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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너 > 김상회의 사주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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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선함이 이긴다

사람들은 악하고 못된 사람들이 더 잘산다고 얘기한다. 정말 그럴까. 돈이 많고 권력이 많다고 해서 그의 미래가 계속 행복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의 혜안이 짧을 뿐이다. 법구경에 나오는 글귀다. "악이 익기 전에는 악을 행한 자도 좋은 것을 누린다. 그러나 악이 익으면 그때 그는 악의 결과를 만난다." 또한, 선에 대해서도 댓귀가 있다. "선이 익기 전에는 선인도 악을 만난다. 그러나 선이 익으면 그때 선인은 선의 결과를 본다." 이 얼마나 자명한 의미인가. 그러기에 선을 행함에 서두르라 했고, 공덕을 짓는데 느슨한 사람의 마음은 벌써 악 속에서 즐거워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함일까. 세속에서의 선한 행위란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는 일로 우선 떠올린다. 즉 남을 위한 여러 종류의 배려와 물질적 베품 등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선함 전부라고 본다면 오히려 이것은 선함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불가에서는 불선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짓는 것을 선하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십선업이라 하여 몸과 말과 뜻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즉 다른 사람을 살생하거나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 사음하는 행위, 정신을 해롭게 하는 약물이나 음주 행위, 남을 속이는 말, 허망한 말, 이중적인 말, 악담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을 선한 업이라 본다. 제 생각을 바르게 단속하는 것은 세속적 의미의 선함과도 일치된다. 남에 대한 악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자애심이 발현될 수 있을까. 세속적 선함의 행위는 자애와 연민 심이 발하여 실천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기만이나 이간질을 삼가는 것 자체도 물질적 보시 못지않은 선행이자 선한 일이라 본다.

2020-04-22 05:51:4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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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위선양환(爲善兩歡)

"선한 일을 하면 현세와 후세 양쪽에서 모두 기뻐하게 된다."는 글이 있다. '위선양환'(爲善兩歡)을 말함이다. 지금 하는 일이 선하다면 분명 그 과보가 좋다는 뜻이다. 이 말은 법구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래의 내용을 보자면 금환후환 위선양환 궐위자우 수복열예(今歡後歡 爲善兩歡 厥爲自祐 受福悅豫)이니, "이승에서 기뻐하고 저승에서 기뻐하고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두 곳에서 기뻐한다. 선을 행했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복을 바로 받아 더 크게 기뻐한다."라는 내용이다. 사람 중에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고 복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을 바라면서도 성공과는 반대 방향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게 대부분이다. 또한, 복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복 밭의 기본을 지을 생각보다는, 그저 운이 좋아서 복을 받거나 성공한다고 치부한다. 혹여 요즘 세상이 살기가 힘들다 하여 금수저 타령만을 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불교에서는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전생, 전 전생에 그만한 복덕의 원인을 지었다고 본다. 이는 허망한 운명론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한 일을 한다면 현재가 곧 과거의 과보인 것이며 현재의 나의 모든 행위가 미래의 복 밭이 되는 의미이다. 반대로, 지금 뭔가 악한 일을 생각하고 악한 행동을 즐긴다면 그의 미래가 어찌 과보가 없겠는가. 그릇되고 악한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피하고 싫어한다. 역시 법구경에서는 위선양환에 대한 대꾸의 구절이 있다. '금회후회 위악양회 궐위자앙 수죄열뇌'(今悔後悔 爲惡兩悔 厥爲自殃 受罪熱惱)가 그것이다. 풀이해보자면, "이승에서 저승에서 뉘우치고 악을 행한 사람은 두 곳에서 뉘우친다. 악을 행한 생각에 스스로 책망하고 벌을 바로 받아 더 크게 고통받는다."

2020-04-21 05:51:1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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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1918년에 발생했다는 스페인 독감은 당시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이천만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한다. 독감은 의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유행성 인플루엔자'가 될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독감은 유럽 전선에까지 퍼진 것이다. 그 와중에 스페인 국왕이 독감에 걸리자, 참전국들이 전시검열로 보도를 통제할 때 스페인 매체가 독감의 발발을 대서특필하여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시 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사람들의 세 배가 넘는 희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의 발원지가 스페인이 아닌 미국이었다는 사실도 이었다. 당시의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백만명이 넘는 우리의 조상들이 이 독감에 걸렸었고 사망자는 약 14만명에 이렀다 하니 참으로 기막힌 대재앙이었다. 당시라면 대한제국이었던 한국은 지금과는 달리 교통 소통이 거의 비교도 안 될 만큼 낮았을 터인데도 어찌 그리도 끔찍한 대단위의 감염이 있게 된 것일까. 더우기 최초 발생지는 미국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 때도 중국이 의심받을 만했다. 당시 스페인 독감의 유력 슈퍼전파자는 1910년부터 1919년 사이에 미국으로 이주한 20만 명의 중국인이라는 학설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 아! 그래서 중국과 물류며 인적 교류가 많았던 우리나라에 독감이 창권하여 그토록 끔찍한 희생이 있었던 것이었구나! 우연의 일치치고는 금번의 코로나 사태 역시 발원지가 중국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탈리아 역시 중국에서 이태리로 관광 온 부부로 판명이 나지 않았는가. 중국이 국력이 강해지다 보니 바이러스의 발생지가 중국이 아닐 수도 있다며 슬쩍 호도하려고 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아 더 무섭다. 근데 보이는 것마저 부정하려는 태도는 도대체 뭐라 해야 할까.

2020-04-20 05:50:3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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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초인(超人)이 있다면

보통 초인이라 하면 뭔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도인(道人)을 말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사람보다 수십 배를 더한 힘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을 흔히 하는 말로 '수퍼맨'이라고 하듯 말이다. 또는 세상사의 영예나 권력을 초개처럼 여기며 정신의 자유를 즐기며 신선처럼 유유자적하는 사람이라 본다. 19세기 중후반을 빛 낸 독일의 철학자 중에 니체가 있다. 대표 저서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다. 난해한 책의 내용보다는 그 제목의 특이함으로 더 뇌리에 남아 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학창 시절에 독일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운운하던 책의 몇 구절에 이끌려 봤다. 자못 인생과 철학의 심오한 사색에 잠긴 얼굴로 사들었지만 끝내 마지막 장은커녕 반도 넘기지 못했다.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아마 그 책의 확연한 주제는 짜라투스트라가 외쳤다는 '초인'일 것이다. 초인이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는 게 그 저서를 관통하는 주제어가 아닐까. 니체가 말하고자 한 초인의 개념을 석가모니와 상통시키고 싶다. 사찰 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을 '대웅전'(大雄殿) 이라고 한다. 대웅이란 큰 영웅을 뜻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웅은 진정 자기 자신을 이긴 자를 말한다. 부처님을 영웅 중의 영웅이라 하여 대웅이라 존칭한 것, 대웅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명한 것이리라.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그러므로 그분에게 향하는 마음이다. 어떤 상황이나 경계에 부딪혀도 자신의 존엄성이나 온전함을 잃지 않는다. 경지에 이른 존재를 일러 '피안에 이른 자'라 하여 또 다른 말로는 '깨달음을 얻은 자'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계속 강조한다. 자등명 법등명 하여 그 열반의 자리를 어서 증득하라고. 초인이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고 사유해 본다.

2020-04-17 06:41:5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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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집밥은 보약

나들이라고 하면 야외로 나가거나 여행길에 나서는 걸 떠올린다. 그런 여건이 아닐 때는 가까운 서점으로 나들이를 하는 것도 특별하다. 최근 서점에 갔을 때는 음식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요리법을 알려주는 책, 다양한 외국 음식을 소개하는 책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음식은 약과 같다는 내용의 책도 있었다. 그 책이 눈길을 끌어당긴 건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음식과 약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의미이다. 음식이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표현이다. 현대의 음식문화를 보면 대부분 맛 위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외식과 배달 음식이 유행하면서 가정집에서도 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외식은 아무래도 보기에 화려하면서 맛은 자극적인 음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집에서 해 먹는 집밥은 가족 개개인의 취향과 건강을 생각해서 만드는 게 좋은 점이다. 건강을 배려해서 만드는 집밥은 그 자체로 약이 되는 셈이다. 음식을 만들 때는 몸에 좋은 음식을 고민하기 마련이다. 가족 중에서 오행의 목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보리밥에 콩으로 만든 반찬이 좋다. 사주 구성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음식이다. 화가 부족하면 쓴맛의 음식이 몸에 길한 반응을 보인다. 인삼, 은행, 영지버섯이 그런 맛을 지닌 음식들이다. 토가 부족한 사람은 단맛 음식을 즐기는 게 몸에 적합하다. 대표적으로 꿀이 있고 채소 중에는 양배추나 호박이 있다. 외식할 때는 이런 가족의 체질과 건강을 생각하면서 먹기에 힘든 점이 있다. 그러나 집밥은 만드는 사람이 재료를 조합하기가 수월하다. 집밥은 자연스럽게 건강식이 된다. 입에도 맛있고 종류도 많은 음식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2020-04-16 06:41:3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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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연등의 아름다움

빈자일등(貧者一燈)은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싶은 가난한 여자가 있었다. 돈이 없어서 구걸로 얻은 푼돈으로 간신히 작은 등 하나를 부처님에게 올렸다. 밤이 지나고 왕이 올린 좋은 등불도 모두 꺼졌지만 작은 등불은 꺼지지 않았고 부처님은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마음을 담아 올리면 작은 등불도 공덕이 크다는 가르침이다. 빈자일등 이야기는 연등을 떠올리게 한다. 일 년 중에서 연등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음력 4월 8일은 빈자일등 정성 가득한 등 아름다운 등을 한껏 볼 수 있다. 연등은 부처님의 탄생으로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연등은 고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박이나 오리 모양도 있었고 거북이나 학 같은 동물과 새의 모양도 많았다. 요즘은 연꽃 모양이 대세다. 옛날엔 식구들 한 사람마다 등을 하나씩 올렸는데 요즘은 등 하나에 식구들 이름을 모두 적어 올리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서울의 야경은 확 달라진다. 탄신을 기리는 연등이 온 거리에 걸리면서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물든다. 그 모습은 해마다 보아도 해마다 아름답다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연등 하나하나에는 누군가의 귀한 마음과 간절한 기원이 담긴다. 그 마음과 기원들은 연등 불빛을 타고 부처님에게 가 닿기 마련이다. 필자가 주석하는 서대문 충정로와 서오릉 월광사에도 곧 연등이 색색으로 빛날 것이다. 다양한 색깔의 연등이 보여주는 빛, 월광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달빛이 어우러지면 그 절묘함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복을 구하고 마음의 빛깔까지 더해질 그 아름다운 풍경이다. 연등이 구석구석을 밝히고 스며들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소망한다.

2020-04-14 09:06:4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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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선거 명당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바쁘게 뛰고 있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물론 당선이다. 당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차고도 넘친다. 그중에서 선거사무소를 어디에 정하느냐는 것이다. 출마 예정자들은 좋은 터를 잡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이른바 선거 명당이다. 눈에 뜨이는 경우는 예전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이 사용했던 공간을 잡는 것이다. 그곳은 항상 높은 인기를 누린다. 더구나 계속해서 당선자를 배출한 곳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명당 중의 명당으로 후보자마다 먼저 그 공간을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풍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좋은 터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풍수의 이론은 좋은 터를 잡으면 인생이 순조롭게 풀린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남향의 건물은 화초를 길러도 보기 좋게 잘 자란다. 햇볕은 물론이고 그만큼 좋은 기운이 항상 맴돌고 있음을 말해준다. 건물 앞이 막혀 있지 않고 트여 있으면 명당이 될 조건이 충분하다. 앞이 넓게 트여 있는 자리는 거주하는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도록 돕는다. 건물들 사이에 간신히 붙어 있는 자투리 나 경사진 땅에 있는 공간은 피해야 한다. 좋은 땅의 기운을 받으면 사람의 기운도 왕성해진다. 일이 잘 풀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있다. 땅의 기운이 밝고 활발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유한 사람들이 끌리듯 모인다. 후보자들이 예전 당선자들이 사용했던 공간을 찾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선거가 원하는 구도로 풀리게 도와주고 결국은 승리할 수 있는 기운을 돋워주는 곳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감은 풍수 측면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모든 후보자가 좋은 명당에 선거캠프를 꾸려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기원한다.

2020-04-13 06:06:0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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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소욕해신자 환착어본인

세상이 뒤집히는 파도 속에 있는 것만 같다. 총칼이나 포탄 또는 파괴력 큰 미사일과 무기들로 싸우는 전쟁만 전쟁이 아님을 절감한다. 나라 간 입국이 금지되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 간 이동이 통제되고 있다. 발병 초기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정도로 국한되던 문제가 지금은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가 지구촌 대재앙이 되어 가고 있다. 전쟁은 국지적인 피해로 여기질 만 할 정도로 경제적, 인명적 피해와는 급이 다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물리적 무력 충돌만이 전쟁의 모습이 아니고 세균전이나 화학전으로 수많은 사람을 살상시킬 수 있음은 예견된 지 이미 오래다. 무엇보다도 세균전의 실행은 작용 반작용의 원칙으로 작용함을 더욱 예측하게 만든다. 현대와 같이 교통이 발달하여 전 지구촌이 일일생활권에 든 이상,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인에게 퍼져나갈 수밖에 없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핵은 그 피해가 치명적이기에 따라서 함부로 핵을 사용하지 못하는 전쟁 억지력을 지녔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세균 바이러스는 세균을 먼저 퍼뜨린 쪽 역시 같은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음을 현실적으로 각인시킨 것이다. 음모론인지는 모르겠으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곳이 있었다면 그들은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오는 '소욕해신자 환착어본인' (所欲害身者 換着於本人)의 구절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누군가를 해하려는 사람은 그 해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라는 뜻이다. 결국, 자신이 짓고 자기가 받는다는 자작자수(自作自受)와도 통하는 개념이다. 더불어 노자(老子)의 한 마디도 생각난다. 인간이 행하는 바는 유위(有爲)라 보면서 동시에 삿되기 쉽기에 무언가를 행함에(爲) 사람인(人)자가 부수로 붙어 거짓 위(僞)자가 된다는 학문적 해석에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2020-04-10 06:05:3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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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모두에게 희망을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은 다산 정약용이다. 500여 권이라는 엄청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삶은 편안하지 않았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고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다산은 수원 화성을 설계하는 등 큰 업적을 일궜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셋째 형은 참수라는 비극을 당했고 둘째 형과 다산은 유배길에 올랐다. 폐족이 되어 유배지에 간 다산은 그래도 당시 10대였던 두 아들에게 많은 글을 남겼다. 담긴 내용은 희망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의 고난에 무너지지 말고 미래를 보며 꿈을 키우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불행과 행복은 계절처럼 돌고 도는 것이니 절대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유배당한 정약용에게 희망을 들으며 자란 아들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저작을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을 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희망을 찾아본다. 미래를 향한 희망.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그런 희망이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 월급이 오를 거라는 기대, 큰 집으로의 이사, 이렇게 다양한 희망이 생활을 기쁘게 하고 삶을 끌어간다. 희망의 옆에는 좌절이 있다. 상담하다 보면 좌절에 빠진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생각지도 못한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 상황이 너무 힘들기에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게 희망이다. 팔자에서 희망은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 끈이 되고 씻어준다. 몇 달만 있으면 어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며 지금 막힌 운세는 언제쯤 풀릴 것이라고. 더 나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됐을 때 다시 힘을 얻는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힘을 주는 게 명리(命理)에서 큰 희망이다.

2020-04-09 06:04:3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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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장점 살리기

장점은 좋거나 잘하는 것을, 단점은 잘못되고 모자라는 것을 말한다. 운동 중에서도 축구를 잘하면서 농구는 못 하는 사람이 있다. 공부도 그렇다. 누구는 수학을 잘하는가 하면 누구는 영어를 잘한다. 영어는 잘하는데 국어는 젬병인 사람도 있다. 영어를 잘하고 수학을 못 한다면 보통의 교육은 못 하는 수학 점수 끌어 올리기에 집중한다. 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자기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애쓴다. 못하는 걸 잘하도록 한다면, 반대로 잘하는 걸 더 잘하도록 능력을 키우면 어떨까. 당연히 효율이 치솟는다. 이미 갖추고 있는 능력에 날개를 달아주면 지금보다 더 높은 곳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단점에 자꾸 신경 쓰는 경향은 상담할 때도 자주 느낀다. 장사에 재능이 있고 공부와는 친하지 않은 젊은이가 있다. 사주 구성을 보면 장사로 크게 될 강한 운세였다. 그런데 장사보다 공부를 잘해서 교수 되는 게 꿈이다. 공부에는 소질이 없지만, 교수가 더 멋져 보인다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되지 않을 일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선택이다. 요즘은 직업에 귀천이 없는 시대이다. 주변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팔자의 장점을 살려내 잘 풀리면 그게 귀한 인생이다. 재물운이 약하고 직장운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큰 재물이 생기기를 바라지 말고 매달리지도 말아야 한다. 차라리 좋은 직장운을 올라타고 실력 발휘하는 게 인생을 살리는 길이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재물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없는 재물운에 매달려 억지로 애를 쓴다고 재물이 쏟아지지 않는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장점을 더 키우는 데 쓴다면 몇 배나 더 큰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단점을 개선하는 건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운세에 집착해서 한숨 쉬지 말고 운세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고민해보라.

2020-04-08 06:04:0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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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덕 쌓는 마음

사람들은 맡은 업무의 성과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물론이지만 특히 직장인을 괴롭게 하는 건 인간관계이다. 어차피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문제로 고생을 하는 곳이니 서로 도탑게 지내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 않다. 직장은 이익 사회다. 이익 사회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우선이다. 자기 것을 먼저 차지해야 한다. 서로 질시하고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는 건 사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뜻밖에도 어려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덕을 쌓는 사람도 있다. 가끔 상담차 들르는 마흔 중반의 부장인 남자는 아래사람에게 진정 마음을 실어 얘기하고 배려하려 한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과 표정까지도 그가 거짓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살다 보니 손해 보는 일도 많이 겪는다. 승진에서는 밀리고 때로는 뒤통수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래도 생각이 확고하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부처님은 남을 위해 베풀라고 했다. 보시는 남에게 자비나 재물을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보시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덕이 쌓인다. 덕이 쌓이면 그 덕은 당대에서 돌아온다. 늦어서 당대에 오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복이 되어 찾아온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자기의 재산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묻곤 한다. 선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덕을 쌓는 일이다. 방법은 남을 위해 마음이나 재물을 베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건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복으로 돌아온다. 인생 전체로 보아서도 후대를 위해서도 결코 손해가 아니다. 남에게 베푸는 작은 재물, 그리고 작은 마음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베풂이 덕을 쌓아 올린다.

2020-04-07 06:03:2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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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슬픈 교훈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전염병의 창궐은 몹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암흑의 유럽 중세기에 창궐했던 페스트는 당시 유럽 전 인구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인명을 앗아갔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재조명되고 있고, 코로나의 발병원인 역시 페스트와 그 모양새가 별반 다르지 않다. 슬픈 것은 중국에서부터 발생하여 한국, 일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동양인들이 뭇매와 멸시를 당하는 사례가 계속 보도된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보여주는 인간들의 심리와 행동은 그저 동물의 본능적 자기 보호와 투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냐는 씁쓸한 생각이다. 카뮈의 페스트에서도 병에 걸린 사람들을 혐오하고 죄악으로 여기는 모습들이 처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고귀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필자는 또 하나의 단상을 가져본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지만, 굳이 이번을 통한 교훈을 떠올리라면 향후 위생 관념은 분명 향상될 것임은 틀림이 없다. 자주 손을 씻기가 필요불가결하게 권장되자 다른 여느 해보다 감기 환자가 줄었다고 한다. 기침이 나오면 앞이나 주변에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를 막론하고 대놓고 큰기침이나 재채기를 해대던 사람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위생적으로나 기분상으로나 실례인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우리는 보통의 일상에 얼마나 감사할 줄을 몰랐던가? '사회적 거리 두기'가 권고되면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모임이나 장소에의 참석이나 방문은 어려워지고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툭툭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상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주거이전의 자유라던가 모임과 회합의 자유와 같은 소소한 일들 역시 우리 인간들의 기본권이었다는 것을 새록새록 느낀다.

2020-04-06 06:02:3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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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코이의 법칙

비단잉어 중 코이라는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선 크기가 5~8cm 자란다. 커다란 수족관에 있으면 15~25cm가 되고 강물에서 살면 1미터 넘게 성장한다. 여기서 코이의 법칙이라는 말도 생겼다. 넓은 곳에서 크게 생각하면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생각으로 사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사람은 환경에 크게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그래서 자기의 처지가 어려워지거나 힘겨운 일을 마주치면 급속도로 위축된다. 위축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매몰되도록 스스로 옭아맨다. 상담 오는 사람 중에서 코이의 법칙에 잘 어울리는 사례가 있다.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는 그는 초년운이 좋지 않은 사주이다. 부모님의 이혼과 가시밭길이 분명하게 보였다. 팔자 그대로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가 재혼하자 집을 나왔다. 그때부터는 독학이라는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그 평범해 보여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노력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 다짐이 그를 성장시켰다. 어려운 환경에서 5cm 크기에 그칠 수 있었던 자기를 스스로 키운 것이다. 이제 그의 앞길은 평안하다. 불운했던 초년운의 시기는 지나고 아주 풍요롭지는 않아도 안정된 중년의 운세로 들어섰다. 더 기대되는 건 노년 운이다.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그는 복된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재물이 들어오는 운세에다 노력을 멈추지 않으니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 큰 자산을 얻을 것으로 본다. 많은 사람이 환경이라는 걸림돌에 너무 쉽게 포기한다.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2020-04-03 06:01:3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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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복덕의 기본

자신의 월급이나 수입 중에서 일정 부분을 사회의 공익단체나 불우이웃 돕기에 꾸준히 기부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름대로 선행의 공덕을 쌓고 있다. 물론 물질적 나눔만이 선행 전부는 아니다. 어떤 분은 바쁜 시간을 내어 봉사한다. 물질적, 정신적 유형무형의 나눔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도 보시의 공덕을 말씀하시면서 물질적 재보시뿐만 아니라 고운 말, 웃는 얼굴 그 하나하나도 훌륭한 보시에 해당한다고 했다. 다만 보시에도 질적 차등은 있다 하시며 설명했다. 예를 들면 병에 든 동물을 치료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이 더 먼저라는 부등호를 두신 것이다. 그 가운데 보시의 으뜸은 법보시, 즉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하는 보시가 가장 수승하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것이 재물이기에, 재물을 보시하면 '나'라는 집착을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씀한 것이다. 보시의 훌륭한 공덕을 표시한 게송이 있다. "음식을 베풀면 힘을 주는 것이 되고, 옷을 베풀면 아름다움 주게 되고, 탈 것을 베풀면 안락함 주는 것이며, 등불을 베풀면 눈을 주는 것이라네. 거처를 베푸는 자 모든 것을 주는 자지만 법을 가르치는 자 불사(不死)를 주는 자라네." 이 게송은 먹을 것을 옷을 베푸는 것 타는 것을 등불을 베풀 것 거처를 베푸는 자는 만사가 여의하다 보는 것이다. 보시 중 최상인 법을 베푸는 자는 불사를 얻게 되니 바로 열반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리라. 보시의 공덕도 연기적으로 설명이 된다. 물질적 보시 행위 생각도 모두 훌륭한 보시의 내용이다. 더하여 보시하되 주었다는 생각까지 내지 않으면 보시의 공덕은 무량하다 하였으니 이를 일러 무주상보시(無住相普施)라 한다. 무주상보시의 개념은 예수님 역시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말과도 상통하리라.

2020-04-02 08:52:2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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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복덕을 바라보며

종종 신문을 보다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행을 베푸는 사람을 보게 된다. 며칠 전에도 구두 닦는 일을 하며 반평생 모은 7억에 해당하는 부동산을 내놓은 분의 기사도 보았다. 대단한 분이다. 아마 스스로에게는 몹시 알뜰하고 검약하며 살아온 분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쓸 줄도 모른다는 비아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궁상맞다는 소릴 들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버는 돈이 많지 않은데 저금까지 하려면 분명 보통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쓰는 것도 습관이다. 돈을 모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돈을 벌어도 나가는 곳이 많으면 답이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절제 있는 씀씀이가 미덕이다. 그러나 한편 '소비는 미덕'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적절한 소비는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이다.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부하신 분들은 남들 눈에는 쓸 데 안 쓰며 어쩌면 돈을 모을 줄만 아는 악바리(?)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겐 차 한잔도 안 사는 인색한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속까지 인색한 분들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정말 돈 자체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죽을 때라도 남에게 쉽게 돈을 주지 못한다. 인색함의 기본이 그러하다. 인생의 황혼기를 당하여 자신이 평생 모은 재물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인색함과는 다른 검박함이 몸에 배어있다고 보고 있다. 어찌 됐거나 열심히 어렵게 모은 돈과 자산을 보람되게 써 달라며 마음을 낸 분들에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문득 드는 생각은 이렇게 사는 삶이 세상에 소금이 되고 효모가 되는 삶이라 본다.

2020-03-31 05:58:4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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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작고 쉬운 행복

휘게, 라곰, 오캄. 발음에서 볼 수 있듯 외국에서 시작한 단어이다. 또한, 서로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다. 휘게는 덴마크어로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말한다.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라곰은 스웨덴어이다.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삶의 형태를 일컫는다. 오캄은 고요하고 한적하다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부르는 단어다. 세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일상, 다른 하나는 작은 행복이다. 일상 속에서 누리는 작은 행복을 서로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다. 행복이라고 하면 자기도 모르는 친척이 큰 유산을 남겨주거나, 값비싼 브랜드의 옷을 갖게 되거나, 일 년에 서너 번 해외여행을 하는, 그런 일 정도는 있어야 행복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일이 생기면 당연히 누구나 기쁘고 행복할 것 같다. 이렇게 큰 것들로 행복을 정의하면 항상 저 멀리에 있고 손에 닿기 어렵다. 휘게, 라곰, 오캄을 말하는 유럽 나라들의 행복은 조금 다르다.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내 옆에 있고 쉽게 가능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손 뻗으면 바로 행복이 잡힌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항상 행복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행복은 사실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나쁜 일 없고 별일이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특별한 걸 떠올리면 행복은 자꾸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라.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소박한 삶이면 행복하고, 한적하고 여유 있으면 행복하다는 사람들. 그들의 휘게, 라곰, 오캄 이다. 많은 걸 갖지 않아도, 큰집에 살지 않아도,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해도 행복은 가능하다. 행복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 것이다.

2020-03-30 05:57:1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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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부모 노릇

경자생의 영특함과 더불어 감성지수가 남다름을 언급한 바 있었다. 총명함과 더불어 예능이나 문학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아이들의 자질을 미리 알아보려는 부모라면, 특히 경자년에 아기를 낳게 되는 예비 부모들이라면 귀담아 새겨보면 좋을 것이다. 만약 재능이 예체능에 특화되어 남다름을 느낀 부모라면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필요하다. 선택권을 주게 되면 재능은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한다. 스스로 영민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더욱 애정을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음감이 뛰어난 듯하다 해서 무조건 피아노를 시킨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바이올린이나 첼로나 기타를 택하게 해보라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부모 자신에게 익숙한 악기를 배우게 하려는 성향이 있다. 공부를 잘한다 해서 무조건 의대나 법대에 보내려 드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계속해서 부모의 고집대로 하려 한다면 아이의 자아가 사라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이 없어진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행복할 수가 없다. 그게 과연 사랑일까. 의외로 많은 부모가 사랑해서 했다고 하는 열성들이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을 막고 자녀들의 자율 의지를 꺾는 큰 요인인 것을 간과한다. 부모만큼 자녀를 잘 알기도 힘들겠지만,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둡듯이 말이다. 사랑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사랑이 자녀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 사랑한다면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 하고 자녀들의 자율 의지를 존중해줘야 한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자아를 키워나가도록 격려해주어야 하니 제대로 사랑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유도 함께 준다. 헬리콥터 부모들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2020-03-27 06:36:3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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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식신(食神)

세간에 인기를 끌던 만화 중에 '식신(食神)' 있었다. '식신'이라 함은 말 그대로 음식의 신, 또는 요리의 달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팔자에 있어 식신(食神)은 뜻 그대로 음식에 인연이 좋아 손맛이 있다. 식신격이 사주가 원만할 때는 능히 재관(財官)을 능가하는 길신에 속하므로 부귀하게 된다고 본다. 월광사를 이루지 않았다면 요릿집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릿집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떤 한 종류의 음식에 특화된 전문 음식점을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주 음식을 하지는 않지만, 막상 종목을 정하여 요리를 하게 되면 한 맛 나는 감친 솜씨를 가졌다고 인사를 받곤 한다. 특히나 한국 요리는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요리사의 손맛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도 깊고 풍미 있는 맛을 낼 수 있다. 음식점에서 어떤 요리를 먹게 되었을 때 단순히 먹기보다는, 이 요리에 어떤 양념이 들어갔는지 뇌리에 새겨지면서 맛을 음미하곤 한다. 아마도 사주에 식신이 그윽하게 자리 잡은 사람들의 공통된 기질이기도 하다. 그저 먹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요리가 나오기까지 어떤 양념이 주가 되었고 조리를 할 때 불의 온도까지도 가늠할 것이다. 사람들은 분명 팔자에 식신 격이거나 자기 일주에 식신을 깔고 앉은 경우라고 보면 그닥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식신이 있는 사람들이 요리하면 손맛이 작동하여 남다른 맛을 내게 된다. 장 담그는 솜씨가 좋은 아낙네들은 분명 식신격일 확률이 높다. 그러기에 우리 말에도 얼굴 예쁜 아내는 소박당할 일이 있어도 음식솜씨 좋은 아내는 절대 소박당하는 일이 없다는 말까지 있다. 언젠가부터 요리의 달인들이 티브이나 인터넷에 소개되곤 한다. 그런데 대부분 남자가 대세다. 식신격의 사람들이 요리에 재능을 발휘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20-03-26 06:36:0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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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의인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일 것이다. 이를 성숙한 인격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어느 조직, 어느 상황에서도 인정받고 환영받는 사람이 된다. 혹여 사회적 성공까지 거두지 못할진 모르지만, 세상의 소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을 테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그래도 필자 주변에 이런 보석 같은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이 열 손가락은 뽑을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처음엔 하하 호호 웃고 좋아 보이는 사람도 자꾸 대하다 보면 실망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시간을 지나며 오래 보다 보면 이해를 따지며 속 좁게 처신하는 모습이나 성숙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더욱더 그러하다. 어떤 이들은 처음엔 그리 살가와 보이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상황을 지나 보면서 진국처럼 우러나는 성실성과 염치를 아는 처신을 보게 된다.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내보아야 한다는 경험을 쌓는다. 숙명의 명리학을 대입해보면, 역시 성격은 사주팔자 안에 녹아 있다. 팔자에 펼쳐진 인생의 행로와 행동거지의 처신 운의 작용 안에서 별 예외 없이 드러나는 것을 볼 때, 역의 과학성에 경의를 다시금 품게 된다. 인간이 상황의 동물이긴 하지만, 의인은 불이익의 상황 속에서도 의리와 충절을 저버리지 않는다. 불의와 굴욕적인 상황 속에서도 대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는 성인이나 군자만이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뭔가 고난의 시대 속에서 망설임 없이, 고민 없이 진실한 대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큰 성인이다. 그러나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의인이자 군자라고 말하고 싶다.

2020-03-25 06:35:3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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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요리의 달인 식신(食神)

조선 시대 실학자 서유구를 신문에서 읽었다. 그는 40년에 걸쳐 조선 시대 최대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저술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무려 천여 가지가 넘는 음식과 함께 그 조리법까지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편찬했다는 것이다. 내용 중에는 당연히 한국의 장(醬)에 관한 부분이 상설되어 있다. 전래하여 내려온 문헌을 샅샅이 살피고 직접 농사까지 지으면서 음식 대사전을 완성했다는 데서 필자도 내심 놀랬다. 조선 시대의 경우, 남자는 부엌 근처엔 얼씬도 못 했던 시절에 평민도 아닌 유수한 명문 양반이 식자재며 조리법까지 연구하여 저술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획기적인 일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각종 재료와 비율, 요리 방법과 시간 등까지 명시했다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식신(食神)이란 조선 후기 양반이면서 저술을 통해 음식과 재료를 집대성한 서유구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직접 조리까지 하면서 실증적 실습까지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 가운데 몸소 실천을 겸비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가 남겼다는 말 또한 가슴에 울림을 준다. "사대부가 고담(高談)만을 논하면서 오곡조차 구별할 줄 모른다. 어찌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농민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나는 예전에 경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말할 만한 것은 옛사람들이 모두 말했으니, 내가 거기다 두 번 세 번 말해 봐야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처사들이 이리저리 생각하여 한 말은 '흙으로 끓인 국'(土羹) 이었고, '종이로 빚은 떡'(紙餠)이었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야말로 당파싸움의 폐해가 극에 달했던 때다. 조선이 패망하고 백 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날 현실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내로남불의 이중 잣대 현상들은 조선 시대나 뭐 그리 차이가 있을까 싶다.

2020-03-24 06:34:53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