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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너 > 되살아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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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14) 삼익악기 공장 터서 수제화 알리는 공간으로 거듭난 '성수동구두테마공원'

서울 사람들은 '수제화'하면 성수동을 떠올린다. 이곳은 어쩌다 수제화 산업의 성지가 됐을까. 1960년대 말 금강제화 생산 공장이 성동구 금호동에 들어서면서 이 일대에 하청 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강제화 생산 본부가 부평으로 자리를 옮겼고, 구두 관련 공장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지게 됐다. 성동구에 따르면, 성수동에 구두 공장이 몰려든 이유는 금강제화 본사가 있으며 성남에 위치한 에스콰이어, 엘칸토 생산 공장과도 가까워서였다. 성수동에 구두 공장이 밀집하면서 가죽과 액세서리, 부자재 등 구두 재료 업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는 현재 성수동 수제화를 지역 특화 사업으로 지정해 문화·관광의 상징 사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 공장 부지 이전 성수동구두테마공원의 역사는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는 1996년 7월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1조4000억원을 투입해 1939만2000평 규모의 공원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서울시장이었던 조순이 공약으로 내건 환경 정책 '서울그린플랜21'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시는 영등포구 여의도광장 아스팔트길, 종로구 동숭동 낙산시민아파트, 난지도매립지를 없앤 뒤 녹지를 만들고, 장기 미집행 공원용지와 미개설 학교용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시는 서울의 1인당 생활권 공원면적을 2.96m²에서 3.01m²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성수공원은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 중 하나로 추진된 '공장이적지 공원화 사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1998년 삼익악기 공장부지가 위치했던 곳에 1572평(5197㎡) 크기로 조성됐다. 지난 20일 오후 '성수동구두테마공원'을 방문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4번 출구에서 경동초등학교 방향으로 202m(3분 소요)를 걸었더니 하얀색 글씨로 '성수근린공원(구두테마공원)'이라는 문구를 새긴 나무팻말이 나왔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역 근처 번화가에 푸르른 녹지가 사람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했다. 공원 입구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편안한 자세로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통풍이 잘되는 시원한 냉장고 바지와 햇빛을 가리는 챙이 큰 모자, 저녁 찬거리를 사서 담아갈 접이식 핸드 카트가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르신들은 '시골에서 5만원 주고 고춧가루를 샀는데 양이 너무 많다. 이따 와서 가져가라', '수박 한 통이 2만5000원이나 한다'는 등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구두상징조형물·장인벤치··· 눈길 끄는 수제화 홍보물 성수근린공원은 2013년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통해 구두테마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구는 2014년 9월 주민협의체를 꾸려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서울시도시공원위원회심의, 디자인자문회의 등을 거쳐 이곳을 구두테마공원으로 리모델링했다. 성수동구두테마공원은 하늘 위에서 보면 뮬(슬리퍼처럼 뒤가 트인 형태의 신발) 구두처럼 생겼다. 구두를 테마로 한 공간답게 공원 여기저기에 수제화 상징물이 설치됐다. 북쪽 진입광장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인벤치, 풋프린팅존, 수제화런웨이, 원형광장 등이 들어섰다.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랑의 수제화'라는 이름이 붙은 조형물이다. 무지개 스프링 장난감을 포개 만든 듯한 여성 하이힐과 밑창만 남은 남성 정장 구두가 각각 한쪽씩 만들어졌다. 남녀 수제화의 어우러짐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한다. 태양광 발전시설 옆에는 장인 벤치라는 포토 스팟도 마련됐다. 베레모를 쓴 노인은 오른손에는 망치를, 왼손에는 만들다 만 신발을 쥔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날이 더워서인지 공원 곳곳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사람들이 자주 목격됐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장인 옆에도 어르신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둘이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인근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유발하는 짜증을 잊게 만들었다. 구는 "성수 수제화는 그간 도시 계획과 산업화 과정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서울의 대표 제조업"이라며 "연무장길 자전거 탄 상인 풍경은 서울의 유산이며 문화 산업 다양성은 도시 창조성과 지속 가능성의 근간으로, 발전적 계승이 필요하다"고 했다.

2022-06-21 15:11:4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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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13) 오색빛깔 장미꽃밭 펼쳐진 서울 중랑구 묵동 '중랑장미공원'

"장미 꽃잎이 활짝 펴서 꽃송이가 엄청나게 커졌지만, 향기는 좋았습니다. 동부간선도로 옆 제방을 아름답게 가꾸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네요", "입구에 들어서면 장미향이 가득한 게 마치 향수를 뿌린 것 같습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다양한 장미를 만끽할 수 있어 해마다 찾게 되는 곳이에요", "장미 많고, 사람은 더 많고··· 즐겁고 좋았네요" 전세계 구글 이용자들이 특정 장소에 5점 만점으로 별점을 매기는 '구글 리뷰'에 올라온 중랑장미공원 방문 후기들이다. 이달 7일 오후 2시까지 등록된 중랑장미공원에 대한 장소 리뷰는 총 812개에 이르며, 만족도는 4.3점으로 높은 편이다. 지난 2019년 세계 각국에 주재한 우리나라 재외공관 중 상당수가 5점 만점에 2~3점 초반대의 낙제점을 받은 것과 대비된다. 구글 리뷰에 등록된 중랑장미공원 방문 후기 812개를 주제별로 분류한 결과 산책과 관련된 내용이 57개로 가장 많았고, 꽃(41개), 축제(39개), 운동(22개), 5월(19개), 사진(16개), 중랑(9개), 행복(7개)이 뒤를 이었다. ◆장미에 진심인 중랑구 지난달 30일 오후 중랑장미공원을 방문했다. 중랑장미공원은 서울 중랑구 묵동에 자리한 봉화산과 성북구 상월곡동을 지키는 천장산 사이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6호선 태릉입구역 8번 출구에서 중랑천 방향으로 276m를 걸으면 한붓긋기(손을 떼지 않고 목표한 그림을 한 번에 그리는 것)로 만든 듯한 장미 조형물과 함께 중랑장미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중랑장미공원은 도심을 가르는 하천을 따라 중랑구 서쪽 경계를 감싸 안으며 5.45km의 길이로 길게 조성됐다. 중랑천 구간(월릉교~장평교·5.15km)과 묵동천 구간(구 묵동교~월릉교·0.3km)으로 이뤄졌으며, 하늘 위에서 보면 거울에 비친 '기역자'처럼 생겼다. 구는 "중랑천 범람을 막기 위해 1970년대에 축조된 제방이 장미로 아름답게 물들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며 "중랑구는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로 실직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공공근로 사업의 일환으로 중랑천 제방에 장미를 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에도 구는 중랑천에 계속 장미를 심었고, 2005년에는 주민들의 제안으로 장미터널이 만들어졌다"며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 해마다 장미터널을 연장하고 곳곳에 장미를 심은 결과 중랑천은 본래의 삭막한 모습을 벗고 꽃향기 가득한 중랑장미공원으로 거듭났다"고 덧붙였다. 가장 먼저 장미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판자를 여러 개 이어 붙여 만든 전망대는 노아의 방주를 단순화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날 중랑장미공원에서 만난 이모 씨는 "통일전망대, 63빌딩 전망대, 롯데월드타워 전망대는 들어봤어도 장미 전망대는 처음"이라며 "다양한 색깔의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장미 전망대에 서면 붉은색, 흰색, 자주색 장미를 구역별로 나눠 심어 놓은 묵동천 장미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형형색색의 장미 구경을 마친 뒤 수림대 장미정원으로 향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수림대 장미정원에는 꽃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이 곳곳에 설치됐다. 천문대에 있는 망원경 돔 같은 구조물과 센서에 손바닥을 대면 색이 변하는 반지 모양 조형물, 장미꽃목걸이를 두른 채 하늘을 바라보는 여신상 등이 방문객들을 맞았다. 길들이 온통 꽃으로 둘러싸여 장미 미로를 따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랑장미공원의 하이라이트는 장미 터널이었다. 터널 철제 구조를 뒤덮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본 사람들은 "와, 너무 아름답다", "아이고, 예쁘다" 등의 감탄사를 쏟아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음에도 마스크 낀 상태가 익숙해져 좀처럼 얼굴을 내놓지 않던 사람들도 장미터널에서는 주먹만한 꽃을 코에 가져다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댔다. 지난달 30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친구들과 중랑장미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온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으로 장미꽃을 접사로 촬영하다가 일행이 다 함께 사진 찍자고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달려가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곤 했다. 둥글게 모여 사진을 보던 사람들 무리에서 "어머, 나 혼자 마스크 썼네. 왜 말 안 해줬어!", "언니는 사진만 찍으면 눈을 감네. 루테인 먹어"라는 등의 말소리가 흘러나와 지나가던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2022-06-07 14:43:2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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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12) 선사시대 생활상 엿볼 수 있는 '서울 암사동 유적'

'선사시대'는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전의 시대를 의미한다. 문자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탓에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은 그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을 통해 추측해야 한다.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토기, 석기 등 유물이 노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학자 요코야마와 후지타가 암사리 한강변에서 다량의 토기와 석기를 수습했다. 이후 1957년 경희대학교에 의해 처음으로 간단한 발굴이 이뤄졌고, 1960년대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됐다. 1968년 장충고등학교 야구부 훈련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선사시대 주거지가 드러나게 돼 대학연합의 발굴조사가 추진됐다. 1975년까지 수혈주거지, 빗살무늬토기, 어망추, 갈돌 등의 신석기시대 유물과 백제시대 유물들이 보고됐고, 2015년 유적공원의 시설 정비를 위한 시굴조사에서 신석기시대와 삼국시대 문화층이 발견됐다. 유구 확인을 위해 이듬해부터 2018년까지 벌인 발굴조사에서 중심에 불자리가 있는 원형 움집 구조의 신석기시대 주거지와 백제시대 주거지들이 중첩돼 나타났다. 특히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는 암사동 유적 최초로 옥으로 만든 장신구와 흑요석재 등이 나왔다. 현재까지 암사동 유적에서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빗살무늬토기와 갈돌, 갈판, 도끼, 어망추 등 석기유물이 출토됐고, 불에 탄 도토리도 발견됐다. ◆암사동 출토 유물 전시된 박물관 지난 4일 기원전 5000~4000년경에 형성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문화 초기단계의 마을 유적을 만나볼 수 있는 '서울 암사동 유적'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암사역 4번 출구에서 구리암사대교 방향으로 1.1km(도보 18분 소요)를 걸으면 나무 기둥을 엮어 만든 울타리가 쳐진 '서울 암사동 유적' 입구가 나온다. '빗살무늬 토기의 예술혼이 살아있는 곳, 서울 암사동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목적지를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했다. 입장료는 만 19세~64세 어른은 1명당 500원, 만 7세~18세 어린이와 청소년은 인당 300원으로 책정됐다. 입장권 뒤에는 '문화재보호기금법에 의거해 관람료 징수금액의 100분의 10을 문화재보호기금에 납부하고 있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울 암사동 유적은 하늘 위에서 보면 동쪽으로 나부끼는 깃발처럼 생겼다. 입구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유구보호각, 복원움집, 박물관, 선사체험마을이 차례로 들어섰다.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으로 갔다. 전시관의 주요 유적은 암사동 유적에서 발굴된 빗살무늬 토기였다. 토기의 입술 부위에는 손톱 등을 찍어 눌러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짧은 빗금이 3~5열로 새겨졌다. 몸통 부위에는 옆으로 누운 'V'자를 여러 개 겹친 문양이 찍혀 있었다. 이 무늬는 생선의 뼈 모양과 비슷해 '어골문'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바닥 부위에는 몸통과 연결되는 빗살 문양이나 동심원 무늬가 그려졌다. 박물관 측은 "암사동 유적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빗살무늬 토기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약 6000년 전 암사동에 살았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 토기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새로운 문화 인류의 서막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을 찾은 한 어린이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눌비빔(가로 막대를 오르락내리락 움직여 세로 막대를 회전시켜 불꽃을 얻는 것) 방법으로 불 피우는 체험을 하며 즐거워했다. 이외에도 박물관에서는 신석기 시대 한강에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소형 크기의 동물(멧돼지, 두더지, 노루, 너구리, 족제비, 고라니, 멧토끼, 사슴)과 물고기(점농어, 황복, 누치, 동자개, 참마자) 등을 볼 수 있었다. ◆선사 체험 마을·유구 보호각 등 볼거리 가득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방문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선사시대 생활상을 재현한 조형물이 설치된 '선사 체험 마을'이었다. 그물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 직접 잡은 사슴을 어깨에 지고 가는 사냥꾼들,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는 선사시대 사람들을 마을 곳곳에서 마주했다. 지난 5일 선사 체험 마을로 나들이를 나온 동네 주민들은 너른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놓고 소풍을 즐겼다. 그 옆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가 민들레 홀씨를 입으로 후후 불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는 내부 관람이 가능한 움집도 하나 마련됐다. 움집의 생김새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는 우장 '갈모'와 비슷했다. 이 체험 시설은 암사동 유적에서 발굴 조사된 신석기 시대 움집을 약 1.5배 확대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창을 손질하는 아버지, 고기를 써는 어머니, 물고기를 굽는 아들, 음식을 먹는 딸을 표현한 사람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았다. 외형이 실제 사람과 유사해 약간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얼음'에 걸려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체험움집을 빠져나와 유구보호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양대학교문화재연구소는 2016~2017년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해 신석기시대 주거지 8기와 삼국시대 주거지 5기, 수혈유구 5기를 확인했다. 그중 일부 중요 유구를 보존하고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한 보호시설이 이 유구보호각이다. 유구보호각 안에 보존된 신석기시대 주거지가 가장 눈에 띄었다. 이 주거지 내부에서는 탄화된 목재와 돌을 둘러 만든 화덕자리가 확인됐다. 목재의 탄화된 흔적이 비교적 형태를 갖추고 있어 화재로 인해 폐기된 주거지로 추정됐다. 주거지 내부 전체 범위에서 토기편이 출토됐고, 바닥면에서는 완성된 형태로 복원 가능한 빗살무늬토기 한 개체가 나왔다고 한다. 강동구는 서울 암사동 유적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구는 서울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 기원 범국민 서명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현재까지 서명에 참가한 시민은 총 4658명으로 집계됐다. 캠페인 참가 희망자는 '암사동 선사 유적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서명 운동에 동참하면 된다.

2022-05-17 14:48:2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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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11) 걱정과 근심을 잊게 해주는 산책 공간,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서울 중랑구에는 '망우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존재한다. 왜 이런 동명이 붙었을까. 지명의 유래는 '숙종실록'에서 찾을 수 있다. "태조께서는 '자손들이 뒤따라 장사지낼 곳이 20개 소까지 많게 된다면 내가 이로부터 근심을 잊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곳의 가장 서쪽 한 가닥 산봉우리의 이름은 '망우리'(忘憂里)가 됐다." ◆공동묘지에서 공원으로 재탄생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례문화는 땅에 시신을 묻는 매장문화였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지정된 장소 외에 묘지를 두는 일을 금지했고, 경성부는 1920년대 전후 서울의 동서남북(신당리·아현리·이태원·수철리)에 부립공동묘지를 설치했다. 묘지 터가 부족해지자 경성부는 망우리 일대의 임야 75만평을 사들여 그중 52만평에 공동묘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1933년 조성된 망우리 공동묘지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40년간 4만7000여기의 묘지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1973년 더 이상 묘지로 쓸 공간이 없어지면서 이곳은 공동묘지로서의 임무를 마치게 된다. 중랑구에 의하면, 1977년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망우묘지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1990년대 망우묘지공원에 묻힌 위인들의 얼을 기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1997년부터 독립운동가와 문학인 등의 무덤 주변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1998년에는 '망우묘지공원'에서 '망우리공원'으로 이름이 한 번 더 바뀌었다. 중랑구는 "민둥산에 울창한 숲이 자라나는 것처럼 망우리공원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며 "공원은 조상들의 묘를 찾던 묘지에서 시민들이 운동과 산책, 여가를 즐기는 힐링공간으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2013년 망우리공원을 미래유산으로 선정했고, 2016년 망우리 인문학길 '사잇길' 코스가 생기면서 근현대인문학의 보고가 됐다고 중랑구 측은 덧붙였다. 지난 8일 공동묘지에서 시민 쉼터로 되살아난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방문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봉역 5번 출구 앞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6개 정류장을 이동해 '망우리역사문화공원' 정거장에서 내려 남쪽으로 685m(도보 13분 소요)를 걸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입구에서는 음악 영화의 일인자로 칭송받는 노필 감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서기를 지낸 독립운동가 문명훤 선생 등 민족 발전에 기여한 이들의 사진이 두줄로 나란히 전시된 '인물광장'을 볼 수 있었다. 구에 따르면 인문학길 '사잇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살다간 유명인사 50여명과 서민의 이야기를 비명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조성됐다. 인물광장 팻말에는 "이곳은 선진 대한민국의 뿌리를 내리고 꽃씨를 뿌린 근현대 각 분야의 선구자와 서민이 한데 모인 성지"라며 "경건한 마음으로 어제와 오늘의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를 걸어가며 깨달음을 얻어 즐거이 '망우'(忘憂)하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조선과 대한민국을 주름잡은 인물들 영면한 곳 광장을 지나 망우역사문화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둥근 무덤이 봉긋 솟아 있었다. 8일 오후 공원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 씨는 "날이 너무 좋아서 놀러왔다"며 "공동묘지라고 해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길 줄 알았는데 전혀 상반된 이미지라 놀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양지바르다'란 말의 뜻을 오늘 여기 와서 정확히 알게 됐다"면서 "무덤 근처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면 '경치 좋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했다. 이날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벌초가 잘 된 무덤부터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묘지, 새 흙으로 봉토된 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묘지가 자리해 있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묘소를 발견했다. 어린이 운동에 온 생애를 바친 소파의 유골은 홍제동 화장터에 있었는데 1936년 후배 최신복 등이 모금 운동을 벌여 이곳으로 이장했다. 무덤은 쑥돌로 만들어졌고, 비석의 글씨는 위창 오세창이 썼다. 비석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새겨졌다. 그는 "여보게, 밖에 검정말이 끄는 검정 마차가 와서 검정 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주게"라는 말을 끝으로,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하늘나라로 떠나갔다고 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을 포함해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1950년대의 대표적 시인 목마 박인환 ▲한국 민속학의 원조 석남 송석하 ▲다물단의 애국지사 춘파 서동일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 ▲헤이그밀사 사건에 관여한 애국지사 계산 김승민 등이 영면해 있다.

2022-04-26 15:21:1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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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10) 과거와 현재, 자연과 사람 잇는 서울 '중랑망우공간'

서울 중랑구는 이달 1일 망우역사문화공원 입구에 '중랑망우공간'을 만들어 개관했다. 지난 2017년 3월 구는 망우리공원 역사문화관 건립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2019년 설계공모를 거쳐 작년 4월 건물 착공에 들어갔다. 구는 같은해 12월 건축공사를 완료하고, 올 4월 서울의 대표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날 망우리공원의 거점 시설인 '중랑망우공간'을 일반에 개방했다. 중랑망우공간은 중랑구 망우로91길 2에 연면적 1247.25㎡(약 378평),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문화시설 개관 소식에 주민들 웃음꽃 '활짝' 서울의 한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르며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온 지난 8일 중랑망우공간을 방문했다. 지하철 7호선 상봉역 5번 출구 앞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여섯개 정류장을 이동한 뒤 망우리역사문화공원 정거장에서 하차해 한강 쪽으로 약 460m(도보 10분 소요)를 걸었다. 망우산 지형과 어우러진 2층짜리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중랑망우공간은 성냥갑마냥 개성 없게 만들어진 여타 공공시설과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건물 주위로 수십개의 기둥을 세운 뒤 그 위를 보행 데크로 덮어 놔 정면에서는 엄마 거미와 새끼 거미가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레고 블록으로 만든 쌍봉낙타가 무릎을 굽힌 채 산허리에 코를 박고 있는 모양처럼 생겼다. 건물을 구상한 정재헌 경희대 건축과 교수는 "망우리묘지공원 초입의 완만한 능선에 위치한 중랑망우공간은 건물이라기보다는 길고 좁은 길이다. 120m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다양한 공간과 풍성한 자연을 경험케 한다"며 "건물은 막힘이 없고 자연과 사람은 그 사이를 넘나든다. 길은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고 자연을 넘어 도시를 발견하게 한다"고 설계 의도를 밝혔다. 중랑망우공간 1층에는 ▲자연과 더불어 이중섭, 이인성 화가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망우카페' ▲다양한 전시·홍보 영상 관람이 가능한 '망우미디어홀' ▲꽃과 나무, 연못이 어우러진 정원인 '수(水)공간'이 들어섰다. 2층은 ▲망우리의 역사를 소개하는 '기획전시실' ▲망우역사문화공원 관련 교육·회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다목적실' ▲망우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데크'로 구성됐다. 이날 중랑망우공간으로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은 전망데크에 올라 벚나무에 핀 벚꽃을 감상하며 여유를 즐겼다. 면목본동에 사는 김종호(68) 씨는 "중랑구에는 문화시설이 많지 않아 이런 게 들어서면 주민들이 좋아한다"며 "전시관도 주변 자연 풍경을 해치지 않게 잘 만들어놔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8일 오후 중랑망우공간을 찾은 동네 주민 이모 씨(65)는 "개관식 날 한번 와 보고, 남편 데리고 또 왔다. 접때는 너무 추웠는데 오늘은 돌아다니기 딱 괜찮다"면서 "예전에는 여기에 오려면 딸기원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야 했는데 망우리역사문화공원 버스정류장이 새로 생겨서 편해졌다"고 말했다. 중랑구에 거주하는 박은수(70) 씨는 "옛날에는 주차장이랑 관리사무소, 화장실만 있어서 별 볼 것이 없었는데 교육전시관이 생겨서 좋다"면서 "무료 주차장이 유료로 바뀐 것도 마음에 든다. 등산객 많을 때는 주차할 데가 없어서 저 밑에서부터 차들이 줄지어 서 있어 복잡했다. 유료화되면 차 가지고 오는 사람이 줄어 교통질서가 잡힐 것이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망우리에 잠든 8인의 독립운동가 재조명 중랑망우공간에는 2개의 전시실이 설치됐다. 실외에 마련된 '망우미디어홀'에서는 관람객이 대형 키오스크에서 관람을 희망하는 전시 내용을 선택하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터치 화면에서 '망우리공원을 읽다 5편 안창호'라는 제목이 붙은 영상물을 선택했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일 우리가 이름으로는 독립운동을 한다 하고 사실로는 다른 나라들의 관계만 쳐다보고 기다린다 하면 이는 독립운동의 정신에 크게 모순이 되지 아니합니까." 영상 속 주인공은 강태진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중랑구지회장이었다. 그는 차려자세로 꼿꼿이 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꿈을 되새기는 낭독을 했다. 강 씨는 "일제의 강압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선열의 뜻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면, 고난과 역경에도 광복을 맞이했던 그날처럼 코로나19라는 지금의 어려움도 언젠가 이겨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야외 전시실을 둘러본 후 중랑망우공간 2층 기획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는 개관기념 특별기획전 '뜻을 세우다, 나라를 세우다'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시실의 흰 벽에는 만해 한용운, 유관순, 도산 안창호, 호암 문일평 등의 사진과 함께 그들이 남긴 말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은 고통만큼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내 직업은 독립운동가다", "조선 독립은 민족이 요구하는 정의 인도로서 대세 필연의 공리요 철칙이다." 조국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뜻을 굽히지 않고 헌신하다 망우리에 영면한 독립운동가 8인을 소개하는 전시는 내달 31일까지 중랑망우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22-04-12 14:48:0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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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9) 소악루·양천 고성 품은 서울 강서구 '궁산근린공원'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는 '궁산근린공원'이 자리해 있다. 공원은 한강변에 솟은 해발 75.8m의 야트막한 봉우리인 궁산에 조성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이 펴낸 '서울의 산'에 따르면, 과거 궁산의 이름은 파산, 성산, 관산, 진산 등으로 다양했다. 파산은 삼국시대에 주변의 땅이름인 제차파의에서 유래했고. 과거 이곳에 성이 있어 성산으로도 불렸다. 진산은 양천고을의 관방설비가 돼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강을 지키는 빗장 역할을 했던 산이라 해 빗장 '관'(關)자를 붙여 관산으로 일컫기도 했다. 현재 표준 명칭인 궁산은 양천향교가 있어 궁(宮)으로 표시하던 것에서 연유했다. 궁산의 북쪽에는 안양천이 흘러 한강과 만난다. 강을 사이에 두고 궁산근린공원 맞은편에는 행주산성이 위치해 있다. 임진왜란 때 김포·통진·양천·강화·인천 등지의 의병들이 궁산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한강을 건너 권율장군을 도와 행주대첩에 참가해 승리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소악루' 오르면 한강과 안산·대덕산 전경 한눈에 미세먼지 없이 쾌청한 하늘이 푸른 빛을 뽐낸 지난 28일 궁산근린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하차해 2번 출구로 나와 마곡대교 방향으로 618m(약 10분 소요)를 걸었다. 손가락 두마디 크기의 연두색 나뭇잎이 이제 막 솟아나기 시작한 마가목이 공원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마가목이라는 이름은 봄에 돋아나는 새순이 말의 이빨처럼 생겨서 '마아목'(馬牙木)으로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봄을 맞아 새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무들을 구경하며 '소악루'로 향했다. 소악루는 조선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가 벼슬을 버리고 악양루 옛터에 지은 누각이다. 중국동정호의 악양루 경치와 버금가는 곳이라 해 소악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드넓은 한강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진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서울역사편찬원의 자료에 의하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은 1740년 양천현감으로 부임해 당대 진경시의 태두 이병연과 그림과 시를 바꿔보자는 약조를 맺고 매일 소악루에 올라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을 그렸다. 겸재 정선이 이곳 현령으로 있을 적에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에서 당시의 경관을 볼 수 있다. 누각의 원위치는 '여지도서', '양천군읍지'와 정선이 그린 소악루, 소악후월 등의 그림으로 짐작해 볼 때 가양동 산6-4(일명 세숫대바위) 근처로 추정되나, 강서구는 주변의 변화가 극심해 한강변 조망을 고려해 1994년 현 위치에 소악루를 신축했다. 가양2동 주민 최모 씨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명당이라 그런지 확실히 기가 다르다"며 "경기도에 살다가 이 동네로 이사왔는데 사업도 잘 되고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한강 어귀 지키던 양천 고성 궁산 정상에 오르면 과거 이 자리에 양천 고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양천 고성지는 조선시대 양천현의 주산인 궁산에 있는 테뫼식 산성 터다. 양천 고성은 궁산 정상부에 있는 둘레 200m 정도의 평지를 둘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길이는 218m이며, 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은 토석 혼축성으로 축조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의 산'에서 "원래 이곳은 고구려 국경으로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과 더불어 한강 하구를 지키던 요새 중 하나였다"며 "일제 때에는 김포 군용비행장 개설공사로 일본군이 주둔했고,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에 이어 국군이 계속 주둔했던 관계로 궁산 정상 부근의 양천 고성 원형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천 고성에서는 옛 성터의 흔적인 적심적과 그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 등도 발견됐다"며 "지금은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석축과 겨우 몇 십미터 정도 되는 성벽 흔적이 남아 있어 석성인지 아닌지 얼핏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고 했다. 양천 고성지 문화재 발굴 조사 결과 성벽 구간에서 초축 및 수·개축 성벽과 후축으로 추정되는 석렬이 확인됐다고 구는 설명했다.

2022-03-29 15:22:2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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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8) 독립운동가 최은희의 활약으로 동작구 사당동에 만들어진 '삼일공원'

대한민국에는 '삼일공원'으로 불리는 곳이 여럿이다. 충청북도 청주시에, 강원도 횡성군에, 충청남도 홍성군에, 경상북도 구미시 등에 각각 하나씩 자리해 있다. 수도 서울에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을 기리는 삼일공원이 하나 존재한다. 동작구 사당동에 자리한 이 공원은 3·1운동 참가자이자 민간신문 최초의 여성 기자인 언론인 최은희에 의해 만들어졌다. ◆삼일공원의 역사 1967년 4월 최은희는 '독립공원 설립을 제의한다'는 제목의 원고를 써서 동아일보에 보냈다. 투고문에서 그는 "서울시에서 가까운 경기도 땅이라도 좋다. 헐벗은 야산 중 한 곳을 정해 금년부터 당장 우리의 손으로 해마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 수십년이 지나면 무성한 숲이 돼 1896년 서재필 박사의 주재로 이뤄졌던 독립공원보다 생생한 독립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세계 어느 식민지 국가에서도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독립운동에 열렬히 투쟁한 사실이 없은즉 이 독립공원은 한국의 이채라 할 것이며 발길을 멈추는 내외국 길손들의 교훈이 되리라 믿어 나는 관계당국에서 이 뜻을 받아들여 줄 것을 믿고 건의한다"고 덧붙였다. 펜은 칼보다 강했다. 투고문이 세상에 나온 후 정부는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야산을 공원 용지로 지정하고, 서울시는 2년생 리기다 소나무 1000그루를 후원키로 결정한다. 지난 4일 오후 삼일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7호선 이수역 10번 출구에서 내려 사당중학교 방향으로 933m(16분 소요)를 걸으면 공원으로 진입하는 계단길이 나온다. 공원은 하늘 위에서 보면 앵무새가 쇠봉에 앉아 있는 것처럼 생겼다. 새의 머리 부분에는 공원 입구가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동화에서 막내가 지은 것처럼 생긴 붉은색 벽돌집을 만날 수 있다. 삼일공원관리실 겸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층 벽돌건물을 시작점으로 삼아 남쪽 방향으로 걸었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3.1광장이었다. 광장은 기미독립선언서가 새겨진 기념비와 유관순 열사상, 거대한 태극기 게양대 등으로 꾸며졌다. 이날 공원에 나온 동네 주민 이모 씨는 "이전에는 유관순상도 없고 독립선언서가 적힌 돌도 없어 말만 삼일공원이었다"며 "해가 갈수록 조금씩 좋아져 독립공원의 구색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되는 기미독립선언서가 새겨진 기념비는 구민 제안 사업인 '3·1운동 기념테마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 건립됐다. 그 옆에는 2018년 한국여기자협회가 일제에 맞서 싸운 유관순 열사의 애국심과 독립을 향한 의지를 후손에 길이 전하고자 국가보훈처와 동작구청 후원으로 건립 기증한 유관순 열사상이 세워졌다. ◆판자촌에서 주민 쉼터로··· 곡절 많은 공원 이날 오후 삼일공원에 나온 주민들은 어린이놀이터에 마련된 트랙 위를 달리거나 청춘놀이터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해 신체를 단련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자작 랩을 연습하는 청년도, 강풍으로 망가진 길고양이 급식소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사당동 주민 박모 씨는 "이 동네 오래 살아서 잘 아는 데 옛날에 여기가 다 판자촌이었다"면서 "그때 공원 만든다고 사람들 내쫓고 난리도 아니었다"며 혀를 끌끌 찼다. 삼일공원은 건설부 고시로 1968년 공원으로 지정됐다. 서부이촌동 철거민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1년만에 2000여동의 판잣집이 들어섰다. 1969년 4월 생활고를 비관하던 가장이 처와 자식 둘을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하는 일이 있었다. 날품팔이로 생계를 연명해온 그는 삼일공원 옆에 3평짜리 무허가 움막을 지어 생활했는데 이를 철거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처자식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공원 지정 후 20여년이 흐른 1989년 서울시는 녹지 조성 공사에 들어가 이듬해 삼일공원을 개원,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2-03-15 15:56:1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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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7) 동양의학 집대성한 허준의 생 기록된 강서구 '허준근린공원'

'거머리 같다'는 말은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남을 괴롭히는 사람'을 벌레에 빗댄 표현이다. 과도한 세금 징수로 국민의 고혈을 짜내는 정치인들을 묘사할 때 주로 쓰인다. 지난 1999~2000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허준의 애청자라면 '거머리'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허준이 신성군(조선 선조의 넷째아들)의 창병을 거머리로 치료하는 장면이다. 허준 선생은 1539년 지금의 서울 가양동에서 허론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관은 양천이며 자는 청원, 호는 구암이다. 그는 내의원 의관으로 궁중에서 벼슬을 시작해 왕의 병을 진료하는 어의로 활약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을 완성해 한국 의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며, 전염병 관련 서적을 비롯해 여러 의서를 언해본(한문을 한글로 풀이해 지은 책)으로 펴내는 등 백성들의 질병을 퇴치에 앞장섰다. ◆허준의 시작과 끝 서울 강서구에는 허준의 일생을 담아낸 공원이 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던 지난 21일 오후 '허준근린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9호선 가양역 1번출구로 나와 올림픽대로 쪽으로 976m(도보 15분 소요)를 걸어 아담한 정자가 있는 허준근린공원에 도착했다. 서울시는 가양동 일대에서 대단위 택지를 개발하면서 주민을 위한 근린공원을 만들어 1993년 개원했다. 시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 생을 마친 조선의 의학자 허준을 기려 '허준근린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원은 위에서 보면 패딩을 입고 장화를 신은 사람의 다리 한쪽을 떼다 놓은 것처럼 생겼다. 점퍼 끝자락 부분에 설치된 정자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연못, 관리사무실, 허준 동상, 광장, 야외무대, 어린이 놀이터가 차례로 들어섰다.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지고 강한 바람이 기승을 부려서인지 이날 오후 허준근린공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공원 연못 앞 수변산책로 쪽에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어 모두 피해"라고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네 의자를 탄 꼬마 하나가 엄마를 관객 삼아 상상 속 동화 한편을 풀어내고 있었다. 아이는 흔들리는 그네를 거친 파도에 휩쓸린 배로 설정하고는 "여기 튜브를 꽉 잡아, 조심해"라는 등의 창작극 대사를 쏟아냈다. 그네 의자 뒤편에는 허준 선생이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의 동상이 놓여 있었다. 허준 선생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왼손으로는 환자의 맥을 짚었고, 오른손으로는 이마의 열을 쟀다. 동상 옆 표지석에는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했다.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치료하고 마음은 다스릴 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으며 원천을 캐지 않고 지류만 찾는 것이니 병이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라는 내용의 동의보감 한 구절이 새겨졌다. ◆재밌는 전설 가득한 공원 허준 선생의 동상 앞에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작은 나무들이 덕지덕지 붙은 바위가 하나 놓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바위는 홍수로 경기도 광주에서 떠내려왔다 해 '광주암'으로 일컬어졌다. 광주군은 바위에서 난 소출을 조세로 바치도록 했고, 양천수령은 매년 바위에서 자란 싸리나무로 싸리비 3개를 만들어 광주 관아로 보냈다. 해마다 공들여 만든 싸리비를 보내는 게 억울했던 양천수령은 이 애물단지는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 했고, 광주는 바위를 가져가는 데 실패했다. 그렇게 광주는 바위를 양천 고을에 빼앗겼다고 한다. 강서구는 택지개발로 매몰 위기에 처한 광주암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새로운 호안을 구축해 호수공원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허준근린공원에서 영등포공업고등학교쪽으로 가다 보면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허가바위'도 만날 수 있다. 허가바위는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이 출생한 곳이라는 설화가 깃든 바위동굴이다. 바위에는 가로 6m, 세로 2m, 길이 5m 크기의 동굴이 뚫려 있어 '공암'으로도 불린다. '경기읍지'에 의하면 고려가 건국될 무렵 이곳에는 허선문이라는 이가 살았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할 때 군사들을 격려한 공으로 공암의 촌주로 임명됐다. 그후 허선문의 자손들이 공암 허씨가 됐는데 신라시대에는 이곳을 공암으로, 고려시대에는 양천으로 불렀으므로 공암 허씨는 양천 허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허가바위에는 어른 열댓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동굴이 있어 여러 차례 정변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가깝게는 6·25동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신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날 허가바위의 동굴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동굴 앞 푯말에는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2022-02-22 14:52:1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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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6) 미8군 골프장서 시민 휴식처로 다시 태어난 '용산가족공원'

서울 용산구 용산동에는 '용산가족공원'이 자리해 있다. 서울시는 지난 1991년 반환된 미8군 골프장 땅을 공원으로 가꿔 이듬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원래 시는 이곳에 대규모 위락단지를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미8군 측으로부터 야구장, 헬기장, 오수처리장 부지 등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해 계획이 무산됐다. 시는 연못에 울타리를 치고 산책로를 내는 등 골프장을 간단히 손본 뒤 9만평 크기의 공원을 개원했다. 당시 산이 아닌 평지에 조성된 공원 중에서는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외세에 휘둘린 뼈 아픈 역사 새겨진 장소 지난 7일 오후 오랜 기간 외국군 주둔지로 사용된 '오욕의 역사'를 간직한 용산가족공원을 방문했다. 지하철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로 나와 721m(10분 소요)를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나룻배를 탈 때 젓는 노처럼 얇고 기다란 나무 푯말에 새겨진 '용산가족공원'이란 문구를 볼 수 있다. 공원은 목이 긴 호리병처럼 생겼다. 주차장 앞에 있는 연못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제1광장, 생태습지, 제2광장, 태극기공원이 차례로 들어섰다. 공원 입구엔 눈이 소복이 쌓인 작은 호수가 놓였다. 과거 미군들의 골프장으로 쓰였던 장소라 그런지 워터해저드 역할을 하는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이날 공원을 찾은 김모 씨는 "원래는 용산공원 부분 개방 부지에 가려고 했는데 월요일이라서 문을 안 연다고 해 그냥 가기 아쉬워 용산가족공원에 들렀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지난 2020년 8월 용산기지 동남쪽에 위치한 미군 장교숙소 5단지(약 5만㎡ 규모) 내 주거 16동(129세대)과 관리시설 2동을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전면 개방했다. 이곳은 1986년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부지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미군장교 임대주택을 지은 후 2019년까지 운영해왔던 시설이다. 김 씨는 "옆에 미군기지가 있어 그런지 휴전 중인 게 실감이 난다"면서 "옛날도, 지금도 우리 땅이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닌 게 참 서글프다"고 했다. 용산가족공원 땅은 임진왜란(1592~1598년) 때 왜군이 병참기지로 사용했고, 임오군란(1882년)에는 청나라군사가 점유했다. 갑신정변(1884년), 러일전쟁(1904년)과 1906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는 일본인들이 군시설과 거주지로 이용했다. 6·25 전쟁 때는 주한미군사령부가 설치됐다. 이후 1959년 주한미군이 골프장을 건설해 사용해오던 부지를 1992년 서울시가 인수하면서 공원으로 되살아났다. 과거 이곳이 우리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꼬마들은 해맑게 웃으며 공원의 너른 풀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세계 예술가들의 조각품 한자리에 녹지 쉼터 곳곳에 설치된 조각품이 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용산가족공원엔 한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영국, 미국, 캐나다 7개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9점이 전시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철과 흑기와로 제작한 '손으로 만든 손'이라는 조형물이었다. 이는 프랑스 작가 에드원드 소테의 작품인데 피아노를 치는 손을 뚝 떼다 가져다 놓은 것처럼 생겼다. 제2광장으로 이동하면 미국 출신의 작가 로버트 로스터마이어가 청동으로 만든 '형/변형'이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조형물은 발을 배배 꼬고 있어 꼭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용산가족공원엔 유독 사람의 형태를 한 작품이 많았다. 최평곤 작가가 코르텐 스틸로 만든 '오늘'도 그중 하나다. 교도소 재소자들이 입는 구속복에 갇힌 사람을 묘사한듯했는데,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어 제법 처량하게 느껴졌다. 용산구에 사는 박모 씨는 "조각도 멋지지만 공원에서 지하철 열차가 지나다니는 쪽을 바라보면 재건축된 아파트와 재개발을 기다리는 아파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며 "좀 더 가다 보면 화룡점정 격으로 교회가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도시가 빚은 현대미술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동네가 공원과 박물관이 있어 참 좋은데 미군 하수처리장이 아직도 있는 게 약간 께름칙하다"며 "땅은 언제 다 돌려받아 정화할 건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시는 올해 상반기 중 용산정비창 활용 방안 등을 담은 '2040 서울 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2022-02-08 14:45:2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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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5) 칼 모양 닮은 산에 조성된 양천구 '갈산공원'

서울시와 인천시, 경기도 이 3개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에는 '갈산공원'이 각각 한 개씩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펴낸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경기도 양평군에 자리한 공원의 이름은 해당 지역에 칡이 많은 산이 있어 '칡 갈(葛)'을 붙여 갈산이라 부르던 것에서 따왔다. 부평구 북부 중앙에 위치한 '갈산동'은 구한말 '갈월리'에 속했다. 지명은 '칡넝쿨이 우거진 갈산에 비추는 밝은 달'을 의미하는 '갈산명월(葛山明月)'을 줄여 '갈월'이라 일컬었던 것에서 가져왔다고 하니 퍽 낭만적이다. 인천시와 경기도에 있는 '갈산공원'의 지명 유래가 시적인 데 비해 서울은 일차원적인 이유로 산 이름을 지었다가 훗날 공원명까지 개명하는 곡절을 겪게 된다. ◆부르기 께름칙해 이름 바꿔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8도까지 오르며 한겨울임에도 잠시나마 봄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지난 24일 오후 양천구 신정동에 자리한 '갈산공원'을 방문했다. 지하철 2호선 양천구청역 2번 출구로 나와 6617번 버스를 타고 3개 정류장을 이동한 후 목동우성아파트입구에서 하차해 고척1동쪽으로 531m(10분 소요)를 걸었다. 고래등 같은 기와가 인상적인 사찰 향림사 옆으로 갈산공원으로 진입하는 계단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계단씩 밟아 오르다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 고개를 들었다.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바람개비가 살랑 바람에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오른편에는 동네 주민들이 따뜻하게 쉬다 갈 수 있게 간이로 만든 비닐하우스가 설치됐다. 작은 쉼터의 중문 위에는 '상호 존중 배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검은색 털모자에 두툼한 패딩으로 중무장한 어르신 한 분이 간이 쉼터에 앉아 장기판을 만지작거리며 같이 장기를 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쓸쓸한 풍경을 뒤로하고 갈산공원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이 위치한 갈산은 목동 용왕산과 마주 보고 서 있는 고도 76m의 야트막한 산이다. 안양천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동쪽 부분이 벼랑처럼 깎여 길게 급경사를 이뤄 산 정상이 칼날처럼 생겼다 해 칼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거 용왕산은 '문(文)'으로, 칼산은 '무(武)'로 양천구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비유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칼산'이라는 말이 부르기에 섬뜩하고 혐오스럽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갈산'으로 산명이 바뀌었다. 동네 주민들은 산의 옛 이름을 버린 것에 아쉬움을 두지 않는 눈치였다. 이날 갈산공원에서 만난 김모 씨는 "'신정동 하면 딱 떠오르는 게 뭐냐' 바로 엽기토끼 살인사건"이라면서 "그런 일도 있었는데 산이름이 여태껏 칼산이면 누가 여기서 살고싶어 하겠느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칼산에서 갈산으로 바꾼 건 백번 천번 잘한 일"이라며 "동네 이미지도 좋아지고 집값도 오르고 일석이조"라며 엄지를 추어올렸다. ◆갈산정·대삼각본점·어린이교통공원·유아숲체험원··· 없는 게 없는 주민 휴식처 갈산 정상에서는 선홍색의 아름다운 정자 '갈산정'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갈산정 우측에는 회백색 철골 뼈대로 피라미드를 지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대삼각본점'이 설치됐다. 이 구조물은 1908년 대한제국 시절 국가 전반의 재정을 맡아보던 중앙 관청 탁지부에서 토지조사 사업을 위해 만든 구소삼각점이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대삼각본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 서울시에 단 2개만 남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중요한 국가시설물 중 하나라고 한다. 국가기준점, 지적기준점으로 측량에 활용돼 학술적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12월 31일자로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로부터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고 양천구는 설명했다. 갈산정과 대삼각본점을 둘러보고 전망대로 갔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전망대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영등포·구로구 일대 풍경을 감상하거나 굽은 허리를 펴는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24일 오후 갈산공원에 온 주부 이모 씨는 "여기에는 아줌마들이 애들 데리고 자주 찾는 어린이교통공원도 있고 유아숲체험원도 있어서 참 좋다"며 "옛날에는 몰랐는데 코로나 심해지고는 그래도 동네에 갈 곳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전망대에서 마을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 양천구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어린이교통공원을 들렀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코로나가 창궐해서인지 아이들이 코빼기도 안 보였다. 주민 한 명만이 어린이교통공원의 트랙을 뱅뱅 돌며 운동하고 있었다. 교통공원 인근에는 유아숲 체험원이 조성됐다. 솔방울로 과녁 맞히기와 그물 오르기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잔뜩 마련됐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서도 아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신정7동에 사는 박모 씨는 "솔직히 옛날에는 밤에 갈산공원에서 농구 경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교통공원에 애들이 와서 시끄럽게 해서 짜증이 좀 났다"면서 "지금은 전보다 많이 조용해졌는데 예전이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22-01-25 14:52:4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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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4) 어버이 품처럼 넉넉한 대모산 도시자연공원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는 산의 모양이 늙은 할머니의 모습과 같다고 해 과거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던 곳이 있었다. 산명은 조선시대 초 태종의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어명에 의해 대모산(大母山)으로 개칭됐다. 여승이 앉은 모습처럼 생겨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미세먼지 물럿거라"··· 피톤치드 내뿜는 대모산 소나무숲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76㎍/㎥ 이상)을 기록하면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지난 10일 오후 '대모산 도시자연공원'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담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4419번 시내버스를 타고 8개 정류장을 이동한 뒤 일원동한솔아파트에서 하차해 수서역쪽으로 314m(6분)을 걸었다. 해발 293m의 나지막한 산으로 알고 왔는데 고개를 잔뜩 쳐들어야 정상이 겨우 보였다. 공원 입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네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차림의 실내복이 아닌 등산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다. 사람들의 양손에 등산 스틱까지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가는 길이 평탄치 않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등산로를 따라 5분 정도를 걸었다. 헬스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갖가지 운동기구가 가득한 체력단련장이 나왔다. 이곳엔 '등허리 지압기', '등허리 근육 풀기', '오금 펴기' 등의 이름이 붙은 온몸운동기구와 하체운동기구가 설치돼 있었다. 기구의 힘을 빌려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는 '거꾸리'와 역기가 설치된 운동장 바로 옆에서는 1994년 6월 대모산우회 회원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체육관도 볼 수 있었다. 일원동에 사는 김모 씨는 "실내 헬스장은 코로나 옮을까 봐 가기가 좀 그런데 여기는 야외라서 감염 걱정이 없다"면서 "코로나가 사라져도 무료라서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것 같다"며 눈웃음을 지었다. 숲속 체력단련장을 지나 대모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촘촘하게 이어져 등산용 신발이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도 미끄러지지 않고 산을 잘 오를 수 있었지만, 경사가 워낙 가팔라 숨이 턱턱 막혔다. '물 한 모금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쯤 눈앞에 '실로암 약수터'가 나타났다. 앞에서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며 길잡이 역할을 하던 어르신은 노란색 바가지에 약수를 떠 벌컥벌컥 들이켰다. 침을 꼴깍 삼키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 사발 떠 마셨는데 물이 시원하고 달았다. 앉은 자리에서 3번 연속 약수를 원샷하고 다시 산을 올랐다. 이날 대모산 도시자연공원에서 만난 강남구 주민 박모 씨는 "옛날에 여기에 사유지가 일부 포함돼 있어서 땅 주인이 사람들 못 오게 철조망을 치고 난리를 쳤다"면서 "다행히 구청에서 보상을 해가지고 우리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처럼 미세먼지 심한 날에 집에만 있자니 답답해 대모산 공원에 나왔다"며 "근데 KF94 마스크를 썼더니 숨이 차 졸도할 것 같아 사람 없을 때는 좀 벗고 다녀야겠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초반 증권가 큰 손으로 '광화문 곰'이라고 불렸던 고모 씨가 있었다. 1966년 대모산 일대 약 28만평의 땅을 사들인 고 씨는 구청이 자신의 사유지에 체육시설을 설치하자 이를 철거하라고 1996년 소송을 제기했다. 승소와 패소를 거듭하다 결국 강남구청이 고씨의 땅을 매입하면서 갈등이 마무리됐다.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 가능한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 내 '무장애길' 대모산 도시자연공원 한켠에는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이 약 1만2000㎡ 규모로 만들어졌다. 강남구는 경작으로 훼손된 대모산을 토지보상하고 기존 지형의 다랑이(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있는 계단식으로 된 좁고 긴 논배미) 특성을 살려 돌담 사이로 야생화를 심어 화원을 조성했다. 이곳에는 ▲모감주나무, 전나무 포함 교목 21종 420여주 ▲풍년화 및 히어리 등 관목 26종 1만8000여주 ▲구절초·노루귀 같은 초화류 92종 18만8000여본이 식재됐다. 은빛을 띤 흰색 나무껍질을 가진 '은백양'이 화원 한가운데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동네 주민들은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무장애길'을 꼽았다. 무장애길은 노약자, 임신부, 장애인 등 보행약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의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길이다. 지난 10일 오후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을 찾은 이모 씨는 "다리가 아파 대모산은 오를 수 없는데 여기는 늙은이들도 걷기 편하게 길을 내놨다"며 "더 많은 공원에 이런 시설들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2-01-11 15:06:3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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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3)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정릉'

서울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두 개의 정릉이 있다.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정릉(靖陵)은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이 모셔진 곳이고,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에 자리한 정릉(貞陵)은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이다. 정릉은 숫자 '2'와 인연이 깊다. 대한민국의 수도에 같은 이름을 가진 두개의 능이 있고, 중구 정동과 성북구 정릉동 2곳의 행정동명은 정릉에서 따왔으며, 신덕왕후 강씨가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인 점에서 그러하다. ◆왕후에서 후궁으로 강등되는 수모 겪은 조선의 첫번째 왕비 서울의 기온이 영하 16도까지 곤두박질친 지난 26일 오후 성북구에 있는 '정릉'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하차해 6번 출구로 나와 '성북22'번 마을버스를 탔다. 9개 정류장을 이동해 중앙하이츠빌아파트에서 내려 331m(7분 소요)를 걸었더니 검은색 한옥 기와가 얹혀진 정릉 입구가 나왔다. 매표소 직원은 입장권 할인 대상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성북구민이냐"고 물었다. 기자는 "성북구에 살고 있지 않다"고 답한 뒤 일반 요금인 1000원을 결제하고 입장했다. 정릉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짧은 곱슬머리를 한 사람의 왼쪽 얼굴 같이 생겼다. 턱부분에 자리한 매표실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재실 ▲관리사무소 ▲홍살문 ▲수라간 ▲정자각 ▲수복방 ▲비각 ▲신덕고황후릉이 차례로 들어섰다. 정릉에는 태조의 두번째 왕비인 신덕황후 강씨가 잠들었다. 신덕황후는 태조의 경처(서울에서 결혼한 부인)로 있다가 조선 개국 후 현비로 책봉됐다. 태조와 사이에 2남(무안대군 방번, 의안대군 방석), 1녀(경순공주)를 낳았으며, 1396년(태조 5년) 세상을 떠났다. 신덕왕후를 지극히 사랑했던 왕은 궁에서 가까운 곳인 한성부 황화방(현 중구 정동)에 웅장하게 능을 조영했다. 그러나 계모를 미워했던 태종 이방원은 태조가 죽은 뒤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하고 1409년 도성 안에 있던 능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버렸다. 이 과정에서 옛 정릉의 병풍석 등 석물은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됐고, 왕후의 신주도 종묘에서 제외되는 수난을 당했다. 그후로부터 260여년이 흐른 1669년 현종이 송시열의 상소를 받아들여 복권을 명했고, 정릉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조성됐다. 혼유석('혼이 노니는 곳'이라는 뜻으로 '석상'으로도 불림)과 그 받침돌인 둥근 고석, 장명등(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등)만이 옛것이고 나머지는 현종 대에 새로 세워졌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정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속세와 능역을 구분 짓는 다리인 '금천교'를 건너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홍살문'이었다. 9m 이상의 홍시색 기둥 2개 사이로 지붕 없이 화살 모양의 뾰족한 나무가 머리털처럼 콕콕 박혀 있었다.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색으로 칠했고, 나쁜 액운을 화살 모양의 나무살로 공격한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신성한 장소를 수호하는 홍살문이 제 역할을 다 해서인지 이날 오후 정릉은 평화로웠다. 동네 노인들은 십자가 첨탑에 나란히 앉은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이들은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라는 노랫말을 가진 밀양아리랑을 제창했다. 이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은 기우나니라 /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라는 가사를 읊어대며 흥을 끌어올렸다. 신덕황후의 묘는 얕은 동산 위에 자그마하게 봉긋 솟아 있었다. 아쉽게도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게 묘역을 조성해놔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다. ◆속세의 근심 씻어내는 '팥배나무 숲길' 별 볼 것 없는 능을 지나 숲길로 들어섰다. 길은 참나무 숲길(중간 숲길)과 팥배나무 숲길(외곽 숲길) 두개로 나뉘어 있었다. 0.37km의 짧은 코스로 짜여진 참나무 숲길을 뒤로하고 1.44km(약 40분 소요)의 팥배나무 숲길을 걸었다. 앞서 가던 어르신에게 '추운 날 무슨 고생을 하러 이곳까지 오셨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 원래 이런 궁이나 능, 문화 유적지 같은 곳들은 아주 춥거나, 아주 덥거나, 눈이 펑펑 내리거나, 비가 억수로 쏟아질 때 와야 사람이 없고 고즈넉하니 좋다"면서 "젊은 사람이 뭘 모르네"라며 혀를 끌끌 차더니 재빠른 속도로 기자를 지나쳐 갔다. 혼자 심심하게 산길을 오르다가 섬뜩한 안내문을 발견했다. 정릉 내 멧돼지 출현 흔적이 발견되고 있어 숲길 등 공개구역 외 출입을 금한다는 알림이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멧돼지가 화났을 때 내뿜는 '컹컹'거리는 콧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름이 끼쳐 뒤를 홱 돌았는데 다행히 멧돼지가 보이지 않았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멧돼지를 발견하면 '절대 정숙하며 뛰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멧돼지를 주시하고 등을 보이지 않는다', '나무나 바위, 구조물 등의 은폐물 뒤에 숨는다', '우산, 천, 깔개가 있을 시에는 펴서 든 상태로 뒤에 숨는다', '멧돼지 새끼를 보면 만지거나 안지 않는다'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21-12-28 15:45:5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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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2) 월곡산 품은 서울의 경관 명소 성북구 '오동공원'

서울 성북구는 가파른 비탈길에 낡은 주택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달동네인 하월곡동 일대를 개발하면서 주민들에게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고자 오동공원을 만들어 1966년 개원했다. 공원 규모는 30만㎡이며 구민체육관, 인조잔디구장, 테니스장,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서울시 테마산책길 중 하나인 오동공원길은 북서울 꿈의숲 입구에서 출발해 오동공원 관리사무소에 도착하는 코스로 짜였다. 전망이 좋은길로 불리는 오동공원길의 전체 길이는 2.5km로, 산책하는 데 드는 시간은 약 1시간30분정도다. 이 길은 북서울 꿈의숲에서 오동공원으로 연결돼 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산림욕을 즐기며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자연생태 탐방로라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월곡산 정상 노천카페서 친목 다지는 주민들 살을 에는 듯한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오동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6호선 월곡역 3번 출구에서 동덕여자대학교 방향으로 약 690m(10분 소요)를 걸었다. 공원에 진입하자 가파른 산비탈이 나왔다. 공원이 월곡산에 자리해 이곳에 가려면 수백개의 나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영하 6도의 추운 날씨 탓인지 공원 가는 길에 동네 주민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쯤 먼발치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사람이 아닌 비둘기가 사부작사부작 산기슭을 거닐며 낸 소리였다. 오동공원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고양이 모양으로 생겼다. 동물 귀쪽 부분에 있는 출입구에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배드민턴장 ▲쉼터 ▲돌산족구장 ▲오동헬스클럽 ▲월곡정 ▲넓은바위(애기능터) ▲제2월곡인조잔디구장 ▲월곡인조잔디축구장 ▲성북구민체육관 등이 조성됐다. 공원 입구에 설치된 종합안내도를 확인한 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을 것 같은 월곡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예상대로 경치가 좋은 산꼭대기 명당은 구름 떼 같은 인파로 북적였다. 빨간 베레모를 쓴 할머니 한 분이 '월곡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자 앞 벤치에 앉아 산책로를 오가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할머니가 "오늘 볕이 참 좋아"라고 말하자 어디에선가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어르신 한 분이 튀어나와 "그러네"라고 맞장구를 쳤다. 빨간색 외투를 입은 어르신은 할머니와 수다를 떨기 위해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 두 마리를 의자에 묶어뒀다. 둘은 "코로나 때문에 동네 치과가 없어져서 강남에 있는 유명한 병원엘 갔더니 2000만원을 달라고 해 그냥 나왔다", "참새들에게 페트병에 담긴 쌀알을 나눠 주고 있으면 까치가 와서 다 쫓는다"는 등의 대화를 나눴다. 팔각 왕관을 쓴 정자인 월곡정에서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 꼬마 한 명을 만났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아이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월곡정 내부를 쓱 훑더니 '보여? 여기 책은 옛날 그대로네'라며 친구에게 오랜만에 정자 북카페에 온 소감을 전했다. 정자 한켠에는 3단 신발장을 집 모양으로 리폼해 만든 노란색 책장이 하나 놓여 있었다. 책장 안에는 김원일의 '가족', 한강의 '소년이 온다' 같은 장편소설과 어린이 시 모음집 '맨날 내만 갖고 그런다', 전래동화 책 '비오는 날 슬피 우는 개구리' 등이 꽂혀 있었는데 책등이 빛에 바래 하얗게 변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애기능터 바위 이야기 월곡정 앞에는 애기능터가 자리했다. 조선 고종의 장자였던 완왕이 12세에 세상을 떠난 뒤 묻혔던 장소라고 한다. 사람들은 돌산 바위에 걸터앉아 조용히 오동공원 일대 풍경을 감상했다. 공원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가장 왼쪽에서부터 용마산, 천장산, 구룡산, 청계산, 우면산, 관악산, 개운산이 차례로 들어섰다. 산 정상에 서서 월곡동 일대를 바라봤다.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고 싶었으나 공원 곳곳에 붙은 안내문에 '야호! 소리, 악기 연주, 큰 음악 소리 같은 고성 행위를 삼가달라'고 쓰여 있어 차마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그냥 하산하기 아쉬워 이리저리 정처 없이 헤매다 애기능터에 놓인 표지석에서 보석 같은 글을 발견했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흔히들 말하는 억겁의 시간 동안 나는 이 자리 월곡산 끝자락에 있었다. 조선 시대 후기의 슬픈 기억을 간직한 내게 사람들은 '애기능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 (중략) 나의 하루는 고즈넉한 일상의 반복이다. 숙자, 영식이, 말숙이… 어린 시절 내 품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허리는 꾸부정하게, 무릎을 토닥이며 날 찾아온다. 내 이마에 줄지어 자라는 풀처럼 주름살 진 얼굴의 그 아이들을 위해 난 낮 동안 따뜻한 햇살에 데워 놓은 자리 한 켠을 준비한다" 바위를 의인화해 오동공원의 역사를 풀어낸 글을 읽다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오동공원이 있는 월곡동 돌산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한번 정독해보길 바란다.

2021-12-14 14:33:5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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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1) 전매청 창고 부지서 동대문구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간데메공원'

서울시는 1996년 '공원녹지확충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그린 인프라가 부족한 동대문구의 생활 환경 개선을 개선하고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답십리동 일대에 '간데메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시는 옛 전매청 창고 부지를 사들여 1997년 12월 착공, 이듬해 간데메공원 조성 공사를 마무리하고 시민들에게 녹지를 개방했다. ◆간데메공원의 역사 지난 11월 29일 오후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2길 59에 위치한 간데메공원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에서 하차해 1번 출구로 나와 동대문구청 방향으로 914m(약 15분 소요)를 걸었다. 평일 이른 오후라 한산한 주택가 한가운데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간데메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원은 통일신라시대의 정원 시설물인 포석정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도랑을 따라 물이 흐르는 대신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길이 나 있다. 지하철 출입구 구조물 중 하나인 캐노피 형태의 간데메공원관리소를 기준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어린이놀이터, 장미터널, 배드민턴장, 농구장, 다목적광장, 소나무동산, 팔각정이 차례로 들어섰다. 공원 규모는 1만5180㎡다. 공원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 씨는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왔다"면서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공원명이 참 특이한 것 같다. 할머니 어렸을 적에 창지개명(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근대화된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명분 하에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우리나라 고유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꿔버린 것)이 많이 이뤄졌다고 들었다. 그때 원래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간데메로 바뀐 것인지 궁금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원명은 과거 답십리 일대에 원말(원촌), 넘말(월촌), 간데메(중산)라는 부락이 흩어져 있었는데 그중 중산 마을의 토박이 이름을 따 간데메로 정했다고 한다. 간데메공원 앞에서 답십리 돈까스 맛집으로 소문난 분식집을 운영하는 주인장은 "옛날에 이 공원뿐만 아니라 저기 위브아파트 넘어서까지가 전부 다 돌산이었다"면서 "산 깎아서 병원 만들었다가 동대문경찰서가 잠시 와 있다가 그리고 나서 간데메공원이 생겼다"고 했다. 공원 자랑을 해달라고 청하자 기다렸단 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는 "간데메공원에는 매실나무, 살구나무, 감나무 같은 과일나무가 많고, 공원 지을 당시 3500만원 주고 산 최고로 비싼 백송(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도 있다"면서 "나무를 전만큼 열정적으로 가꾸지 않아 빛이 안 나서 그렇지 저쪽에 가면 백송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월에는 장미터널에 꽃이 피면 참 예쁘고 가을에는 단풍든 나뭇잎 떨어지는 모습이 멋지고 눈 올 때는 눈 오는 대로 사계절 내 아름다운 공원"이라며 엄지를 추어올렸다. 한 동네주민은 간데메공원 지하에 주차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전했다. 동대문구에 사는 김모 씨는 "이 근처에서 하도 단속을 해대니까 딱지를 떼 가지고 벌금이 많이 나와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러면 주차장이라도 하나 만들어 주고 난 다음에 딱지를 떼라'고 계속 민원을 넣었다"며 "먼젓번에 와서 지질검사도 다 해갔다던데 빨리 주차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이웃끼리 안부 살피는 장소 이날 간데메공원 곳곳에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네 할아버지들은 농구장 코트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잔뜩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다며 뽑을 사람 없는 현 세태를 한탄했다. 대화 내용의 90% 이상이 욕설이었다. 명심보감에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중국의 성군인 요 임금은 허유라는 은자(隱者·숨어사는 선비)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다 거절당했다. 임금은 다시 한번 허유를 찾아가 9개 주의 장관이라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씻는다. 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재밌는 일화를 건지려고 옆에서 기웃대다가 10분 넘게 이어지는 쌍욕을 들었더니 욕지기가 솟아 자리를 떴다. "우리 이씨 중에는 그런 죄 많은 사람이 없고, 다들 겸손한데 그 XX 조동아리가 아주 경솔하더만"이 가장 수위가 낮은 내용이었다는 것만 전하겠다. 건너편에서는 할머니 두 분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벙거지 모자에서부터 머플러, 패딩, 장갑까지 모두 자주색으로 색깔을 맞춘 멋쟁이 어르신 한 분이 동네 친구에게 그간 왜 공원에 나오지 못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대퇴 나가고(넓적다리 골절), 쓸개 빼고 성한 데가 없다"며 "몸이 아프니까 입맛도 없어 운동할 힘이 안 났다"고 털어놨다. 친구와 똑같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포즈로 열심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할머니는 "계란 후라이에 애간장 넣어서 먹으면 맛있는데 그것도 안 들어가?"라고 물었다. 어르신은 "그래도 밥이 안 넘어가"라며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러자 친구는 "암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내일 점심 먹고 여기에서 2시에 만나"라고 말한 뒤 어르신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2021-11-30 14:55:1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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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0) 정수장 재생해 만든 서울 서남권 파라다이스 '서서울호수공원'

1970년대 중후반 서울 강서구는 인구수는 많지만 상수도 인프라가 부족해 식수난에 시달리는 지역이었다. 당시 강서구는 1959년 건설된 인천시 상수도시설인 김포정수장으로부터 수돗물을 공급받았다. 김포정수장은 일평균 11만t의 수돗물을 생산했는데 이중 7만t이 인천시에 갔고, 나머지 4만t만이 강서구로 흘러들었다. 때문에 이 시기 강서구에 속했던 화곡동, 신정동, 방화동, 가양동, 신월동, 공항동, 발산동 주민들은 매년 물 부족 문제로 고통받아왔다. 이에 서울시는 강서 일대의 물기근을 해결하고자 1979년 약 2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인천시로부터 김포정수장(신월정수장)을 인수했다. 이후 김포정수장은 강서구와 양천구 5만여가구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시설로 20년 넘게 운영되다가 2003년 10월 '서울시 정수장 정비계획'에 의해 영등포정수장이 그 기능을 대체하게 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서울시는 정수장 부지를 청소년 유스타운이나 임대주택, 영어체험마을 등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검토하다가 2006년 이 땅에 초대형 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녹지공간이 부족한 서남권 주민들을 위해 서서울호수공원을 조성,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어른들을 위한 '키즈카페' 이달 16일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에서 주민들의 휴식처로 다시 태어난 '서서울호수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로 나와 652번 버스를 타고 서서울호수공원 정류장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좁은 골목길을 따라 207m(4분)을 걸었다. 눈앞에 드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2009년 개원한 서서울호수공원은 기존 정수장 부지(13만6772㎡)와 함께 인근 능골산(8만8646㎡)을 새롭게 단장해 만든 총 22만5368㎡ 규모의 대형 테마공원이다. 위에서 보면 어금니 모양과 비슷하다. 공원 정문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재생공원 ▲어린이 놀이터 ▲열린풀밭 ▲열린마당 ▲호수 ▲몬드리안정원 ▲몬드리안벽천 ▲몬드리안책방 ▲산자락공원 ▲사색의 공간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공원 한가운데 커다란 호수가 자리했는데 수면 위에 초록색, 노란색, 붉은색 나무와 옅은 갈색의 참억새가 그대로 비쳐 물이 아닌 거울처럼 느껴졌다. 16일 오전 아이와 서서울호수공원을 방문한 주부 이모 씨는 "여기는 아침에는 어른들을 위한 키카(키즈카페)가 된다"면서 "동네에 은퇴하신 노인 분들 거의 대부분이 일찍이 공원에 나와 친구들과 운동을 하거나 수다를 떨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서울호수공원에 온 주민들은 볕이 잘 들고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문화데크광장 벤치에 앉아 이웃들과 담소를 나눴다. 파란색 점퍼를 입은 한 어르신이 친구에게 전라북도 완주군에 놀러 가 대둔산 케이블카를 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는 "다른 데는 경로 우대로 반값에 해주잖아. 근데 여기는 1000원밖에 안 깎아줘. 그래서 케이블카 타는 데 원래 1만2500원인데 1만1500원이나 해"라며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뭐 그렇게 비싸대"라며 혀를 끌끌찼다. 시민들은 철봉 여러 개를 구부려 만든 것처럼 생긴 의자에 터를 잡고 텀블러에 싸들고 온 커피와 빵을 나눠 먹었다. 이곳을 지나가던 할머니 중 한분이 "우리 여기 앉아서 쉬면 되겠다"라고 말하자 다른 어르신이 "궁둥이 아파서 안 돼"라며 다른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산자락공원 가는 길에서는 앙칼진 소리로 '왕왕' 짖는 하얀색 말티즈와 견주를 만났다. 이들 옆을 지나가던 한 동네 주민이 "에고 시끄러워… 지금 엄마 지키는 척하며 밥값 하는 거야? 알겠으니까 그만해"라며 강아지를 진정시켰다. 곁에서 우연찮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전부 폭소를 터뜨렸다. ◆자연의 품에서 행복 찾는 시민들 서서울호수공원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몬드리안정원이었다. 공간을 반듯한 네모로 쪼개 놓아 얼핏보면 가을걷이를 마친 논이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구성기법을 도입해 수직과 수평의 선이 조화를 이루는 정원으로, 정수장의 침전조 일부를 존치해 장소의 역사성을 살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소로 가꿨다고 시는 설명했다. 몬드리안정원에서 옥상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옥상정원은 전쟁 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수장 여과지동의 콘크리트 기둥을 남겨 파고라 구조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콘크리트 기둥 꼭대기에는 철근 잔해가 신생아의 배냇머리처럼 불규칙적이게 꽂혀 있었다. 얼기설기 자란 등나무가 콘크리트 구조물 위를 뒤덮었는데 덩굴식물 특유의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몬드리안정원과 옥상정원 외에도 서서울호수공원의 옛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더 있다. 바로 재생공원이다. 정수시설의 수도관은 자전거 거치대와 의자로 재탄생해 인간의 품으로 돌아왔다. 귀를 덮은 검은색 군밤장수 모자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수도관 모양의 벤치에 앉아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를 쳐다봤다. 그는 "여기는 저 비행기 소리만 아니면 참 좋은데. 참말로 시끄러워. 오래 살아도 적응이 안 돼"라고 하소연했다. 서서울호수공원에는 항공기 소음이라는 환경적 제약을 예술로 승화한 시설이 설치됐다. 41개의 소리분수다. 이 분수는 비행기가 날아가면 그 소리(81dB 이상)를 감지해 자동으로 물을 틀도록 설계됐다. 이날 오전 주황색 꼬리(티웨이 항공), 민트색 꼬리(에어 서울), 연두색 꼬리(진에어), 하늘색 꼬리(대한항공)를 가진 비행기들이 호수공원 상공을 수차례 가로질렀지만, 동절기여서 분수 가동을 정지해 놨는지 물쇼를 볼 수는 없었다. 공원에는 이런 재밌는 푯말이 박혀 있었다. "소리분수 앞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소음을 내면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어요. 오작동과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소음을 삼가주세요"라고.

2021-11-16 15:18:3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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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99)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자리한 붓꽃명소 '서울창포원'

음력 5월5일 단옷날 우리 조상들이 행하던 세시풍속 중에는 창포의 잎과 뿌리를 우려낸 물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오월 단오 안에는 못 먹는 풀이 없을 정도로 온갖 식물이 약이 되곤 했다. 이중 방향성(좋은 향기를 내는 성질) 물질이 다량 함유된 창포의 뿌리를 약쑥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삶아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에 은은한 향기가 나고 두피가 건강해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창포의 양기가 세 이 물로 머리를 씻으면 귀신을 멀리 쫓는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산 안가도 단풍놀이 즐길 수 있어 지난 1일 붓꽃이 가득한 특수식물원 '서울창포원'을 찾았다. 서울시는 도봉구 마들로 916 일대 5만2417㎡ 부지에 서울창포원을 만들어 지난 2009년 6월 개원했다. 당초 시는 2007년부터 강북지역 녹지 확충 사업의 하나로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서울식물생태원'을 조성할 예정이었으나 이곳에 붓꽃 종류 식물을 다량 식재하면서 이름을 '서울창포원'으로 바꿨다고 한다. 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 2번 출구로 나왔더니 '서울창포원'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입구에서 만난 주부 정모 씨는 "원래 친구들이랑 도봉산 등산을 가려 했는데 늦잠을 자서 그 앞에 있는 서울창포원에 오게 됐다"면서 "다리 아프게 산에 오르지 않고도 평지에서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나 때문에 산에 못 간 게 미안해서 밥 사기로 했는데 친구들이 여기 온 것을 만족해하는 눈치"라며 "누군가 산으로 병풍을 만들어 둘러놓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창포원은 위에서 보면 사다리꼴 모양으로 생겼다. 도봉산역과 맞닿은 입구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부들원 ▲소나무언덕 ▲습지원 ▲붓꽃원 ▲꽃창포원 ▲책 읽는 언덕 ▲원형광장 ▲억새원 ▲소나무군락 ▲수변식물원 ▲잔디마당 ▲늘푸름원 ▲쉼속쉼터가 차례로 들어섰다. 식물원에서 노원구 방향으로는 수락산이, 도봉구 쪽으로는 도봉산이 펼쳐졌다. 이날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부채붓꽃, 타래붓꽃, 노랑붓꽃, 각시붓꽃 등 130종 30만본의 붓꽃류가 식재된 붓꽃원이었다. 아쉽게도 개화기(5~6월)가 지나 '붓꽃'의 붓모양 꽃봉오리를 보진 못했지만 팝콘처럼 생긴 '나비바늘꽃'과 봉숭아 꽃물처럼 붉게 물든 '설탕단풍나무' 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창포원 한켠에서 두 명의 어르신이 나무 기둥을 붙잡고 격하게 흔들어대는 장면을 목격했다. 생동감 있는 가을 사진을 남기기 위해 노란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포착하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무를 이리저리 세게 흔들던 노인은 "아이고 힘들어서 더는 못해먹겠다"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모과가 4개나 달렸는데 한 개도 안 내려오네"라고 한탄하고는 "하긴 이렇게 쉽게 떨어졌으면 벌써 누가 가져갔겠지"라는 체념의 말을 남기곤 일행과 자리를 떴다. ◆붓꽃 져도 웃음꽃 피는 공원 서울창포원에서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은 억새원이었다. 이곳에선 작별할 때 흔드는 손 모양 같은 참억새, 삽살개 털처럼 보이는 물억새, 난이랑 헷갈리게 비슷한 무늬억새 등 21종의 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억새원에서 손주를 모델로 사진을 찍고 있던 이모 씨는 "애가 22개월인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추억이 별로 없다"면서 "여기 와서 사진을 많이 남기고 갈 수 있어 기쁘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면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 손주와 놀이동산도 가고, 바다도 가고, 제주도도 가고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소나무, 전나무와 같이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가 빽빽이 심어진 늘푸름원 일대에서는 '대산문학 제28회 시화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시인들이 쓴 시와 함께 꽃과 나무가 새겨진 시화 현수막이 키큰 오스트리아 소나무(유럽흑송) 기둥에 걸려 펄럭였다. 노영환 시인은 '가을 나그네'란 시에서 "구절초 / 국화 향에 / 길손이 멈춰서면 // 그 시절 추억들이 꽃처럼 피어나고 // 가슴에 봇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이 여울져"라고 노래했다. 농암가를 지은 강호가도(江湖歌道)의 대가 이현보 선생이 환생한 듯했다. 동네 주민들은 창포원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이게 얼마 만이여, 보고 싶었어"라며 옆에 앉은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단풍색 벙거지 모자를 눌러 쓴 할머니가 "그러게 말이여, 참으로 반갑네"라고 화답했다.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도토리를 한 움큼 꺼내 친구의 손에 쥐여주며 "오다가 주웠어"라고 말했다. 도토리를 선물 받은 노인은 "재주도 좋네"라고 칭찬하고는 껄껄 소리내며 웃었다.

2021-11-02 14:22:37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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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98) 바쁜 도시 생활에 지쳤다면 서대문구 '연희숲속쉼터'로

신조어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도 그 중 하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숨돌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지친 도시인들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안산에 숨겨진 보물 '연희숲속쉼터'다. 인구밀도가 높아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은 서울이지만, 이곳은 아직까진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한강공원이나 서울숲처럼 인파에 치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즈넉한 산책을 즐기기 안성맞춤인 공간인 셈이다. 서대문구는 2000년 3월 31일부터 2008년 1월 16일까지 안산도시자연공원 부지 보상을 추진하고, 연희숲속쉼터 조성사업 실시설계 용역에 들어갔다. 2010년 8월 20일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8월 31일 완공하고, 2011년 9월 2일 연희숲속쉼터를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사업비로는 19억8000만원(시비/조경 14억9000만원, 건축 4억9000만원)이 투입됐다. ◆고즈넉한 주민 쉼터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지난달 27일 서울 연희숲속쉼터를 방문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로 나와 서대문03번 마을버스를 타고 하나로마트·동신병원에서 하차해 홍연교 밑으로 내려온 뒤 안산 방향으로 걷다 보면 쉼터로 가는 길이 나온다. 연희숲속쉼터 진입로에는 물레방아가 설치됐다.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백전리에서 10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통 물레방아를 재현한 것으로,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바퀴가 돌아가는 동채 방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구는 설명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96년 9월 강원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백전리 물레방아는 물이 잠시 고였다 떨어지는 구유가 56개로 구성됐고, 물레 크기는 지름 250cm, 폭 67cm다. 보(둑을 쌓아 흐르는 냇물을 가두는 곳)에서 물을 끌어다 물레방아를 돌리는 데, 보 위쪽으로 용소(지하수가 솟아나는 곳)가 있어 물을 공급받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한다. 물레방아 옆에는 앞면 2칸, 옆면 1칸 규모의 나무판자로 짜인 방앗간이 있었다. 마포구에 사는 최모 씨는 "코로나 때문인지 동네 공원에 사람들이 바글거려 갈 엄두가 안 나 한가진 곳으로 왔다"면서 "캠핑가서 불멍(불을 보며 멍을 때리는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방앗간 앞에서 물멍(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하면 딱 맞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물레방아, 장독대, 돛단배 등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사극 세트장 같다"면서 "4단계 끝나면 친구들이랑 같이 또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연 품에서 마음 치유 물레방앗간을 지나 연희숲속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쉼터는 위에서 보면 호박잎 모양처럼 생겼다.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자, 체력단련시설, 허브원, 벚꽃마당, 잔디마당, 벚꽃책방, 안산공원 관리사무소, 오름카페가 차례로 들어섰다. 허브원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동그라미모양, 세모모양, 부채꼴모양으로 펼쳐졌는데 88올림픽 때 카드섹션하는 것처럼 보였다. 직장인 강모 씨는 "백신휴가를 쓰고 집에만 있기 아까워 놀러 나왔다"면서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이 올린 제주도 여행간 사진을 보고 부러워 배 아팠는데 연희숲속쉼터에서 힐링하고 가게 돼 다행"이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강 씨는 "꽃을 보고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며 "주변에 코로나 블루(우울증)로 힘들어하는 사람 있으면 가보라고 추천해야겠다"고 말했다. 연희숲속쉼터에는 언뜻 보면 수국으로 보이는 '큰 꿩의 비름'과 보라색 민들레 모양의 '아스타', 작열하는 태양 같은 '란타나' 등 사람들에게 생소한 식물뿐만 아니라 국화, 자주천인국(에키네시아)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꽃까지 다종다양한 식물들이 식재됐다. 허브원 구경을 마치고 벚꽃마당으로 올라갔다. 시민들은 홍은2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즐겼다. 벚꽃마당 북쪽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된 소규모 체력단련장이 마련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 등허리 지압기에다 어깨와 등을 대고 좌우로 움직이며 뭉친 근육을 풀었다. 체력단련장 옆에는 소설가 만우 박영준 문학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문학비는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처럼 끝 부분이 뾰족한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 만우 박영준 문학비건립위원회가 2016년 7월 만우 서거 40주기를 기념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만우는 선량한 인간상을 추구해온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모범경작생', '목화씨 뿌릴 때', '아버지의 꿈' 등이 있다. 문학비엔 "선생의 소설 쓰기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을 거쳐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의 작품 속 농민들은 압제와 수탈 속에서도 삶에 대한 적극성과 진취성을 잃지 않았다. 선생은 전쟁의 참화 한가운데 던져진 인간의 삶도 넉넉한 감동의 소재임을 보여줬다"고 적혀 있었다.

2021-10-12 14:47:27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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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97) 인공폭포·산책로 미술관 등 볼거리 가득한 서울 '홍제천'

홍제천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발원해 서대문구·마포구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이 펴낸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홍제천 하천 명칭은 조선시대에 이 일대에 있던 빈민 구제기구이자 중국 사신·관리들이 묵어가던 홍제원(弘濟院)에서 비롯됐다. 홍제천은 여러 별칭들을 갖고 있다. 물줄기가 세검정을 거쳐 홍제원에 이르면 모래가 많이 쌓여 물이 늘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다 해 '모래내', 중국의 사신·관리들이 예복을 갈아입거나 숙식을 할 수 있도록 세운 홍제원이 있어 '홍제원천', 하천이 성산동을 지나 '성산천'으로도 불린다. 홍제천 위로 내부순환도로가 생기면서 한때 '지붕 덮인 하천'이 돼버린 적도 있었지만, 하천 복원을 통해 안산의 지형을 살린 인공폭포, 음악분수, 물레방아 같은 친수공간이 만들어졌고 버드나무, 억새류, 창포류가 식재돼 계절별로 특색 있는 경관을 뽐내는 서울의 여가 명소로 거듭났다. 하천 길이는 13.92km이며, 평균 하폭은 50m다. ◆답답한 가슴 뻥 뚫리는 '홍제천 인공폭포' 지난 27일 오후 서울 홍제천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동교동삼거리에서 153번 버스를 타고 6개 정거장을 이동해 서대문구청에서 내려 홍제1동 방향으로 3분을 걸었다. '까르륵'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홍연교 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등학생 두 명이서 홍제천 냇가에 발을 담그고 물수제비를 뜨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볼링선수처럼 자세를 취한 뒤 물 위로 돌멩이를 날리며 즐거워했다. 그 옆에선 하천 위를 둥둥 떠다니는 청둥오리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어르신이 입으로 '쪼쪼쪼쪼' 소리를 내며 강아지 부르듯 오리들을 호출했다. 청둥오리 한쌍은 사람의 손에 먹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곤 뒤도 안 돌아보고 제 갈 길을 갔다. 유유자적 천변 풍경을 즐기며 홍제천 인공폭포로 이동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온 김모 씨는 "오랜만에 나들이 겸 애들 데리고 놀러 나왔다"면서 "폭포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온 보람이 있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어떻게 이런 곳에 폭포를 만들 생각을 다 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서대문구는 지난 2006~2011년 총 692억원을 들여 홍제천 복원공사를 실시했다. 구는 메말랐던 하천에 물이 흐르게 하기 위해 한강에서 펌프로 물을 끌어 오고, 인공폭포와 음악분수 등을 조성했다. 전망 데크도 만들어 주민들이 폭포와 홍제천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27일 오후 홍제천 인공폭포 앞은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폭포 인근에 설치된 대형 보름달 조형물과 강강술래 토피어리(식물을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르고 다듬은 작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른들에게 "이게 뭐야? 어떻게 만든 거야?"라고 질문했다. 이 조형물들은 서대문구가 홍제천 홍연2교에서 폭포마당 사이 670m 구간에 '가을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을 테마로 연출한 작품들이다. 구는 맨드라미와 황화코스모스 등 12종 4만2000여본의 꽃으로 고향의 집, 꽃들의 향연, 허수아비 정원, 강강술래를 소주제로 한 꽃길을 가꿨다. ◆러닝하며 명화 관람하는 '산책로 미술관' 형형색색의 꽃길을 지나 경의중앙선 가좌역 방면으로 물길을 따라 걸었다. 이날 홍제천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 씨는 "러닝 매니아인데 맨날 동네에서만 뛰기 지겨워 집에서 좀 먼 곳까지 나와봤다"면서 "달리기하러 나온 게 아니라 미술관에 작품 감상하러 온 느낌"이라며 엄지를 추어올렸다. 김 씨는 "세상에 어느 미술관에서 달리기를 하며 백로가 먹이 먹는 걸 보다가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겠느냐"면서 "파리 퐁피두 미술관이나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하나도 안 부러울 정도"라고 극찬했다. 서대문구는 2010년 홍제3교에서 사천교에 이르는 약 3km 구간 내부순환도로 교각에 '홍제천 산책로 미술관'을 조성했다. 서양 회화 작품 20점과 한국근현대 명화, 풍경화 등 총 60점이 전시됐다. 이곳에선 빈센트 반 고흐의 '붓꽃', 폴 고갱의 '퐁타방의 풍경', 알프레드 시슬레의 '아르장퇴유의 언덕 위의 곡물밭', 장 프레데릭 바지유의 '작은 정원사', 김환기의 '항아리', 이인성의 '빨간 옷을 입은 소녀'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서대문구 주민 최모 씨는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해 잘 움직이지 못하시는데 홍제천은 휠체어를 타고 산책할 수 있어 참 좋다"면서 "20년 넘게 살았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홍제천"이라고 말했다.

2021-09-28 15:35:1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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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96) 천혜의 자연경관 갖춘 서울 '망원한강공원'

서울에는 총 11개 한강공원이 있다. 동쪽에서부터 ▲광나루 ▲잠실 ▲뚝섬 ▲잠원 ▲반포 ▲이촌 ▲여의도 ▲양화 ▲망원 ▲난지 ▲강서 한강공원이 차례로 들어섰다. 이중 망원한강공원은 서울 용산구 원효대교와 마포구 망원동 성산대교 사이 강변 북단에 자리했다. 이름은 공원 서쪽의 망원동 동명에서 따왔다. 국토지리원이 펴낸 한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망원동이라는 이름은 한강변 명소인 망원정에서 유래했다. 정자에 오르면 멀리 산과 강을 잇는 경치를 잘 바라볼 수 있다는 뜻에서 성종이 망원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자전거족으로 북적이는 공원 지난 5일 오후 망원한강공원을 찾았다. 만초천교에서 홍제천교 7.4km 구간이 망원한강공원에 해당하는 구역이다. 총 면적은 42만2347㎡이며, 밤섬을 빼면 27만9281㎡ 규모로 조성됐다. 수영장, 보트장, 배구장, 농구장, 어린이 야구장, 테니스장, 축구장,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 2호선 합정역 1번 출구 앞에서 마포16번 마을버스를 타고 망원유수지·마포구민체육센터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나무 판넬로 오르간을 짜 놓은 듯한 모양의 '망원나들목'이 나왔다. 서울시는 한강 접근시설 부족과 차량통행 불편 지역 해소를 위해 한강 접근성 개선 사업에 나섰고, 2018년 토종나들목과 망원나들목을 추가 신설했다. 망원나들목에는 따릉이를 오른편에 놓고 양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공원을 방문한 대학생 유모 씨는 "어제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한강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침 친구가 오늘 망원동 맛집 가자고 해서 신나게 놀러 나왔다"며 "따릉이 탈 생각을 못하고 치마를 입고 나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왜 공원 길목에서부터 페달을 밟지 않고 힘들게 자전거를 지고 갈까 궁금했는데 바닥에 '자전거를 끌고 가세요'란 말이 적혀 있었다"면서 "그런데 몇몇은 보행자길로 침입해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참 얄미웠다"고 털어놨다. 가을장마로 계속 비가 내리다 모처럼 날이 맑게 개어서인지 5일 오후 망원한강공원에는 구름떼같은 인파가 몰렸다. 공원 잔디밭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까먹거나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옆 도로에서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만끽했다. 성산대교 인근에서는 한강에 물보라를 일으킨 모터보트와 수상스키 묘기가 펼쳐졌다. 검은 선글라스와 헬멧, 버프(방풍용 헤드웨어)를 착용한 라이딩족들이 자전거를 멈춰 세우곤 넋을 놓고 수상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 씨는 "코로나로 활동량이 줄어 살이 뒤룩뒤룩 쪄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동네 친구들과 운동하러 나왔다"면서 "서울 라이딩족이 망원한강공원으로 다 몰렸나 싶을 정도로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미활동 즐기는 건 좋은데 사람이 지나다니면 속도 좀 줄여줬으면 한다"면서 "자전거 도로를 지나 반대편으로 건너갈 때마다 생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멀리 여행갈 필요 못 느껴 5일 오후 시민들은 11개 한강공원 중 망원한강공원이 으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공원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 씨는 "아마존으로 여행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망원한강공원을 걷다 보니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풀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수풀이 우거져 밀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망원한강공원에는 건물 5층 높이의 거대한 느티나무뿐만 아니라 새끼손톱 반만 한 작은 포도알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작살나무 등이 식재됐다. 안타깝게도 몇몇 식물들에서는 초록잎보다 누렇게 탄 잎들이 더 많이 발견됐다. 느릅나무와 뽕나무들의 피해가 특히 더 컸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올해의 경우 잦은 강우로 미국흰불나방, 느릅나무등에잎벌레 등의 피해가 극심한 실정"이라면서 "한강공원의 여건상 효과가 좋은 맹독성 살충제를 사용할 수 없어 인체와 나무에 피해가 없는 약제로 살포했지만 병충해의 피해가 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뭇잎이 없거나 황색으로 변한 것은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 먹고 즙액을 빨아들여 발생한 사례"라며 "병충해 방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2021-09-07 14:30:0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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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95) 예술과 낭만이 깃든 서울 서초구 '몽마르뜨 공원'

지난 22일 시민들이 몽마르뜨 공원 일대를 산책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빼먹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이다. 높이는 약 130미터로 언뜻 들었을 땐 '에계계, 그 정도밖에 안 돼?'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파리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탓에 늘 사람들로 붐빈다. 몽마르트르란 이름은 '마르스(전쟁의 신) 산'을 의미하는 라틴어 'Mons Martis'에서 왔다는 말도 있고, '순교자의 산(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지난 22일 몽마르뜨 공원을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피카소, 모딜리아니, 툴루즈 로트렉, 베를리오즈 등 많은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다. 파리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다면, 서울엔 몽마르뜨 공원이 있다. 지난 22일 오후 시민들이 몽마르뜨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초구는 지난 2005년 반포배수지에 6000여평 규모로 수목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몽마르뜨 공원은 프랑스의 유명 의류 브랜드 '까샤렐'의 장 부스케 회장이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제안한 것이다. 까샤렐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자연보호 기금으로 마련해 내놓고, 서초구는 반포배수지 일대에 나무를 심어 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공원명은 인근 서래마을에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파리의 명소를 따와 지었다고 구는 전했다. ◆해외여행 대신 동네여행 지난 22일 오후 시민들이 몽마르뜨 공원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속 작은 프랑스' 몽마르뜨 공원을 찾았다. 지도 안내대로 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로 빠져나와 국립장애인도서관 방향으로 약 650m(14분)를 걸었다. 예상과 달리 공원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기웃대다 누에다리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숲길을 조금 들어가서야 누에다리로 이어진 몽마르뜨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가마솥 솥뚜껑을 엎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조형물로, '서초구 상징기준점'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상징기준점은 2010년 세계측지계 도입에 따라 GPS 측량으로 설치한 측량 기준점이다. 구는 상징기준점과 함께 세계 주요나라를 표기한 지명표시석과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바닥 지명판을 공원 입구에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22일 오후 한 어린이가 몽마르뜨 공원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이날 공원에서 만난 대학원생 임모 씨는 "집에만 있기 답답해 놀러 갈 만한 곳을 알아보다가 '나혼자 산다'에 카이가 다녀간 곳이라 해 궁금해 와봤다"면서 "토끼가 많다고 들었는데 암만 찾아봐도 잘 안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토끼는 없지만 프랑스의 정취가 묻어난 작품들이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면서 "집 밖에 나온 보람이 있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 22일 오후 몽마르뜨 공원에서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부지발의 무도회'를 본떠 만든 조각상을 발견했다./ 김현정 기자 몽마르뜨 공원 한가운데에는 두명의 남녀가 춤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설치됐다.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캔버스에 그린 '부지발의 무도회'를 본뜬 작품으로, 어디에선가 노래가 흘러나오면 살아 움직일 것처럼 역동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 옆엔 몽마르뜨에서 작품 활동을 펼친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의 조각상이 나란히 놓였다. 22일 오후 어린이들이 몽마르뜨 공원에서 뛰어놀고 있다./ 김현정 기자 아이들은 몽마르뜨 화가들의 자화상이 새겨진 포토존 앞에서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 동작구에서 온 조모 씨는 "해외여행을 가고 싶을 때마다 찾는 코스 중 하나"라면서 "외국인들이 많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여행 못 간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파리 몽마르뜨에서 실팔찌 강매 당할까 봐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팔짱 끼고 다니고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사색하기 좋은 공간 이달 22일 시민들이 몽마르뜨 공원에서 캠핑을 즐기고 있다./ 김현정 기자 공원 한켠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는 시민들도 있었다. 동네 주민 박모 씨는 "인위적인 콘크리트 길 뿐만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흙길도 나 있어 산림욕 하기 좋다"면서 "평일에는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공원 여기저기 적혀있는 시를 감상하며 사색하기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이달 22일 오후 한 시민이 몽마르뜨 공원에서 산림욕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그의 말대로 공원 곳곳에 시가 수 놓인 팻말이 놓여 있었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에 살아 있는 기둥들은 / 때때로 어렴풋한 얘기들을 들려주고 / 인간이 상징의 숲을 통해 그곳을 지나가면 / 그 숲은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광막한 / 어둡고 그윽한 조화 속에서 /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합한다' 공원을 유유자적 걷다가 발견한 샤를 보들레르의 시 '교감'이다. /김현정기자 hjk1@metroseoul.co.kr

2021-08-24 13:57:50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