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아트페어인 '아트바젤홍콩(Art Basel Hong Kong)'은 오랫동안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문화예술 향유부터 관광, 작품 구매까지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아트 블랙홀'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치적 불안정과 경기 침체의 여파로 예전의 영향력만큼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홍콩이 주춤하는 사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새로운 거점으로 급부상한 곳은 서울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컬렉터들이 주목하는 대안 도시로 자리매김했으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SEOUL, 이하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이하 프리즈)의 공동 개최 또한 국제적 미술 교류의 핵심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2022년부터 시작된 키아프와 프리즈의 동행은 올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9월 3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나흘간 진행된 프리즈에는 약 7만 명이 관람객이 방문했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프리즈보다 하루 더 열린 키아프는 작년 대비 소폭 증가한 8만여 명을 끌어 모았다.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매출 또한 양호한 성적을 거뒀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들이 감추고 있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몇 점의 고가 작품 판매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평균 판매가격은 예년 대비 현저히 낮아졌고,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더구나 판매 성과의 대부분이 프리즈에 집중되었다. 키아프에서는 중저가 작품이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거래되었으나 프리즈의 매출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키아프가 프리즈의 2부 행사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문제도 남겼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이미 프리즈가 서울에 입성할 당시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사실 5년 간 프리즈와의 동행을 결정한 2022년 당시만 해도 키아프 측은 아시아 최고 미술시장으로 거듭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프리즈 또한 '공동의 노력', '협력', '존중' 운운하며 키아프의 바람에 부응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그러나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치러진 네 번의 공동 개최 결과, 키아프가 프리즈의 들러리에 그칠 수 있다는 초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유력 화랑들마저 키아프를 떠나 프리즈로 이동했고, 관람객들 역시 프리즈를 우선 관람한 후 키아프를 둘러보는 패턴을 보였다. 결국 안방까지 내어준 상황에서 주도권마저 프리즈에 넘어간 형국인 셈이다.
키아프와 프리즈와의 동행은 이제 한 번 남았다. 프리즈는 2026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서울 전시를 희망하는 모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아트페어는 철저히 자본논리에 움직이는 곳이고, 고급 콘텐츠인 미술품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다. 더욱이 전 세계 미술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아시아 중에서도 한국은 침체된 홍콩이나 중국에 비해 매력적인 시장이다.
프리즈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서울의 높은 문화수준' 운운하지만 실은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지역으로 바라보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키아프는 수익 극대화를 위한 발판일 뿐이며, 이러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문화의 주체가 아닌 글로벌 프랜차이즈 페어가 주도하는 소비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적 뒷받침과 명확한 비전 및 큐레이션, 엄격한 심사를 통한 예술성 중심의 작품과 갤러리 선별, 재원 마련을 위한 남다른 노력 등이 필요하다. 일각에선 키아프와 프리즈를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유한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키아프만의 고유한 정체성 확립을 통한 브랜드 파워 구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프리즈와의 격차는 해소될 수 없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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