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시대다. 디지털금융 확산으로 은행 점포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10년 사이 시중은행 점포는 40% 가까이 사라졌다. 점포를 찾을 일이 없는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ATM(현금 자동입출금기)이 사라지는 속도는 더 빠르다. 지난 2019년에는 전국에 3만6000대의 ATM이 있었다. 올해 7월에는 전국에 2만7000대의 ATM만 남았다. 은행들은 운영 비용 증가, 현금 사용량 감소를 ATM 철수의 이유로 들었다.
카드, 간편 결제 앱의 보급에 휴대하기 번거로운 지갑은 사라졌고, 서울 시내에서 운행하는 100개 이상의 버스 노선은 현금을 받지 않는다. 현금이 사라지면서 편리한 시대가 온 것 같지만, 디지털 금융이 낯선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시대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디지털 금융 이용률은 54.4%다. 고령자의 절반은 간단한 송금 업무에도 은행 점포나 ATM을 찾는다.
'금융사각지대'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전국 465개의 유인도 가운데 은행 점포가 있는 섬은 10곳도 되지 않고, 육지에도 4대 은행 점포가 없는 지자체가 약 50곳이다. 면적당 ATM 대수는 서울이 강원도보다 100배 많다.
은행권에서는 '금융 접근성 격차 해소'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지만, 먼저 나서는 은행은 없다. 비용 때문이다. 통상 ATM 한 대를 유지하는 비용은 1년에 1000만원, 출장소 한 곳을 운영하는 비용은 1년에 5억원 안팎이다.
최근 몇 년간 은행권이 비용 절감을 통한 실적 개선에 사활을 건 만큼, '금융 접근성 격차 해소'는 은행끼리 눈치를 보며 보폭을 맞추는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가 됐다.
일부 은행이 금융 소외 해소를 위해 마련했다는 '이동식 점포'는 명절이 아니고선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앞서 은행권이 기존 ATM 철거의 대체재로 내세웠던 '은행 공동 ATM'은 전국에 10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추이에 기름을 붓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경영지표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에 주안점을 둔 '밸류업'을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요구에 은행들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앞으로 비용을 더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돈'이 드는 금융 격차 해소는 계속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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