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에서 정치에 대해 공부할 때, 국회를 '입법부'라 한다고 배웠다. 입법부는 말 그대로 '법(法)을 세우는(立) 곳'이라, 필자는 단순하게 법을 만드는 곳이라고 외웠다. 말랑말랑하던 시절에 외운 것은 커서도 잘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20여년 이상 지나 국회를 출입하는 지금도 국회는 '법 만드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곳인데 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내년 4·10 총선 120일 전인 12일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출마를 희망하는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국회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나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확정하지 못해, 일부 예비 후보자들은 자신의 지역구와 선거 룰도 모른 채 후보 등록부터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년 전에 국회의원 지역구를 획정해야 한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이 법정기한을 넘기는 것은 관행처럼 돼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는 총선을 앞두고 부랴부랴 획정한다. 18대 총선 때는 선거일 47일 전이었는데 갈수록 더 촉박해져 19대 44일 전, 20대 42일 전, 21대 39일 전에 정해져, 후보가 선거 직전에 자신의 지역구를 아는 일도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올해 역시 국회는 법정기한을 훌쩍 넘겼다. 지난 4월에 정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확정하지 못해서다. 결국 국회에서 선거제 논의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예산안은 또 어떤가. 2014년 국회 선진화법 통과 이후 국회가 예산안 법정처리기한을 지킨 것은 2014년과 2020년 단 두 차례 뿐이다. 대부분은 여야의 줄다리기 속에서 협상이 늦어지고, 예산안 통과도 늦어졌다. 심지어 지난해 국회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2023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러다 2024년도 예산안은 2024년 1월 1일에 통과시키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법 만드는 사람들이 법에 정해진 기한을 매번 어기지만, 이들이 반성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입에 반성을 올려도 레토릭일 뿐이며, 반성이 행동으로 옮겨지지도 않는다. 이들이 관행이라는 명목 아래 자신들에게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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