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트 87.33달러·WTI 84.88달러…합의 기대에 3%대 급락
美 CPI 끌어올린 에너지 변수 완화…환율·공급망 불확실성은 여전
미국 소비자물가를 4%대로 끌어 올렸던 국제유가가 미·이란 종전합의 기대 속에 급락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한국은행의 물가 셈법도 다시 흔들리고 있다. 다만 합의가 최종 확정되지 않은 데다 에너지 공급망 정상화와 원·달러 환율 불안이 남아 있어, 유가 하락이 곧바로 금리 인하 명분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국제금융시장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배럴당 87.33달러에 마감했다. 전 거래일보다 3.05달러, 3.37% 하락한 수준으로 3월 초 이후 최저치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84.88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2.83달러, 3.23% 떨어졌다.
유가를 끌어 내린 것은 미·이란 종전 협상 진전 기대다. 미국과 이란이 중동 충돌을 완화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여는 합의에 근접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완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이란과의 합의가 일요일 서명될 예정이며, 서명 직후 호르무즈 해협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 美 물가 끌어올린 에너지
유가 하락이 중요한 이유는 최근 미국 물가 급등의 핵심이 에너지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5%,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전년 대비 상승률은 4월 3.8%에서 더 높아져 4%대에 재진입했다.
물가를 끌어 올린 주된 요인은 에너지였다. 5월 에너지 가격은 전월 대비 3.9% 올랐고, 휘발유 가격은 한 달 새 7.0% 뛰었다. 미국 노동부는 에너지가 월간 CPI 상승분의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중동 긴장과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소비자물가로 빠르게 전이된 것이다.
반대로 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면 6월 이후 미국 물가 경로에는 완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에너지 가격이 다시 내려가면 휘발유와 운송비 부담이 줄고,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둔 연준 입장에서도 유가 방향은 물가 전망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다만 유가 급락만으로 연준이 곧바로 완화 신호를 내기는 쉽지 않다. 5월 CPI가 이미 4%대에 올라선 만큼 에너지 가격 하락이 일시적일지, 근원 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안정으로 이어질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한은 인하 명분은 약해
국내경제에도 유가 하락은 분명 호재다. 한국은 원유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국제유가가 내려가면 석유류와 공업제품, 운송비, 서비스 가격으로 이어지는 비용 압력이 완화될 수 있다. 최근 국내 물가가 다시 3%대로 올라선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안정은 물가 상방 압력을 낮추는 요인이다.
하지만 한은이 곧바로 금리 인하 쪽으로 움직일 환경은 아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완화 효과가 환율에서 일부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내려가도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 원화로 환산한 수입가격 부담은 크게 줄지 않을 수 있다.
한은도 이미 유가와 환율을 물가 전망의 핵심 불확실성으로 지목했다. 한은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기존 2.2%에서 2.7%로 크게 올려 잡았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미·이란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에너지 공급망이 정상화되고 높은 국제유가가 안정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수 있다고 봤다.
한은의 금리 경로도 여전히 완화보다는 경계 쪽에 가깝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지만, 향후 기준금리 인상 시기와 속도를 물가 압력, 경기 개선 흐름, 금융안정 상황을 보며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통위원 2명은 기준금리를 2.75%로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신 총재는 "통화정책은 정책 변수 간 상충 관계에 직면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그런 상충이 크지 않다"며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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