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시장 인근에 소재한 회현지하쇼핑센터는 필름 카메라, 레코드, 수집용 우표 등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상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 '마니아'들의 성지다. 이곳에서 15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위그매냐' 또한 여러 마니아를 위한 특별한 가발을 취급하는 매장이다.
한국에서 가발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흔히 가발하면 떠오르는 탈모를 앓는 중년 남성뿐만 아니라 머리숱이 줄어 고민하는 중년 여성, 짧은 머리가 어색한 군인, 자기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학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패션 아이템으로 가발을 찾는다.
그렇지만 통상 검은색이나 갈색의 가발을 흔히 찾아볼 수 있을 뿐, 공연·촬영·코스프레 등 분장에 사용되는 형형색색의 가발을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란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분장용 가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은 위그매냐를 비롯해 전국에 세 곳뿐이다.
위그매냐를 15년째 운영 중인 신지윤 대표의 솜씨도 그만큼 특별하다. 분장용 가발에 사용되는 섬유는 전용 제품 및 전열 기구를 활용한 연출의 폭이 인모보다 넓지만,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소재인 만큼 비전문가는 다루기가 어렵다.
신 대표는 가위질, 열처리, 바느질, 재단에 이르기까지 상품 완성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도맡는다. 매장에서 완성되는 상품 중 신 대표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물건은 없다. 하루에 완성하는 가발은 열 개 남짓이다.
이에 무대를 준비하는 연극·뮤지컬 관계자, 분장을 준비하는 스타일리스트, 취미로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재현하는 코스튬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개성 넘치고 활발한 사람들이 매일같이 매장을 찾는다.
신 대표는 "혼자서 각종 업무를 꾸려나가다 보니 힘들 때도 많지만, 만족한 고객이 단골이 돼 매장을 다시 찾아주기에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 살길 막막해 매장 시작했지만…덕분에 '천직' 찾았다
신지윤 대표는 한 달에 두 번 있는 상가 휴점일을 제외하면 매일같이 10시간 이상 매장을 지킨다. 따로 직원을 두지 않는 만큼 인터넷이나 전화로 들어오는 상담도 직접 진행한다.
지금은 애착을 갖고 매장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매장을 처음 열게 된 계기는 순탄치 않았다.
십여 년 전 신 대표는 남대문 시장 인근의 한 액세서리 제조·유통 기업에 종사했다. 당시 사내에서 액세서리 디자인 및 유통을 도맡으며 제법 높은 자리까지 올랐지만, 회사가 도산하고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빌려줬던 돈까지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서 살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신 대표에게 남았던 것은 밀린 월급 대신 떠맡게 된 액세서리와 가발을 비롯한 패션 소품들 뿐이었다. 그중 신 대표가 가능성을 본 찾은 곳은 가발이었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지금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패션 가발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인터넷 쇼핑몰의 범람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특별한 가발'에 특화된 매장을 열어보는 게 어떻냐는 후배의 권유로 사업 아이템을 교체했다.
신 대표는 "후배가 특별한 상품을 취급하려면 한 번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면서 만화·애니메이션과 관련된 행사장에 데려갔다"라며 "행사장에 모인 많은 사람이 낯설고도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행사를 즐기고 있었고, 이에 호기심과 함께 가능성을 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가발 공장에서 완성된 물건을 떼와 판매하는 수준이었지만,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가위질을 배우고, 여러 전열 기구를 들여놓고, 때로는 해외 작품을 보고 공부도 했다. 고객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단골도 빠르게 늘었다.
신 대표는 "원래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고, 가게를 꾸려오며 활기 넘치는 사람들과 왕래하게 된 것 또한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라며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매장을 열었지만, 그 덕에 천직을 찾게 된 만큼 '새옹지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도…지금은 단골만 수십명
책상 위 달력에 손님의 이름과 납품 일정이 빽빽하게 들어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몇 년 전에는 매장을 닫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
처음에는 짧게 지나갈 것 같았던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정부가 대규모 집합 및 행사 개최를 금지했고, 이에 분장용 가발 수요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만화·애니메이션 행사가 모두 중단된 것.
행사가 사라지면서 단골들의 발길도 끊겼고, 매출도 빠르게 줄어든 만큼 신 대표도 10년 넘게 이어온 매장의 운영을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나 신 대표는 정든 매장의 문을 닫는 대신 매장을 운영하며 얻은 경험을 살려 부업에 뛰어들었다.
신 대표는 "몇 년 동안 인터넷으로도 매장을 운영하면서 생긴 노하우를 살려 인터넷 마케팅에 뛰어들었고, 그 수익으로 간신히 매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며 "코로나19 이전까지는 분장용 가발을 취급하는 매장이 여럿 더 있었지만, 코로나19 당시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가 지나자 끊겼던 단골들의 발길이 되살아났다. 새로운 손님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코로나19로 개최가 미뤄졌던 공연과 행사가 연달아 개최되면서 분장용 가발의 수요가 다시 늘었고, 코로나19 동안 여러 매장이 사라진 만큼 위그매냐를 찾는 고객도 그만큼 늘어난 것.
신 대표는 꾸준히 매장을 찾아주는 손님들과의 관계 덕에 매장을 지금까지 꾸려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매장 입구를 비롯한 벽면을 비롯한 매장 내 온갖 곳에는 손님들이 남겨놓고 간 사진들이 기념 삼아 장식돼 있고, 신 대표와 오랜 기간 왕래한 고객들은 생일, 결혼식 등 각종 기념일마다 그를 친구처럼 초청하곤 한다. 신 대표의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도 단골들은 어김없이 얼굴을 비춘다.
신 대표는 "처음에는 소심한 성격 탓에 고객들과 대화하는 게 무척 어려웠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왕래하다 보니 어느샌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님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가끔은 어려운 손님도 겪게 되지만, 좋은 분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계시기에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라며 "매장에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놀러 찾아오시는 분들도 여럿 계시고, 그럴 때마다 조용했던 매장에 활기가 돌아 일할 의욕이 나곤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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