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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신심, 그 복덕의 시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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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많이 굴리는 자들은 쉽사리 믿지 못한다. 눈에 보여도 혹 사술이 아닌가 하고 의심부터 앞선다.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논리를 보여 달라 주장하지만 믿음은 아상을 내려놓을 때 가치를 발한다.

 

직관의 지혜라는 것은 아상이 배제되었을 때 나오는 번뜩이는 통찰이기 때문이다. 이를 맹종이라 할 수는 없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맥락이다.

 

전에 언급한 중국 선종의 제3대 승찬대사 역시 불교에 귀의하게 된 연유가 세속 살이에서 고달픈 병고에 시달리다 당대의 유명한 선승인 혜가대사를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안고 찾아뵈었다. 그 역시 어려움에 막연한 마지막 믿음을 희망한 것이리라.

 

승찬대사는 그 당시 고치기 힘든 문둥병을 앓고 있었다는데 사람들이 피하는 병을 앓고 있던 승찬대사는 세속에서의 삶의 궤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속가의 이름도 있었겠지마는 이름도 전해져 내려오지 않으며 승찬이라는 법명도 혜가대사가 지어준 것이라 한다.

 

그만큼 세속에서의 삶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혜가대사를 만나고서 마음에 빛을 느낀다. 그리고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내었다. 신심으로부터 불가에 귀의한 것이다. 후에 승찬대사는 한 줄 한 줄이 보석과 같은 신심명(信心銘)을 지었다.

 

그 신심명 중에 "믿음은 둘이 아니며,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라 했다. 필자의 해석으로는 '믿는 마음은 변덕을 내어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보고 싶다. 예를 들면 이익과 이해에 따라 마음이 바뀌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뭐 좀 이뤄 달라 열심히 기도했는데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믿어봤자 뭐, 부처님도 별 수 없네 하는..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얕은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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