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든 음악이든 마찬가지다. 예술을 한다고 해서 큰 부를 얻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회적 위상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자식에겐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직업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왜 예술을 하는가.
동기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환원해 사회적 담론을 촉발한다. 전쟁, 불평등, 환경 파괴와 같은 거대한 문제 앞에서 침묵할 수 없다는 사명감 혹은 책임감이 그들을 움직인다. 이때의 예술은 개인의 가치관을 사회에 드러냄과 동시에 공동체적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매체다.
또 다른 이들에게 예술은 생존의 수단이다. 내면의 혼돈과 고통을 감내하게 해주는 방법이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색채와 형태, 소리와 몸짓으로 치환하여 치유하는 길이다. 그것은 정신적 위기나 경제적 곤란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주는 유일한 밧줄이라 해도 무방하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조차 없다. 어떤 예술가는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새 삶의 전부가 되었다고 한다. 숭고한 결단이 아니라, 창작 행위가 선사하는 원초적 즐거움과 충족감에 이끌려 운명처럼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도 있다. 개인적 생각으론 이러한 '우연성'조차 필연의 다른 이름이다.
이 밖에도 순수한 미학적 탐구 자체를 동기로 하거나 다른 무엇과의 연결에 대한 열망 또한 예술을 하는 이유가 된다. 형식과 내용의 완전한 조화, 색채의 순수성, 구성의 절대적 균형, 아름다움의 본질적 구현, 소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작품은 하나의 미적 우주이자, 현실 너머의 차원을 엿보게 하는 창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창조적 충동과 무언가를 해석하려는 욕망이다. 이는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정립하려는 본능적 에너지이며, 감각과 사유를 형상화하여 타자와 공유하려는 인간 본성과 직결된다. 예술은 바로 그 욕망이 구체화된 결과이자 존재를 드러내며 세계를 새롭게 열어젖히는 행위다.
중요한 것은, 그 시작이 어디서 비롯되었든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자문이 예술가의 후속 선택을 관통하는 일관된 원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방향, 주제의식, 매체, 발표 공간 등 모든 것이 이 질문 위에서 다시 질서화된다. 미술계 내에서의 관계망 역시 동일한 질문으로부터 생성된다.
명확한 동기를 지닌 예술가는 실험기를 거치며 작품의 내적 논리를 구축하고 미학적 지향을 견고히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장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이들의 작품은 한결같은 문제의식과 탐구의 궤적을 보여주며, 흔들리지 않는 예술적 독자성을 갖고 있다. 반대로 동기가 희미한 경우에는 방향을 잃고 외부의 유행이나 시장의 요구에 쉽게 흔들린다. 자기만의 미적 언어를 정립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작은 파동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할 위험이 있다.
예술가는 창작의 경험을 축적하며 변화하고 성장한다. 예술가와 그를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바뀌고 시대적 맥락과 개인적 상황, 태도도 달라진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자문은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어쩌다보니 예술가로써의 삶을 살고 있다 해도 매한가지다. 이 자문을 통해 예술가는 끊임없이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갱신한다. 초기의 열정이 성숙한 사명감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사적 동기가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때로는 전혀 다른 창작의 지향점을 발견하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건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자문은 예술가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확립하는 근본적 토대이자, 의미 있는 작품 창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 살아있을 때 비로소 예술은 개인의 영역에서 집단의 기억과 감각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 예술이 세계를 바꾸는 방식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어쩌면 이 질문의 끈질긴 지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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