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오늘 계약하면 10억원까지 깎아준답니다."
아파트 공시가격 인상안 발표 후 서울 곳곳에서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9·13 대책이 본격화된 가운데 공시가격까지 오르자 집주인이 세금 부담 등을 덜기 위해 주택 처분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매수 대기자들은 가격이 더 내릴 것이라고 보고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어 '거래 절벽'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19일 서울 주요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공시가격 인상 발표 이후 집주인들이 5000만~1억원 정도 호가를 낮춘 매물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최근 '2019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인상(안)'을 통해 전국 공시가격은 5.32%, 서울은 14.17%로 전년 대비 각각 0.3%포인트, 3.98%포인트 올렸다. 집값이 급등한 지역을 중심으로 시세반영률을 끌어 올려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졌다. 공시가격 알리미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79㎡의 예정 공시가격(동·호수별 상이)은 10억800만원으로 지난해 공시가격(9억1200만원) 대비 10.5%(9600만원) 올랐다. 부동산정보센터에서 단순 계산해본 결과 이 경우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은 지난해 266만6592원에서 올해 326만3328원으로 22.4%(59만6736원) 정도 오른다.
업계에선 공시가격 인상안이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던 만큼 집주인이 매물을 내놓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일부 집주인은 9·13 대책에 이어 공시가격까지 오르자 보유세 등에 부담을 느끼고 매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거래가 안 되니까 R아파트 34평 소유주는 10억9000만원에 실거래 된 매물을 10억5000만원에 내놨다"며 "그런데 급하게 내놓은 거라 오늘 계약하면 10억원까지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또다른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도 "T아파트 30평짜리 매물 시세가 13억원 대에 형성돼 있는데 급매로 12억원대에 팔아달라는 손님이 꽤 있다"며 "인터넷에 올리면 다른 주민들에게 눈총 받으니까 부동산에 조용히 내놨다"고 했다.
마포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도 "부동산 매매금액을 시세보다 낮게 올리면 주민들이 신고하기 때문에 인터넷상에는 급매물을 잘 안 올린다"라며 "부동산에 직접 문의하는 이들에게 급매물 먼저 소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종부세 과세 기준일인 오는 6월 이전에 세 부담을 피하려는 다주택자의 매물이 더 나올 것이라며, 원하는 조건을 말해두면 급매가 나올 때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이처럼 당초 업계의 예상과 달리 공시가격 인상 이후 급매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매수 대기자들은 여전히 관망세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과세가 본격화되면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11일 기준) 서울의 매매거래지수는 전주보다 0.7 하락한 1.0으로 나타났다. 매매거래지수는 거래의 활발함 정도를 파악하는 지표로 100이 기준치다. 100을 밑돌수록 '한산함'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집을 사겠다는 수요 심리인 매수우위지수도 38.2로 전주보다 1.0 하락했다. 이 지수도 100을 기준으로 하며 100을 밑돌수록 '매도자가 많음'을 의미한다.
부동산 관계자는 "공시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낀 일부 집주인들이 급매물을 내놓을 순 있지만 대부분은 일정 수준 이하로 호가가 내려가면 주택을 팔지 않으려고 한다"며 "매수 대기자도 추가 하락 기대감에 섣불리 주택을 매수하지 않고 있어 실제 거래가 체결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