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밀어붙인 추진력...시험대는 지금부터"[2025]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웠다. 원칙주의자로 꼽히던 그가 시장 친화적 개혁을 밀어붙이며,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지난해 2월 첫 세미나에서 초안을 내놓은 뒤 불과 3개월 만에 가이드라인을 확정했고, '코리아 밸류업지수' 출범, 상장지수펀드(ETF) 상장까지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전통적인 고위 관료 스타일로 꼽히는 정 이사장은 엄격하고 세밀한 편이지만, 일단 방향성을 정하면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실행에 옮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이사장은 '코리아 프리미엄'을 위한 글로벌 외연 확장에도 집중했다. 2025년 5월에는 기존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는 폐쇄한 뒤 영국 런던에 사무소를 이전 개소했고, 같은 해 하반기에는 뉴욕 사무소도 설립할 예정이다. 이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정공법 행보로 보여진다. 2008년 베이징, 2017년 싱가포르 이후 세 번째 해외 거점이자, 해외 투자자와의 접점 확대라는 현실적 포석이다. 올해 2월 기자간담회에서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해 해외사무소를 통한 해외 마케팅을 확대하겠다"고 말한 만큼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 이사장은 취임 이후 조직개편과 규제 강화를 쉼 없이 밀어붙였다. 2024년 9월에는 미래사업본부를 출범시키면서 기존 증권거래 수수료에 편중된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인덱스·데이터 사업부를 통합·확대해 본부 단위로 승격시켰고, 이부연 상무가 초대 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앞서 같은 해 4월에는 11명의 집행 간부 중 7명을 신임 인사로 발탁하면서 사실상 세대교체를 진행했다. 더불어 2025년 4월에도 취임 2년차를 맞아 임원급 인사를 단행했는데, 주요 신임 본부장을 60년대생 후반으로 발탁하면서 고속 승진을 주도했다. 정규일 신임 이사는 지난해 4월 상무(본부장보)로 승진한 이후 1년 만에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을 맡게 됐다.
규제 측면에서도 강경했다. 2025년 2월에는 상장폐지 심사기간을 대폭 축소해 '좀비기업 걸러내기'에 나섰고, 지난 3월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불법 공매도를 막기 위해 '공매도 중앙점검시스템'(NSDS) 개발을 완료하기도 했다. 그 결과, 코스피 상장폐지 심사 개선기간은 기존 최대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됐고, 코스닥 상장폐지 심사 개선기간도 최대 2년에서 1년 6개월로 짧아졌다.
정 이사장은 확실히 '추진력 있는 관료형 리더'라는 점을 입증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과제를 짧은 시간 안에 제도화하고 지수와 상품까지 연결한 점, NSDS 개발을 완료한 점들이 성과로 꼽힌다. 원칙과 속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행보들이 지금까지는 유효했다.
그러나 성과만큼이나 시험대도 많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으나 기업들의 밸류업 공시는 지지부진했고, 2025년 상반기 기준 밸류업 프로그램 본 공시에 참여한 기업은 155개사에 불과하다. 코스피 기업들의 경우, 시총 기준 50.2%이기는 하지만 기업 수로 따졌을 때는 20%를 못 채운다. 심지어 코스닥 기업의 참여율은 3%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2025년 3월 출범한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NTX)의 약진은 더욱 위협적이다. 불과 넉 달 만에 프리·애프터마켓 거래대금의 30% 이상을 가져갔고, 한국거래소보다 20~40% 낮은 수수료로 투자자를 흡수하고 있다. 기존 독점 구조가 빠르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내부에서도 "넥스트레이드를 예전보다 훨씬 의식하게 됐다"는 불안이 새어 나온다.
위기를 느낀 한국거래소는 거래 시간을 12시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증권사와 노동조합 등의 거센 반발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다. 거래 시간 증가로 인한 노무 부담, 시스템 개발 측면에서의 비용 부담 등이 난제로 꼽힌다. 게다가 최선주문집행(SOR) 시스템 작용이라는 변수로 인해 투자자에게 유리한 넥스트레이드로 주문 체결이 될 확률이 높은 만큼 수수료 인하가 제일 중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3월 18일 발생한 코스피 전 종목 거래정지 사고는 뼈아픈 흉터다. 대체거래소 출범으로 인해 중간가 호가 시스템이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태로, 코스피 전 종목이 멈춘 것은 2005년 통합 출범 이후 최초다. 정 이사장의 강한 추진력이 위기 국면에서 빛을 발할지, 아니면 원칙주의로 돌파해낼 것인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약력
정 이사장은 1961년 8월18일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나 서울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현재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1984년 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무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관을 지낸 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을 거쳤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박근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이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2019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는 외교부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대표로도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2021년 8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금융감독원장을 역임한 후 잠시 보험연구원 연구자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한국거래소 제8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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