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검증위 "반도체 직업병, 확인 어려워…포괄적 지원보상 필요"
[메트로신문 정은미기자]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반도체 공장 근로자들의 백혈병 등 직업병 발생에 대한 검증 결과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어렵다"며 인과관계 확인을 유보했다. 그러나 인과관계 확인 여부를 떠나 SK하이닉스가 암과 희귀난치성질환 등의 질병들에 대에 대해 근로자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보상체계'를 마련할 것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 검증위는 25일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간 진행한 SK하이닉스 작업장 산업보건 실태에 대한 검증결과와 개선과제를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사업장 내 직업병 관련 문제가 제기되자 지난해 10월 회사와 독립적으로 선정된 외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구성했다. 검증위는 이후 1년 간 작업환경 실태 및 직업병 의심사례 조사 등을 포함한 산업보건진단을 실시했다. 검증위는 조사 결과 "새로운 사실을 다수 확인했지만 발생기전이 복잡한 암이나 발생률이 극히 낮은 희귀질환들은 질환의 특성상 인과관계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질병발생의 원인이 되는 유해인자에 상당한 수준의 노출이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은 반도체 직업병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근로자의 심각한 질병들에 대해 인과관계 확인을 유보하고 대신 회사가 건강손상 근로자들의 치료와 일상유지에 필요한 기본수준을 지원하는 '포괄적 지원보상체계'를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다. 검증위가 SK하이닉스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제품 860종(성분으로는 총 2296물질)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발암성, 돌연변이원성, 생식독성이 있는 물질 18종이 확인됐다. 이들 중에 아르신, 황산 등은 생산 공정에서 사용되는 핵심물질이며 석유계 가스, 나프타, 정제유 등과 같이 장비보수, 세척 등에 사용되는 제품의 성분인 물질도 있었다. 지금까지 화학물질 성분이나 독성을 알기 어려웠던 영업비밀물질 중 작업자들에게 노출가능성이 높은 제품 위주로 선택해 분석한 결과 총 151개의 화학물질을 새롭게 확인됐다. 상대적으로 독성이 높은 화학물질이 의미 있는 농도로 확인된 경우는 에틸벤젠(함량 3%), 크레졸(4.2%)이었다. 또 일부 공정에서 포름알데하이드 등 유기 화합물, 비소 등 중금속, x-ray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노출기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일부 공정에서 전자파에 대한 노출이 국외의 전기취급 직종에 비해 다소 높게 나타났다. 또 지난 2010∼2014년 암으로 병가를 신청한 SK하이닉스 근로자는 모두 108명으로 이중 갑상선암이 전체의 56.5%(61명)로 가장 많았다. SK하이닉스 근로자들의 갑상선암 발생 확률이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에 비해 남성은 2.6배, 여성은 1.3배 높다는 점에서 유의미 하다고 검증위 측은 설명했다. 이어 뇌종양(10.2%), 위암(9.3%), 유방암(8.3%) 등의 순이었다. 백혈병 등 조혈기계 암은 4.6%였다. 또 SK하이닉스 생산직은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에 비해 자연유산율이 1.3배, 여성 방광염이 1.1배 높았다. 피부염이 여성은 약 1.4배, 남성은 1.3배 더 높았다. 검증위는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SK하이닉스가 근로자들의 치료와 일상유지에 필요한 기본수준을 지원하도록 '포괄적 지원보상체계'를 제안했다. 지원 대상자로 재직자는 물론 질병에 따라 협력업체 재직자와 퇴직자, 자녀 등도 포함하고 대상 질환으로는 반도체 산업과 조금이라도 상관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암으로 정했다. 구체적으로 갑상선암, 뇌종양, 위암, 전립선암, 직장암, 췌장암, 난소암,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폐암, 비호지킨림프종, 기타 조혈기계 암 등이다. 다발혈관염육아종증, 전신성 홍반루푸스, 전신경화증,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등의 희귀난치성질환, 불임, 자녀의 소아암과 선천성 심장기형 등도 포함하도록 권고했다. 검증위는 보상과 별도로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작업장에서 산업보건안전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총 127개 개선과제를 제안했다.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인 장재연 산업보건검증위원장은 "이번 SK하이닉스의 검증위원회의 경험과 제안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고 나아가 근로자 질병에 대한 사회적 보장의 확대, 산재보험 개혁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