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언어는 때론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동학개미'가 그랬다. 조선 말엽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내건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과 개인투자자를 뜻하는 개미를 합친 말. 주식투자자들은 동학개미란 이름 아래 외국인이 쏟아낸 매물을 받아내는 힘 약한 독립투사가 됐다.
그 말이 생겨난 지도 10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동학개미의 집단적 영향력은 발생 당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해졌다. 표 셈법을 끝마친 계산 빠른 정치인들은 그 영향력에 탑승했다.
이젠 동학개미는 정책 방향성도 바꿀 수 있게 됐다.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 시킨 데 이어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도 현행 유지에 성공했다. 현대판 연좌제로 불리게 된 가족합산 규정 또한 조직적인 움직임을 견뎌내기 버거울 터다.
약자를 자칭하던 개인투자자들이 집단성을 발휘하더니 동학개미란 깃발 아래 정의(正義)가 됐다. 최근 수급 상황은 오히려 개인이 뱉고 외국인과 기관이 사는 형국인데도 그들은 여전한 동학개미다.
기관과 외국인은 국민과 충돌하는 기득권으로 묘사된다. 최근 대주주 요건 관련 사태에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선 백성을 침탈하려는 '왜장'으로 그려졌다. 그의 사표를 받아 냈을 때 동학개미의 결집력은 또 한 번 소리 없이 강해졌다.
이쯤 되면 기관도 안쓰럽다. 기관투자자는 연기금을 비롯해 금융투자, 보험, 투자신탁, 은행, 사모펀드 등이다. 모두 개인이 투자한 자금으로 운용된다. 기관이 돈을 벌면 최종적인 과실은 개인의 몫이다. 외국인과 함께 기득권 동맹으로 묶이기엔 결이 너무 다른데도 개인은 기관이 배를 불렸다는 소식에 분노한다.
동학개미는 집단의 목소리가 정치적 지형마저 변화시킬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내년 3월 공매도가 재개됐을 때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젠 동학개미라는 억지스러운 포장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외세를 몰아내고 희생을 감내했던 동학농민운동이 주식투자와 비견됐던 것 자체가 억지였다. 개인은 시세 차익을 통한 자산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 참가자일 뿐이다. 투자와 애국은 결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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