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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안상미 기자의 와이(Why) 와인]<196>라면에 와인, 와인잔엔 소주

<196>드라마 속 와인 '신성한, 이혼'

 

안상미 기자

솔직해질 시간이다.

 

먼저 얼큰하게 끊인 라면에 물컵이든 맥주컵이든 와인 콸콸 부어서 같이 마신 사람 손 들어 보자.

 

다음은 소주. 보이는 와인잔 하나 꺼내와 투명한 소주를 따라서 진짜 향이 달라지는지 잔을 빙빙 돌려본 사람은 나머지 손도 마저 들자.

 

두 손 다 들고 말았다. 드라마 '신성한, 이혼'을 보고서다. 피아니스트였던 이혼전문 변호사는 근사한 와인셀러에서 소주를 꺼내 와인잔에 따라마시고, 이혼을 앞둔 남자는 라면으로 쓰린 속을 달래면서 와인을 반주로 벌컥벌컥 들이킨다. 이 무슨 괴상한 조합인가 싶은데 어느새 따라하고 있고, 또 오묘하게 잘 어울린단 말이다.

 

/드라마 '신성한, 이혼' 화면 캡쳐.

병 밑바닥의 홈에 엄지손가락을 딱 끼우고 레스토랑의 소믈리에처럼 능숙하게 따른다. 와인잔을 한두 번 돌린다. 스월링이다. 코 가까이 가져다 향을 한껏 들이마시더니 맛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공기와 함께 '후루루루' 마신다. 남은 술은 마개를 꼭 닫아 와인셀러 안에 다시 넣어둔다.

 

소위 배운 남자의 와인 마시는 장면 같지만 와인잔을 채운 것은 바로 소주였다.

 

"그거 알아? 소주도 디캔딩이 된다. 공기랑 싹 만나면서 목 넘김이, 캬."

 

승소 소식에 사무장이 소주가 달다고 하자 변호사는 잔이 예술이라며 이렇게 답한다.

 

공기와의 접촉면이 넓어지면 와인의 맛과 향이 더 좋아지게 된다. 디캔딩의 원리다. 소주를 따르니 특유의 알콜향이 더 넓게 퍼지며 코를 찔렀지만 뭔가 증명할 순 없는 순함과 목넘김이 있다. 작은 소주잔으로 한 입에 탁 털어놔야 제 맛이라고 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와인잔에 소주먹기도 해볼만 하다.

 

/드라마 '신성한, 이혼' 화면 캡쳐.

라면과 와인의 조합은 사무장이 만들어낸다. 별거 중인 그에게 아내는 제발 이혼만 해달라고 한다. 청양고추 듬뿍 넣은 칼칼한 라면조차 한 입 넘기기 힘든 상황인 셈.

 

할머니에게서 딸로 주인장이 바뀐 라면집은 잔술 메뉴가 소주에서 와인으로 바뀌었다. 한 잔에 오천원. 와인이라도 마시니 막혔던 속이 뚫린다. 아예 와인병째 받아든다. 잔당 가격이니 주인이 볼 새라 넘치기 직전까지 콸콸 따라 급하게 마신다.

 

와인을 마시는 장면 중에 지금까지 가장 슬펐던 것은 영화 '사이드웨이'였는데 이 드라마도 못지 않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테이블 아래 숨겨두고 슈발블랑을 콜라컵에 따라 먹는거나 라면에 숨도 못쉬고 와인을 삼키는 거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슬픔이다.

 

와인 네 잔에 라면 하나. 라면이 3500원인데 잔 와인값으로 2만원이 나왔다.

 

라면도 얼큰한 국물요리니 와인과 최상의 마리아주는 포기. 다만 같이 마실만 하냐고 묻는다면 '오케이'다. 조미료 감칠맛에 맞게 와인도 다소 진득하고 향신료 느낌의 레드와인이라면 더 좋다.

 

변호사는 와인잔엔 소주를 따라 마시더니 막상 와인을 마실 때가 되자 종이컵에 마신다.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 이, 와인이 종이컵에도 디캔딩이 된다?"

 

종이컵에 편의점 앞 노상 테이블이지만 맛은 좋기만 하다. 역시 와인, 아니 대부분의 술이 그렇지만 정해진 격식보단 어떤 기분에서 누구와 함께 마시는 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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