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산업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자동차 업계 노조의 강경 투쟁에 대해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달 비대면으로 진행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쌍용차에 대해 흑자가 나오기 전에 일체의 쟁의 행위를 중단한다는 각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단체협약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늘려서 계약해야 매각 관련 지원을 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업계에서는 국내 완성차 노사가 선진 노사문화를 받아들이고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 주기를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할지 여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년 이상의 다년제 교섭은 미국과 독일 등에서 이미 적용하고 있다. 미국 GM은 단체 교섭을 4년마다 진행하고 있으며 독일과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대부분 격년 또는 3~4년 단위로 임금협상을 벌이고 있다.
◆산은 發 임단협 주기 변화…업계 영향 미치나
이동걸 회장은 국내 완성차 업계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소모적인 임금협상과 쟁의행위에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달 진행된 신년 간담회에서 내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며 "쌍용차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회생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회사가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노조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경영 정상화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가 파업이나 잔업 및 특근 거부 등 없이 오로지 생산활동에 전념하고, 다년제 교섭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없애 흑자 전환에 매진해야 한다는 건 업계 모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임단협 다년제 교섭은 지난해 한국지엠이 노조와의 임단협 교섭에서 먼저 제안한 바 있는 노사 정책이다. 한국지엠은 사측은 노조와의 강경 대치로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고 불필요한 갈등이 조성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지난해 교섭 과정에서 업계 최초로 2년 주기 협상안을 제시했다.
제조업 특성상 노조와의 갈등은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한국지엠의 경우 지난해 코로나19와 노조 파업 등으로 8만 5000대 이상의 생산 손실을 입었는데, 이 중 2만 5000대 이상이 노조의 파업, 잔업 및 특근 거부 등에 따른 피해이다. 한국지엠이 생산 손실을 겪자 부품사들은 자금 압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리기도 했다.
기아도 지난해 임단협 갈등으로 촉발된 노조의 4주 연속 파업으로 4만대 이상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지난해 임단협을 해결하지 못하고 올해 춘투(春投)를 준비하고 있는 르노삼성의 경우 최근 르노 본사에서 "부산공장 생산성 높이지 않으면 한국 떠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노조의 강성 노선은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반작용이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8년 시장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해외 사업장이 있는 중견 이상 제조업체 150곳에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96%에 해당하는 기업이 '국내 유턴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해외시장 확대'가 77%로 1위였으며, '고임금 부담(16.7%)'과 '노동시장 경직성(4.2%)'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임단협 다년제 교섭…노사에 긍정적 영향
임단협 다년제 교섭은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이다. 우선 회사는 소모적 갈등을 줄이고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도 최소 2년 이상의 고용 및 근로조건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어 보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파업 등의 횟수도 줄어들어 노동 생산성도 높아지고, 하도급 업체들도 완성차 업체에 안정적으로 부품을 조달할 수 있어 생태계가 건강해 진다.
이동걸 회장이 3년 교섭 이야기를 한 것과 관련해 민주노총이 13일 논평을 통해 "(이 회장의) 노조에 대한 저열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와 노조의 권리를 산업은행장이 정면으로 부정하며 나섰다"고 비판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묘수가 될 수 있는 다년제 협상안을 거부한 것 치고는 설득력이 없다.
일반적 통념과는 다르게 국내 생산직 근로자들도 2년 협상 주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해 7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생산직 노동자의 77.8%가 적절한 임단협 주기로 '2년 이상'을 꼽았다. 현장은 노동 유연성과 함께 개인별 차별 보상을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노조들은 사측과의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힘 자랑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 관행처럼 이뤄져 왔는데 이번 이동걸 산은 회장의 발언은 노조의 타성에 경종을 울리는 측면이 있다"며 "여러 산업에서 올해를 코로나19 극복의 원년으로 삼고자 노력하는 상황에서 자동차 노조가 임금 인상이나 성과급 등을 또다시 주장하며 노사 대치 상황을 만든다면 국민의 외면을 받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사 갈등을 줄여줄 것을 노조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제8회 산업발전포럼 겸 제12회 자동차산업발전 포럼'에서 크리스토프 부떼 르노삼성 CFO는 "르노삼성의 부산 공장은 스페인 공장보다 임금도 비싸고 세금도 높다"며 "한국에서 외투기업이 제조업을 영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의 고임금 구조를 한국 공장의 경쟁력 저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부떼 CFO는 "깊게 얘기하진 않겠지만 부산 공장 제품의 생산 원가는 스페인 생산 제품보다 1100달러 정도 비싸다"며 "경쟁력이라는 것은 작은 부분으로부터 생긴다"고 말했다.
이날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안정적 노사관계, 경제성, 유연성과 부품 공급망 등이 외국 기업의 투자 결정 상 핵심 고려 요인"이라면서 "경쟁국과 비교 시 한국은 짧은 교섭주기(1년), 노조 집행부 짧은 임기, 지속적 파업, 파견 및 계약 근로자 관련 잦은 규제 변경과 불확실성 등으로 인한 비용상승과 경직성 증가가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지엠 주주들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사업장의 경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경제 및 산업 정책에 크게 좌우된다"며 "한국지엠은 국내 투자를 위해 경쟁하고 있고, 주주들이 한국에 자본을 배정할 경우 우리는 투자를 결정한 주주에 대해 투자에 대해 수익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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