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상품 대기업 쏠림·중소기업 소외 지적
만기재예치·현금 방치 등 수익률 저해 관행 확인
실물이전 미안내·불리한 연금지급 방식도 개선 요구
#.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 씨는 퇴직연금 계좌에 쌓인 돈을 수년째 그대로 두고 있었다.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같은 상품에 재가입했지만,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상품이 있다는 사실은 안내받지 못했다. 뒤늦게 확인해보니 같은 시기 대기업 가입자에게는 더 높은 수익률 상품이 제공되고 있었다. 김씨는 "연금은 알아서 굴러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이 국민 노후자산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금융당국이 업계 전반의 관행 점검에 나섰다. 퇴직연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단순 상품 판매를 넘어 '수익률 관리'와 '가입자 보호' 중심으로 사업자 역할이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5일 퇴직연금사업자 준법감시 설명회를 열고 최근 검사에서 확인된 주요 지적 사례를 공유하며 사업자들의 선관주의 의무 이행과 내부통제 강화를 당부했다. 이번 설명회는 은행·증권·보험사 등 46개 퇴직연금사업자의 준법감시인과 실무자 약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향후 검사 방향과 중점 점검사항도 함께 안내됐다.
금감원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단순한 관리 소홀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들이 확인됐다. 우선 일부 사업자는 판매 물량이 제한된 고수익 상품을 대기업이나 주요 고객에게 집중적으로 제공하고, 중소기업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안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관행도 여전했다. 확정급여형(DB) 가입자들이 기존 상품에 반복 가입하는 '만기재예치' 방식에 의존하면서 더 유리한 상품을 놓치는 사례가 많았지만, 사업자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체상품 제시나 비교 정보 제공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부 사업자는 계열사 상품이나 특정 금융회사 상품을 장기간 반복 선택하도록 두면서도, 가입자에게 더 유리한 상품을 제시하지 않아 선관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지적됐다.
퇴직연금 '방치 문제'도 확인됐다. 적립금을 1년 이상 운용하지 않고 현금으로 보유한 확정기여형(DC) 가입자가 상당 비중을 차지했음에도, 이에 대한 운용 권유나 관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나타났다.
가입자 권익과 직결되는 절차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실물이전 제도를 제대로 안내하지 않아 불필요한 매도·재매수로 수수료 부담이 발생하거나, 연금 개시 이후 지급 조건 변경이 제한되는 등 가입자에게 불리한 구조가 유지된 사례도 포함됐다.
금감원은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는 핵심 제도"라며 "사업자는 수탁자로서 선관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가입자의 권익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이번 설명회에서 안내한 사항에 대해 사업자별 자체 점검을 요구하고, 제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업무 처리의 적정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아울러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점검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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