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사태에 던진 교훈' 위기 맞받아친 중국, 해상실크로드 구축
정부가 11일 한진해운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화주와 물류기업을 위해 전담인력을 배치하는 등 뒷북 수습에 바쁜 모습이다. 물류대란을 빚은 한진해운 사태의 뼈 아픈 교훈은 '한 국가의 경제에서 해운업이 가진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업체의 자구노력을 탓하기 이전에 정부가 해운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부재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웃한 중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 정부의 대응은 너무나 안이했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위기 상황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맞추어 해운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중국 해운업 재편은 일대일로의 핵심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해운업의 재편은 일대일로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일대일로 중 일대가 철도와 도로를 통한 새로운 실크로드 구축이라면 일로는 해운을 통한 21세기 해상실크로드의 구축이다. 오늘날 전세계 무역의 90%가 해상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일대일로 전략의 핵심은 해운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2월 중국원양운수(COSCO)와 중국해운그룹(CSCL)의 합병으로 탄생한 중국원양해운(CCSG)는 일대일로에서 중요한 세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먼저 해상실크로드의 해상운송 부문 내 컨테이너 수송 정기선의 개통이다. 중국 해안에서 지중해, 흑해, 홍해로 이어지는 정기선의 수송량은 매년 300만 TEU( 20ft 길이의 표준 컨테이너 박스 1개)에 이를 전망이다. 또 다른 역할은 육상실크로드의 철도수운 복합운송 부문이다. 중국 철도컨테이너의 15%인 100만 TEU 가량이 매년 CCSG를 거쳐갈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CCSG는 200만 TEU의 컨테이너 운송능력을 가진 항만시설을 확보해 일대일로를 떠받치는 역할을 맡는다. 중국이 현재 추진 중인 13.5규획(제13차 5개년계획, 2016~2020년) 기간 CCSG는 컨테이너 허브항과 환적항을 구축하고, 일대일로로 연결된 국가의 컨테이너 부두를 발전시키며 신흥국가의 항만을 개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 CCSG는 지난 4월 그리스 최대 항만인 파레우스 터미널을 인수, 해상실크로드 내 유럽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CCSG에 이어 현재 중국이 합병을 추진 중인 차이나머천트와 시노트랜스 역시 합병 이후 일대일로에서 동남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해운업 구조조정 우선…대규모 자금 투입 이처럼 합병을 통한 초대형 중국 해운사의 탄생은 단순히 글로벌 해운업계의 위기에 대한 대응에 그치지 않고, 해상실크로드를 건설해 중국 주도의 무역질서를 구축한다는 중국 정부의 국가전략 차원에서 추진됐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해운업 부흥을 국가전략으로 승격시키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중국 선두 해운사들에 대한 합병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특히 일대일로를 위해 조선, 철강 등 다른 공급과잉산업에 앞서 속도감있게 추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먼저 합병이 완료된 CCSG는 중국 1, 2인 해운사인 COSCO와 CSCL의 결합으로 운용 선단 규모가 1250척, 운송량은 8500만 DWT(선박이 실제 실을 수 있는 중량)이 넘는다. 컨테이너선만 보자면 288척에 운송량은 158만3000 TEU에 달한다. 전체 운송량으로 보면 세계 1위이고, 컨테이너만 보면 세계 4위다. 부두 운용 규모 면에서도 9000만 TEU의 처리가 가능해 컨테이너 부두 물동량 세계 2위다. 몸집을 키운 CCSG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새판짜기를 주도할 수 있었다. CCSG는 프랑스의 CMA CGM, 홍콩의 OOCL, 대만의 에버그린라인 등과 오션얼라이언스 동맹을 만들어 해운시장의 주도권 장악에 나섰다. 이로 인해 2M, CKYHE, O3, G6 등 기존 4개 동맹 체제는 무너지고, 2M(덴마크의 머스크라인과 스위스의 MSC의 연합) 대 오션얼라이언스 2강체제가 들어섰다. 중국이 해운동맹을 주도한다는 것은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중국의 세계경영 토대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물론 글로벌 해운업계의 위기 상황에서 합병이 생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CCSG는 대규모 감원과 노후선박 해체 등 경영 효율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전략적 투자라는 차원에서 수출입은행을 통해 CCSG에 향후 5년간 95억달러(약 10조7000억원)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정부, 해운업 비전도 전략도 없어 이같은 중국 정부의 행보와 비교했을 때 해운업 위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비전도 전략도 없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해운사로 발돋움하기까지 한진해운이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유무형의 물류 인프라와 노하우는 이제 사라질 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운사들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물류네트워크가 사라질 경우 향후 더 커질 글로벌 물류시장 진출 전략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글로벌 물류시장은 2020년에 약 8.1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 예상된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의 확대와 아시아 중산층의 소비 증가 등으로 아시아 물류시장의 규모는 약 2.8조 달러에 달해 관련국의 각축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분단 현실로 인해 해운이 거의 유일한 상품의 국제운송로인 상황.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해운사의 법정관리나 퇴출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