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상법 개정안이 정부의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좌초됐다. 재계의 우려와 학계의 지적을 외면한 채 밀어붙여졌던 개정안은 겉으론 주주 보호와 투명경영을 위한 개혁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선언적 문구와 모호한 규정뿐이다.
대표적 사례가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이다. 이는 이미 판례와 실무에서 확립된 개념이다. 그런데도 굳이 법에 새로 넣은 건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명문화하면서도 그 기준이나 범위는 흐릿하게 남겨뒀다는 점이다. 분쟁의 소지만 늘었고 법적 해석의 통일성은 무너졌다.
재계는 오래전부터 미국식 충실의무 도입에 경계심을 보여왔다. 미국은 수백 년간의 판례와 제도로 기준을 쌓아왔지만, 우리는 그런 기반 없이 껍데기만 흉내 낸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던 민주당이 오히려 자본을 내쫓을 법을 만든 셈이다.
전자주총 의무화 조항도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다. 대기업 기준으로 만든 전자시스템을 중소·코스닥 기업까지 강제하려는 발상은 실행 비용과 준비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소액주주 보호'라는 명분만 요란할 뿐이다.
어릴 적 어른들은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도 그렇다. 주주 보호, 투명 경영, 책임 강화 등 말은 멀쩡하지만, 내용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 설계도일 뿐이다. 말이 좋다고 좋은 법이 되는 건 아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개혁은 혼란만 부른다.
이쯤 되면 궁금하다. 민주당은 과연 경제를 이해하고 있는가. 이재명 대표는 과거 "호텔 예약금 10만원이 지역을 돌고 돌아 경제를 살린다"고 말했다. 선의의 소비가 선순환을 만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빚을 소비로 포장한 착시 속에서 재정은 망가지고 미래 세대는 빚더미에 오른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 등 이재명표 경제정책은 하나같이 국가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재정 만능주의다. 하지만 그런 국가는 없다. 재정은 고갈되고 시장은 질식한다. 단기적 표는 얻을지 몰라도 경제를 망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법은 선언이 아니라 도구다. 정치는 구호가 아니라 책임이다. 실체 없는 개혁과 계산 없는 포퓰리즘이 활개치는 사이, 기업은 움츠러들고 자본은 한국을 떠난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경제까지 무너뜨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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