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낮.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고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말소리가 가득한 거리. 평일 낮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서울 명동 한복판은 이미 글로벌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과거의 획일적인 단체 쇼핑 투어는 사라졌지만, 삼삼오오 목적이 명확한 '핀포인트(Pin-point) 관광'의 거점으로 완벽히 재편된 모습이다.
롯데백화점 본점 1층 명품관에 들어서자마자 매장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왔다. 현장에서 만난 보안 직원은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외국인 고객들의 오픈런 행렬이 일상이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세금 환급(텍스리펀) 데스크의 한산함이었다. 기존에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 뒤 영수증을 모아 백화점 내 전용 데스크나 공항 출국장에서 줄을 서서 돈을 돌려받아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정부가 매장에서 즉시 세금을 깎아주는 '즉시 환급제'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백화점 명품관이나 매장 결제대에서 외국인 여권을 스캔하면 그 자리에서 부가세를 제외한 금액만 바로 결제된다. 따로 세금 환급 데스크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백화점 곳곳에 무인 키오스크(KIOSK)가 설치된 데다, 스마트폰 앱으로 영수증을 스캔해 모바일로 즉시 환급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안내데스크 직원은 "루이비통, 샤넬, 디올 등 하이엔드 브랜드에 대한 외국인, 특히 중국인 고객들의 선호도가 압도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내수 진작의 정체기를 겪던 국내 백화점 명품 매출이 외국인 수요라는 확실한 견인차를 만나 다시 반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명동 상권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곳은 다름 아닌 약국가다. 이제 약국은 단순한 의약품 처방 공간이 아닌, 필수 관광 코스로 기능하고 있다.
실제 방문한 명동 일대 약국들은 이미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매장 전면에는 중국어·일본어·영어에 능통한 직원이 배치되어 있었고,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탄 파스, 소화제, 기능성 마스크팩 등이 전용 매대에 큐레이션되어 있었다.
현장의 김 모 약사(30대)는 "매출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고객의 대량 구매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유통업계가 'K-약국'을 단순한 유행이 아닌, 실생활 밀착형 제품을 소비하는 새로운 '소비형 관광'의 핵심 지표로 주목하는 이유다.
이러한 현장의 변화는 통계로도 고스란히 증명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5월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카드 소비 지출액은 사상 최초로 2조 원을 돌파했다.
특히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한 중국인 관광객의 카드 소비는 전년 동월 대비 214% 이상 급증했다. 업종별로는 쇼핑, 이동, 의료·웰니스, 식음료 소비가 고르게 늘었다. 쇼핑업은 전년 동월 대비 77.8% 증가했고 운송업은 70.6%, 의료웰니스업은 65.8%, 식음료업은 64.9% 늘었다. 세부 업종에서는 약국 소비가 206.1% 증가해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백화점과 면세점은 각각 89.2%, 87.6% 증가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3시, 인근의 유명 노포 '명동교자' 앞에는 여전히 긴 대기 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기 고객의 대다수는 외국인이었다. 선불제로 운영되는 이곳 계산대 앞에서는 한 외국인 관광객이 현금 결제 가능 여부를 두고 직원과 소통에 난항을 겪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국의 외식·유통 업계가 카드와 모바일 페이 중심으로 초고속 전환된 반면, 여전히 현금 의존도가 높은 일부 국가의 관광객들에게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명동 상권은 부활했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만 치우쳤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외국인 소비는 '럭셔리, 웰니스, 미식'이라는 명확한 타깃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다만, 디지털 결제 인프라의 그늘에서 당황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처럼 소비의 질을 뒷받침할 세심한 인프라 보완이 향후 지속 성장을 위한 과제로 남아있다.
/신원선기자 tree6834@metroseoul.co.kr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