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폐기시점'이라는 공식이 깨진다. 식품에 대한 '소비기한표시제'가 오는 2023년부터 시행되기로 결정되면서 식품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에서 식품의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대안반영하기로 의결했다. 이로써 2023년 1월부터 현행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표시제가 식품에 적용된다. 다만 우유와 치즈 등 냉장식품에 대해서는 특례조항을 적용해 2026년부터 시행된다.
28일 식약처에 따르면 식품 날짜 표시는 해당 제품의 판매와 섭취가 가능한 기한을 과학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식품의 품질과 안전을 위해 소비자가 꼭 알아야 하는 정보다.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으로 대부분의 식품에 적용하는 날짜 표시 방법이다. 소비기한은 표시된 조건에서 보관하면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간으로 영국, 일본, 호주 등 해외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표시제도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정도 앞선 기간으로 설정하고,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에서 설정하므로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더 길다.
한국의 경우 1985년부터 유통기한 표시제를 고수해왔다. 2007년 부패나 변질 등의 우려가 적은 식품에 한해 품질유지기한을 적용하고, 2012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같이 표기하는 방식을 시범 도입하는 등 지속해서 제도 개선에 힘써왔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고 소비자에게 혼선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소비자 대부분은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3년 발간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유통기한·소비기한 병행표시에 따른 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폐기해야 하는지 묻는 설문에 조사 대상 2038명 중 56.4%인 1150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모르겠다'고 한 응답자는 207명(10.2%)에 그쳤다. 30년 넘게 유통기한을 고집해온 이유다.
하지만 최근 유통기한 표시제가 음식물 쓰레기 양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소비기한표시제가 도입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 P4G 서울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식품·의약품 분야에서 추진할 주요 제도 개선 사항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에서만 매일 1만4314톤에 달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진다.
식약처는 유통기한이 과학적 설정실험을 통해 측정한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보다 짧게 설정되기 때문에 보관기준이 잘 지켜지고 기간이 조금 초과한 것이라면 품질변화는 없다고 설명한다. 품질유지기한 표시 대상 식품도 장기간 보관해도 급격한 품질변화나 변질의 우려가 없어 기간을 초과해 섭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소비기한이 초과한 식품은 섭취해서는 안 되고, 모든 날짜 표시는 가급적 기한을 지켜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업계에서는 소비기한표시제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외식업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기초 재료의 보관 기한이 늘어나면서 식료품 고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도 소비기한 표시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반품하고 폐기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올 2월 전국 외식업체 종사자 1023명을 대상으로 방문·전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기한 표시제가 소비자의 혼란을 방지하고 외식업체의 식품 폐기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47%)와 매우 그렇다(24%) 등 긍정적인 답변이 71%에 달했다.
다만 소비기한의 의미를 묻는 질문엔 절반가량이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의미를 아는 응답자가 약 30%에 불과해 소비기한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냉장식품을 다루는 업계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냉장제품의 경우 0~10도 온도 기준을 벗어났거나 제품이 개봉된 채로 보관됐다면 해당 기간까지 제품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제품이 변질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소비기한표시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기 때문에 소비자가 식품을 올바르게 보관하도록 하는 교육이 먼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품의 신선도가 중요한 낙농유업계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성명을 통해 "소비기한이 도입될 경우 소비자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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