 그곳에서 좋은 터를 찾고 싶어 한다. 수많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땅 그곳에서 좋은 터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풍수는 지형을 기반으로 길흉화복을 설명하지만 지형이 사라진 도시에서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풍수는 죽은 사람의 공간인 음택과 산 사람의 공간인 양택으로 나누며 도시에서는 집과 생활을 위주로 한 양택풍수가 주를 이룬다. 양택풍수에서 좋은 터로 꼽는 곳은 햇볕이 잘 드는 곳이다. 흔히 말하는 양지바른 곳인데 햇볕이 모든 생물의 에너지를 만들어 주는 것처럼 사람 역시 햇볕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는다. 해가 잘 드는 집터가 명당이고 집값이 비싼 이유가 있는 것이다. 햇볕과 땅의 좋은 기운이 항상 가득하다면 그곳이 좋은 터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도로가 모이는 곳을 길지로 친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좋은 기가 모이듯 도시에서는 도로가 만나는 곳에 기가 모인다. 도로가 잘 연결된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들고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생활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 좋은 터라고 할 수 있다. 사업을 시작하며 사무실을 구할 때는 이렇게 도로가 모이는 곳의 건물을 택하는 게 좋다. 그런 건물에서는 재물이 쌓이고 복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온다. 자연의 지형을 볼 수 는 없겠지만 좋은 터를 고르고 응용하는 지혜를 찾길 바란다.

2020-11-17 06:06:5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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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라떼는 말이야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말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특히나 젊은 사람을 보면 말이 더 많아지는 특이한 현상이 생긴다. 어찌 보면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세상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일러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사람을 고를 때는 말이지~" "집을 사려면 이런 것부터~" "일할 때 중요한 건 말야~" 그런데 자꾸 말이 많아지면 젊은 사람들이 주변에 오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자꾸 건네니 듣기도 싫고 잔소리 같아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이 오지랖이 넓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흔히 노파심이라고 하는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의견 표현이 지나쳐 참견이나 간섭으로 보이는 수준이 될 때다. 그럴 때 나이 든 사람은 이런 말을 떠올려야 한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이 말은 젊은 사람과 같이 잘 지내려면 쓸데없는 간섭보다 실질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팔자에 식신과 상관이 많다면 나이 들수록 말을 더 자제해야 한다. 그런 사주는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아 적극적으로 참견하고 의견을 내놓곤 한다. 이런 사람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정이 많다. 나쁜 게 아닌데 지나친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긴다. 장성살 팔자는 더 조심해야 한다. 남의 생각은 무시하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는 사주여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심한 지적 질로 보일 수 있다. 지적 질이 심하면 젊은 사람은 차치하고 자기 자식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그런 지혜를 멀리하면 안 된다. 내 말이 무조건 맞는다는 식의 태도는 버려야 한다. 나이 들어 젊은 자식들과 재미있게 어울려 살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0-11-16 06:06:2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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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갑질과 텃세

권력이나 재물 또는 직급이 우위라는 이유로 이런 저런 종류의 갑질로 사회면을 장식하는 기사를 보게 된다. 갑질은 알게 모르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일으키고 당하는 사람들의 차이만 있을 뿐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드는 생각이 갑질과 텃세가 근본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흔히 보고 듣게 되는 텃세도 사실 따지고 보면 갑질 그 이상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다. 귀촌 또는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지방 시골의 어느 마을에 자리를 잡으려 할 때도 그 마을에 제대로 정착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를 그 동네 주민들의 텃세장벽이라고 들었다. 청소년들의 워너비가 된 아이돌스타도 각자간의 개성차도 있으나 선임들로 인한다고 들린다. 회사에 처음 입사한 신참들도 일 자체보다도 먼저 입사한 선배들의 기분을 얼마나 잘 맞추냐에 따라 직장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판가름 난다고 한다. 절에 다니는 어떤 신도는 절 안에서도 터줏대감 같은 노보살들이나 목소리 큰 선임 신도들의 비위 맞추는 것이 스님 모시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고 얘기한다. 이런 이유로 절에 나가는 것을 그만 두거나 아예 신도로서 존재감을 나타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큰 사찰에 본인기도만 하러 잠깐씩 다녀온다고도 하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약육강식이 밑바탕 된 인간사회의 존재성의 모순이 바로 갑질이자 텃세가 아니겠나 싶다. 이런 까닭에 오래된 터나 건물 절이나 집에 가게 되면 그 터를 지키는 오래된 신장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이나 저 세상의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들 역시 그 장소를 선점한 특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존재형태를 달리하는 기운과 에너지를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20-11-13 06:05:5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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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연월일시의 함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통은 내 눈에 보이고 들을 수 있으며 내 손으로 만져본 것만을 믿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 2차원의 세계다. 거기에 시간의 개념을 직선적으로만 이해한다면 역시 단순 3차원의 세계가 될 것이다. 또한 내 생각이 그리는 대로 세계가 만들어짐을 안다면 굳이 내 밖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신에게 빌기 바쁘다. 불교신자들 역시 불보살님들에게 기대고 그저 이렇게 되게 해주십사 저렇게 되게 해주십사 빌고 또 비는 것이다. 그러나 비는 것을 멈추고 내가 이렇게 되겠다라고 마음먹으면서 계획을 세우고 생각한 바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시간이 갈수록 어제보다 더 강해진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내가 독불장군처럼 고집 세게 군다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가 세운 계획대로 진행해 나갈 따름이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약화시키고 긍정의 힘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설사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면 그 때 바로 알아차리면서 "나무관세음보살!" 또는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되뇌기만 해도 올라오던 어두운 의식들은 신기하게도 자리를 감춘다. 마음을 깨치고 보니 눈에 보이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 아닌 것이 없더라고 말한다. 그러니 2차원 3차원인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혜가 열리니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사주학 역시 인간의 직관이 통찰해 낸 천지자연의 에너지요소와 흐름을 기호화 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우주학적 기호로 서로 상호작용하는 양식을 대입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팔자 여덟 글자는 씨실이 되고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연월일시는 날실이 되어 함수적으로 작용하여 인생길이 펼쳐지는 공식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2020-11-12 06:05:1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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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약속은 발복의 시작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게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겠지만 약속 잘 지키는 걸 첫손에 꼽고 싶다. 약속이란 다른 사람과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는 걸 말한다. 약속은 누군가와 만나기로 정한 시간 약속이 있고 업무와 관련해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약속이다. 빌린 돈을 언제까지 갚겠다고 하는 것 역시 약속이다. 약속은 실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약속을 잘 지키는 건 누구에게나 중요하겠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중요하다. 재물을 많이 얻기를 원한다면 신뢰는 필수 조건이다. 사업 파트너나 거래처와의 관계에서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산가나 기업 경영자들의 사주를 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모두 재물운이 대단하거나 사업에 잘 맞는 팔자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경영자는 사업이 아니라 오히려 월급쟁이 사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가 자산을 많이 모으고 사업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신뢰를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곤 한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신뢰를 잃으면 모든 걸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별것 아닌 약속에서부터 무척 중요한 일까지 누군가와 약속한다. 그리고 가끔은 약속을 어기거나 무시한다. 그 정도야 별일 아니니까 하거나 큰일이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사주에도 없는 큰 자산을 일군 사람들의 말에 비추어 보면 작은 약속들이 복을 불러오는 씨앗이다. 어떤 약속이든 충실히 지키는 습관이 몸에 익으면 큰 약속도 어기지 않게 된다. 잘 지키면 생각지도 않은 복이 그 줄을 타고 건너온다고 한다. 별것 아닌 약속을 잘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인생이 달라지는 발복의 운세를 만들 수 있다.

2020-11-11 06:04:5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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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수능 기도

어느 해이든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항상 힘겨웠지만 올해는 고생이 더 심하다. 감염병 때문에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했고 상황이 좋아져 어쩌다 등교를 해도 제대로 된 수업을 받기는 힘든 지경이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답답하고 입시에 관해 선생님의 세심한 지도도 받기 힘들었다. 입시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지금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대입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일 것이다. 수험생도 고생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합격기도 올리는 어머니들이 많아졌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자식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기도이다. 필자가 주석하는 월광사에도 수험생 부모들이 찾아와 정성 어린 기도를 올리곤 한다. 자식을 향한 마음을 담을 땐 주로 칠성기도를 올린다. 칠성기도는 자식이 지혜롭고 총명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때 올리는 기도이다. 기도에 나선 부모들을 보면 자식을 위해 공덕을 쌓고자 하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때는 뜻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잘 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면서 남들의 불행을 바란다면 부처님이 가피를 내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복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기도도 효험이 생긴다. 그래야 자기가 쌓은 공덕이 자식에게 좋은 운세로 전해지는 것이다. 때로는 행운만 바라고 기도한 사람은 원하는 성과가 없었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기도는 두 손만 모은다고 효험이 생기지 않는다. 자기를 바르게 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야 가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0-11-10 06:04:2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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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의심하지 마라

티벳불교의 달라이라마 존자는 불교를 수행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힘과 긍정적인 힘 사이에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빛의 존재로 얘기하는데 빛의 의미는 사람을 살리는 긍정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저항치 않고 따랐다. 절체절명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믿음을 보았으니 그만 되었다고 이삭을 온전히 돌려주며 축복을 보장한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이 명약을 찾을 때도 사람을 살리는 명약은 깊은 산속의 신비한 어느 약초라기보다는 이름 모를 풀이라 할지라도 그 풀이 나를 살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명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효과 없는 가짜 약이나 꾸며낸 치료법을 환자에게 썼을 때 환자들의 긍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얘기도 아니며 이처럼 의학계에서는 어떻게 마음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병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플라시보효과'라는 고유명사까지 있지 않은가. 그렇듯이 우리가 소원을 빌 때 어떤 작정기도를 할 때도 우리 마음속에 믿음을 심어야 한다. 의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면 이는 여우가 꼬리를 이쪽으로 획 돌렷다가 저쪽으로 획 돌리며 될까, 아닐까를 의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의심은 그 어느 짝에도 소용없는 짓이다.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마음을 우선적으로 긍정토대로 단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기도에 임한다면 혹여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당장 소원이 이뤄진 것 같지 않은데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증명되는 사실이 있다.

2020-11-09 06:04:0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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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동지섣달 긴 겨울이 곧 오는데

11월7일은 입동으로 달 반이 지나면 동지인데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고 밤의 길이가 제일 긴 날인데 금년에는 12월 21일 이다. 글자 그대로 겨울 동(冬)자에 갈 데까지 이르렀다는 뜻의 '이를 지(至)자'를 써서 동지라 하고 하지(夏至)와는 정반대다. 하지부터 짧아진 낮이 동지에는 극한에 이르러 낮이 가장 짧다. 그 옛날 긴 겨울밤의 정취를 잊을 수 없는 것 중에는 멀리서 야경을 도는 딱따기 소리가 아련히 들리고 '메밀묵 찹쌀떡'하고 외치는 소리가 정겨웠다. 석유 등잔이 한쪽 벽에 가물거리고 형제자매들이 화로 불에 둘러 앉아 손바닥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면서 여우모양 부엉이 허수아비 주전자 새가 날아간 모양을 만들면서 놀다가 마루에 놓아 딴딴히 언 시루떡을 석쇠에 놓고 구워서 먹거나 메밀국수를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던 생각이 난다. 야경 도는 아저씨들이 창문 밑으로 지나가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리면 무슨 소리인가 귀가 쫑긋하기도 했다. 눈이라도 오는 밤이면 '사각 사각' 소리를 내면서 쌓이는 눈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들려주는 귀신이야기나 옛날이야기에 졸린 줄도 모르고 들었다. 밤의 길이가 동지를 정점으로 그다음부터는 낮의 길이가 늘어나므로 옛 선조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여겼는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동짓날을 아세(亞歲)라고 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작은설이라고 했다. 중국의 주나라에서는 동짓달을 새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양(陽)의 기운이 새로이 점증하는 것에 중점을 둔 까닭이다. 우리나라 궁중에서는 이날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을 베풀었다고 하며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란 어새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2020-11-06 06:03:4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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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노후빈곤 팔자

은퇴시기를 앞두고 노후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얘기를 감안해 보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지만 노후빈곤은 정말 문제가 된다. 운세감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기도 하다. 며칠 전 P씨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려 하는데 임금 피크제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명퇴를 하여 현금을 좀 받은 연후에 급여가 적더라도 뭔가 다른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상담을 왔다. 오십대 초반인 P씨는 곧 바뀔 대운부터는 겁재운이 들어오니 이럴 경우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근심이 일고 돈을 쓸 일이 생긴다. 이럴 경우에는 차라리 임금피크제라 할지라도 조직에 적을 두는 것이 방책이 된다. 팔자구조를 살필 때 타고난 생년월일 자체는 체(體) 즉 몸이라고 본다. 태어난 후에 맞게 되는 대운은 용(用)이라 하여 몸이 받아들이고 부딪히게 되는 바람이나 햇살, 비와 구름이 어떻게 펼쳐지냐를 판가름하는 기호가 된다. 기운은 쉬지 않고 흐르는 게 법칙인지라 타고난 몸은 바꿀 수가 없지만 시간이 가면서 맞게 되는 운이 나의 몸에 도움이 되는 기운이라면 분명 몸에도 좋아 건강하고 뜻하는 바도 여의하다. 따라서 살아가는 동안 계속 힘이 되는 기운이 대운으로 들어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복덕이 구족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뭔가 나의 몸에 충이 되고 형, 파가 되는 흐름이 오게 된다면 인생에 굴곡과 풍파가 이어진다. 그 가운데 매년의 운기 흐름도 중요하여 대운이 좋은 기간에 세운까지 받쳐준다면 그런 해는 일생일대의 경사를 맞게 되는 시기가 된다. 따라서 초년에 좋은 대운이 오는 것보다 중후반으로 갈수록 도와주는 대운이 오는 것을 명리학에서는 더 귀하게 여긴다. 노후에 드는 겁재 대운은 각별히 노후빈곤과 연결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2020-11-05 06:03:2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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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음택 풍수

인간은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종내는 죽음을 맞이한다. 너무나 당연한 존재로서의 생로병사의 과정이지만 아무래도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니 육신은 무너져도 영혼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와 통찰을 갖게 했으며 이는 죽음을 추모하는 의식과 예의를 규범화시켰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각별히 음택풍수라 하여 묏자리를 고름에 거의 지질학에 철학을 더한 것과 유사한 이론을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볕이 잘 들며 바람이 잘 통하는 그러면서 묘터 아래쪽으로 수맥은 흐르지 않으나 뒤로는 임산에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산중턱 정도를 최고의 명당자리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토질이 적당히 붉은 황토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쯤 되면 산사람을 위해서도 찾기 힘든 최고의 택지가 될 판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좌청룡 우백호의 포근한 산자락은 예로부터 고관대작이나 재력가 아니면 장만할 수 없는 음택지가 되는 것이다. 조상님들을 모시는 선산이 있는 가문들도 있지만 성묘 다니는 일이 만만치 않아가는 데다가 요즘 의식이 나날이 달라지고 있어 부모나 조상님들의 산소 돌보는 일은 점점 기대를 못할 것 같다며 아예 화장을 하겠다는 어른들도 많다. 제사조차 지내기 싫어하는 세태를 반영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어느 때부터인가는 화장한 유골을 모시는 추모공원이 늘어남은 물론 수목장 또한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문상 가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절이지만 장례풍속과 문화도 그 모양새가 많이 달라지는 추세다. 요즘이야 절대적으로 부족한 매장지로 인해 땅값이 워낙 비싼 터라 화장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으니 음택풍수니 양택풍수니 따질 상황도 못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나마 음택풍수를 논하던 시절이 호시절이었던 듯싶다.

2020-11-04 06:02:2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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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듯

지인들과 점심을 한 후 차를 마시려 카페에 들렸다. 코로나로 인해 조심스럽긴 했지만 밥만 먹고 헤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음식점 근처 커피 전문점에 들렀는데 한 테이블 건너 손님들이 않도록 배치되었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는데 마주보는 테이블에 두 청년이 커피를 시켜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채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같은 회사명이 박힌 점퍼를 입은 것으로 보아 직장 동료로 보였다. 앉은 의자 옆의 벽과 팔걸이에 머리와 어깨를 기대고 잠든 모습이 몹시 불편해 보였으나 필자 일행이 시킨 커피를 마시고 나오는 순간 까지도 그들은 잠을 깨지 않았다. 그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신도는 "아휴 안됐네요. 일이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찻집에서 잠을 청하나요?.." 한다. 또 다른 신도는 "아마 어젯밤에 술자리가 길어져 밤잠을 거의 못자고 출근했을 수도 있었겠죠."라고 답했다. 무슨 까닭으로 저들이 사람이 붐비는 점심시간 찻집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는지는 각각의 짐작대로 얘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다. 보통 자기감정대로 보고 판단한다는 얘기다. 작금의 예를 들어 어느 전 장관 사태나 어느 장관 아들의 군휴가 문제의 경우 각각 지지하는 정당 성향에 따라 쏟아내는 댓글이나 비판이 아예 첨예하게 다른 것은 바로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려 하는 인간 사고와 감정의 편향성을 나타낸다.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그대로의 실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한다. 보이는 대로 보되 그 실상까지 볼 수 있음을 말한다. 그 사람의 성격과 경향성을 판단하는데 사주명조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팔자학은 여실지견의 바탕이 되는 셈이다.

2020-11-03 06:01:3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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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마음이 우주

얼마 전에 '양자물리학이 밝힌 기적의 원리'라는 내용을 지인이 보내왔다. 생각하면 이루어지는 이유를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내 생각이 내 현실을 만든다는 것, 우주를 가득 채운 양자는 우리의 생각 에너지에 바로 반응한다. 이 얘기는 이미 석가모니부처님이 이천 육백년 전에 깊은 수행을 통해서 직관하고 통찰해 낸 바이며 불교 교학의 중요한 중심축 중의 하나이다. 특히 대승불교로 발전하면서 화엄사상에 면면히 녹아 있는 주장 아니던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사가 만물이 마음이 만든다는 것이 화엄경을 관통하는 가르침임을 생각해낸다면 양자물리학에서 하는 생각에너지가 놀라운 신발견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행, 불행은 물론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주인이 될 수 있다. 대개는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될 때 어떤 주장이나 이론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합리적 추론의 범위는 눈에 보이고 들을 수 있는 범위로만 국한시키는 것을 과학이라고 단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과학은 옛 선인들의 통찰을 증명해내느라 정신이 없을 것만 같다. 서양의 근현대 물리학자들은 반야심경에 보이는 공(空)사상에 대하여 찬탄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그 옛날에 뻔히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이 공하다고 통찰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직관할 수 있는 근거는 보는 기능을 하는 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마음작용, 식(識)에서 꿰뚫어 본 것이다. 어이됐거나 양자물리학의 물질과 마음에 대한 인식은 불교적 세계관을 떠나서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마음이 우주이니 나의 마음이 우주의 주인도 되고 종도 될 수 있다.

2020-11-02 06:00:2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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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말의 공식

도움이 되는 말을 할 때도 원칙이 있음을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로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만약 수행자가 다른 이의 잘못을 들추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먼저 다섯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반드시 사실이어야 한다. 둘째는 조언할 때를 잘 알아서 말해야 한다. 셋째는 이치에 합당해야 한다. 넷째는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 다섯째는 자비심으로 말해야 한다." 사리불은 이어서 묻는다. "하지만 진실한 말을 했는데도 성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은 "그에게는 그것이 사실이며 자비로운 마음에서 말한 것임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사리불은 또 묻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해 "누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말하더라도 그에게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원망하기 보다는 불쌍한 마음을 일으켜라." 사리불은 한 번 더 묻는다. "그러나 진실한 말을 해도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은 대답하길 "만일 그가 아첨을 좋아하고 거짓되며 속이고 믿지 않으며 안팎으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게으르고 계율을 존중하지 않으며 열반을 구하지 않고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이 많다면 그와는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이상의 내용은 잡아함경에 나오는 대목인데 잘못을 지적하는 다섯 가지 태도에 최선을 다해도 상대방이 듣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아첨을 좋아하거나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일 테니 함께 하지 말라 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상자들은 출가수행자들을 말하지만 일반 재가자들의 관계에도 충분히 적용시켜 볼 수 있다.

2020-10-30 06:00:3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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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반안살(攀鞍殺)의 기운

어제의 모친은 일이 잘되려고 그랬는지 백일이 무엇인지요, 천일기도라도 하겠습니다. 라며 방법을 물었다. 필자가 일러 준 방법대로 기도 입재는 월광사에서 하였고 중간 중간 초하루법회에도 참석을 했다. 코로나가 치성하여 초하루 법회를 개최하지는 못하였지만 얼마 전에 삼백일 기도를 마쳤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내친 김에 계속 기도를 하고 있다 했는데 그러던 중 기쁜 소식을 알려온 것이다. 제일 먼저 선생님께 알려드린다면서 그렇게 원하던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것이다. 면접시험은 남겨두고 있지만 필기시험을 합격했으니 그것 만 해도 다들 기뻐했다. 시험 준비 삼사년 동안 처음 필기시험에 붙은 것이었으며 물론 방심할 일은 아니지만 필자가 감정해본 바로는 면접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다. 운이 그렇게 얘기해주고 있다. 모친 역시 마지막 막바지를 위하여 더욱 겸손히 기도에 임하겠다 하였다. 자식을 위해 시작한 기도인데 매일매일 기도하는 자신의 마음이 뭔가 맑고 투명해지는 느낌이란다. 또한 기도를 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날들에 후회되고 부끄러운 일들이 왜 그리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바라는 마음 자체가 욕심 같기도 하여 그저 아들이 지치지 않고 노력하여 스스로 잘 이겨나가기를 발원하였다 한다. 어이되었거나 모친의 사주에 반안이 들 경우 자식의 발전을 보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사는 것이 팍팍한 어려운 살림살이를 산다 해도 어머니의 사주에 자식의 성공으로 인해 자랑스런 엄마가 되는 형상이 된다. 특히나 시지(時支)에 드는 반안은 노년 복이 있는 어머니로서 만약 자식의 운기 자체가 문창성에 정관성이 있는 경우라면 아들의 급제나 금의환향을 보는 형국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까.

2020-10-29 06:01:1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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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반안살(攀鞍殺)의 힘

필자로서는 때때로 보람을 느낄 적이 적지 않다. 찾아오는 분들의 인간관계나 사업의 발전, 어려움 등을 들으면서 나름 팔자의 견지에서의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알기에 팁을 드리게 되고 정말 도움이 되었다며 인사를 와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5월쯤 어느 어머니가 찾아왔다. 요즘 청년들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가? 아들은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매달린 지가 거의 4년이 되었단다.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했으나 그리 좋은 상위권 대학은 아니었다. 대기업엔 원서도 내보기 어렵고 하여 일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이 삼십이 되가는 것이다. 지켜보는 가족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지만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혹시나 자기 아들이 엄한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닌가 해 상담을 왔다. 필자 역시 사람들마다 자신의 타고난 사주에 따라 운이 닿는 분야가 다르기에 맞는 말씀이라며 생년월일 감명해 보았다. 신미생인 아들은 관성이 그리 강하진 않았지만 2020년에 일지에서 운을 도와주는 귀신이 작용하고 있었으며 일주의 지지에 인수성(印綬性)를 깔고 앉아 있었다. 이럴 경우 어머니의 기도는 필수적이다. 어머니는 병오생으로서 아들과 합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반안살이 시지에 있었다. 반안이 무엇이던가? 말안장에 앉아서 인사를 받는 상 아니던가? "어머니는 자식과 합이 들었고 아드님은 모친의 기도를 힘으로 삼고 있습니다. 게다가 모친은 시지에 반안이 들었으니 "필시 아들이 관대를 두름을 보고 말년이 심신이 평안한 운입니다. 2019년는 운이 약하지만 2020년엔 모친 역시 반안살이 힘을 받으니 아들의 운이 활성화가 됩니다. 아들의 시험합격을 위한 발원기도를 들어가시고 최소 백일기도는 하는게 좋겠습니다."

2020-10-28 06:00:2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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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당태종이 위대함

위대한 큰 인물일수록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다. 고언(苦言)이라 할지라도 대의가 있다면 받아들일 줄 안다. 대표적 인물에 당태종이 있다. 제왕의 눈치를 살피고 기분을 맞추려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 할 줄 아는 신하를 내치지 않고 중용한 것이다. 그가 위징(魏徵)이다. 당태종 이세민은 태자였던 형을 현무문에서 척살하고 제왕의 위치에 오른다. 위징은 원래 태자였던 이건성의 시종관으로 재직했다. 태자보다 건장하고 야망이 컸던 태종의 의도를 간파한 위징은 태자 이건성에게 동생 이세민을 제거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무문의 거사가 성공하여 이세민이 황제에 오르자 주변에서는 당연 위징을 벌줄 것을 건의하였다. 이세민은 위징의 정직함과 강직함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임명한다. 위징은 간의대부로 있으면서 무려 삼백번이나 상소와 같은 쓴소리 건의를 했다 한다. 태종은 어떨 때는 죽도록 화가 솟곤 했으나 사실 대의에 비추어 틀린 바가 없었기에 분을 참고 위징의 말을 따르다보니 정사가 바로 잡히곤 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신하의 바른 소리에 이런 정도의 인욕이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태종은 큰 인물이었다. 황제에게까지 할 소리를 하던 위징이 죽자 태종은 거울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며 비통해했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에게 잘못을 지적하려 들면 "알았어, 고만해!"하면서 말머리를 돌리거나 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싫은 소리를 참고들을 줄 아는 사이가 진정한 관계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주명리학적으로는 상관이 강하면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성향이 있다. 뭔가 경우에 맞지 않으면 직설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날리는 것이다.

2020-10-27 06:01:0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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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유령도 시대따라

어떤 영화가 곧 출시될 예정이라는데 '젤리'라 이름 붙여진 이 기운은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어떤 아가씨가 사람들의 마음을 함부로 조종하며 해로움을 주는 이 젤리들과 싸우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젤리는 죽었거나 또는 산 존재들이 뿜어내는 입증되지 않은 미세한 입자들의 응집체라고 한다. 현대판 유령의 또 다른 형상화이며 여기에다가 유령이라는 진부한 명칭 대신 '젤리'라는 뭔가 거부감이 덜하며 때로는 살짝 매혹적인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유령'이라는 개념은 뭔가 오싹하며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며 특별히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도 뭣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하기도 힘든 존재이다. 현대영화는 어떤 개념이나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 현대적이며 보다 감성이 수반된 접근을 당연시 여긴다. 이러한 시도는 보통 '재해석'이라는 알고리즘으로 홍보되기도 한다. 불가사의한 죽음 이후의 존재들 즉 유령과 같은 존재들과 산 사람들 간의 해프닝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라는 드라마나 근 삼십년 전 전 세계에 신선한 감동을 준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가 그 좋은 예지만 이 외에도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 젤리라 이름 붙여진 이 세상에 떠도는 어떠한 기운들은 젤리들의 생김새와 투명도에 따라 유해한 젤리와 무해한 젤리로 나눠진다고 한다. 결국 선한 유령과 악한 유령을 색상과 투명도로 구분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시각화를 좋아하는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춘 유령의 재해석화라고 보며 유령의 형상도 시대 따라 인간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리라.

2020-10-26 06:00:4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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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고부간 갈등 심한 편인살 (2)

시어머니는 후딱 하면 전화를 하여 이런 저런 요구를 하면서도 아들에게는 늘 말하길 "나는 너희 잘 사는 거 밖에 아무 것도 바라는 거 없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 냉장고가 오래 되어 바꿀 때가 되었다며 계속 얘기하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그냥 넘겨서였는지 꾸지람이 시작되었다. 이 때 며느리는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해 놓았다. 가시 돋친 시어머니의 목소리 톤이 점점 소리가 높아지더니 며느리에게 욕까지 마구하는 소리를 남편이 들었다. 평생 본 적도 들은 적 없는 어머니의 이중적 행태를 본 남편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들이 혹여 잘못을 하거나 할 때도 화도 잘 안냄은 물론 험한 말 한 마디도 아끼는 모친이 별 일도 아닌 일에 아내를 몰아세우며 흥분과 함께 욕설까지 하는 것을 들었다. 결혼해서 이십년을 지내오며 아내가 힘들어하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남편은 말하길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더 오래 사시겠냐 한다. 어머니의 이중성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직도 며느리의 몫이다. 이런 L여인은 신약한 편인살(偏印殺)격 즉 효신(梟身)격 사주이다. 효신은 소쩍새격 신살로서 기본적으로 시어머니로 인해 마음고생이 강하다. 시어머니로 힘들지 않다 해도 친정어머니가 자식에게 너무 집착하여 힘들게 하는 운이 되기도 한다. 인수가 같은 오행으로 만날 때 편인이라 부르지만 또 다른 별칭이 효신이다. 효신격이 되는 경우는 어머니의 실수로 자식을 곤란함에 빠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이기도 하다. 부엉이는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기도 한다 하여 효신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부엉이는 자라서 자립할 만할 때 어미부엉이를 공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2020-10-23 06:01:2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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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고부간 갈등 심한 편인살 (1)

시어머니들이 며느리 눈치를 보는 시대라 감히 편인살을 논하기가 맞지 않는듯하다. 오히려 할 말 다하고 수틀리면 남편과 아이들만 시댁에 보내며 자기 편한 위주로 하는 며느리들이 대세인 까닭이다. 좋은 뜻으로 말을 해도 고깝게 듣는 며느리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를 일러 필자는 후천운의 질서에 편입한 지구촌의 현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가끔은 시집 기운에 눌려 얼굴이 어두운 며느리들도 보게 되는데 며칠 전 상담을 온 L여인이 그 경우였다. L여인의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 같은 분이 없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어머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아들이라면 끔찍이 여기며 온갖 정성을 다 쏟는 어머니이니 어머니에 대한 아들들의 생각이 다 그러할 것이다. 남자들이 국방의무로 군대를 가면 고된 군사훈련이 끝나면 "어머니!~"하고 부르게 한단다. 그 때 울지 않는 장병들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특히나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그런 존재다. 자애롭고 아들이라면 목숨마저 내놓을 듯 희생과 사랑의 대명사인 어머니는 며느리에게는 매운 고추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러 심리학자들이 그 원인을 분석해 놓은 것이 다양하지만 L여인의 시어머니는 그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이중성을 지닌 분이다. 아들과 함께 있을 때는 며느리인 자신에게도 부드러운 말투와 교양 있는 어른의 모습이지만 며느리만 있을 때는 눈까지 흘겨가며 공연한 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성질에 못 이겨 욕까지 다반사라는 것이다. 남편에게 하소연을 해봐도 그럴 때마다 남편은 "우리 엄마가 얼마나 지혜롭고 자상한 분인데 무슨 그런.. 그리고 어머니가 당신을 얼마나 아끼시는데." 하는 반응이다. 이에 더 이상 말도 못하겠고 주말만 되면 시댁에 하루이상 보내고 와야 하는 것이 고역이 되었다.

2020-10-22 06:00:3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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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쓴 소리

보통은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좋아하고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이나 칭찬을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보기 싫은 장면은 아마도 지저분하거나 잔인한 장면일 텐데 솔직히 보기 싫은 장면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 폭력성이 심한 영화나 무서운 호러영화같은 것은 실제로 우리 인간의 의식 또는 무의식에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눈으로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즐기려 하는 것을 경계하는 정도면 가할 것이다. 필자의 상담얘기는 사주의 풀이이지 충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듣기 싫은 말에도 귀는 열어야 한다. 듣기 좋은 감언은 대부분 선의의 칭찬과는 달라서 단지 상대방의 마음을 취하려할 때 쓰는 방법이지 않은가? 다만 조언을 들을 때는 귀에 거슬리나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면 그 열매는 성장하기 마련이다. 쓴 풀들은 몸을 고치는 약초인 경우가 많은데 말 또한 듣기 거슬리는 말도 마음을 살리는 약초가 될 것이다. 고언(苦言)을 받아들여 훌륭한 치적을 쌓은 왕이나 황제들도 많고 일반인들 역시 귀에 쓴 소리를 겸허히 들어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 역시 부지기수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기에게 잘못을 지적하려 들면 "알았어, 고만해!"하면서 대부분 말머리를 자른다. 좋은 사이라면 싫은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이가 길게 가는 관계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잘못을 지적하려 할 때도 시간과 장소에 맞아야 한다. 잘못을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단 둘이 있을 때 해야 하는지 지금 하기에 적당한 상황이며 적당한 장소인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잘못을 치게 되면 단순히 야단치는 것이나 화풀이 하는 것으로 되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며 사이도 틀어질 공산이 높다.

2020-10-21 06:01:02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