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요 사건 피고인들의 보석 신청이 이어지고 있지만, 석방 가능성은 낮을 전망이다.
최근 보석 또는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한 주요 피고인들은 양승태(71) 전 대법원장과 이명박(78) 전 대통령, 김기춘 (80)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이들은 각각 사법행정권 남용(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횡령, 전경련 보수단체 지원 강요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9일 보석허가 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이 그를 구속기소한 지 8일만이다. 검찰은 26일 열린 보석심문기일에서 죄증인멸과 도망의 염려, 수감중인 전직 대통령들과의 형평성 등을 들어 보석 불허를 주장했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변호사를 통해 차량 블랙박스의 SD카드를 폐기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있다고 강조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한 양 전 대법원장은 좁은 구치소에서 20만쪽 가량의 증거기록을 검토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앞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손진영기자 son@
◆양승태 보석, 거센 후폭풍 감수해야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청구는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지난해 사법농단 수사 관련 구속영장을 줄줄이 기각해 '방탄판사단'이라는 전국민적 비난에 시달렸다. 또한 사법농단 최정점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 한 달도 안돼 석방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역풍이 예상된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변호인을 통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검찰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에 해당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건강 문제를 내세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달 29일 보석을 신청하고, 이달 19일 의견서를 추가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지난해 8월 서울대병원 진단 결과, 그가 기관지확장증·역류성식도염·제2형 당뇨·탈모·황반변성·수면무호흡증 등 9개 질환을 확진받았다는 내용이 첨부됐다. 변호인 측은 이 전 대통령의 돌연사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검찰은 구치소 내에 치료 체계가 제대로 갖춰졌다는 입장이다.
재판 일정을 4월 8일로 다가온 이 전 대통령 구속시한에 맞추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근거도 있다. 법원 인사발령으로 지난 15일 새 재판부가 기존 재판을 이어받았고, 25일에는 주심판사가 교체됐다. 10만쪽에 달하는 증거기록과 20여개에 이르는 공소사실을 재판부가 파악하고 심리를 열기에 4월 8일은 촉박하다는 논리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재판을 최소 5~6개월 더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받아들일 경우, 그의 건강보다는 방어권 보장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높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 강훈 변호사 역시 최근 통화에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강조했다.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업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피고인 건강·방어권 인정=법원 비난 가능성
김기춘 전 실장 역시 건강 문제를 들어 구속집행정지를 요청한 상태다. 구속집행정지는 구속된 피고인의 중병과 출산 등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 법원이 구속의 효력을 소멸시키지 않고 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이다.
김 전 실장 측은 25일 항소심 재판에서 그가 심장 수술을 한 고령자로, 의사가 심장돌연사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호소했다. 이날 재판은 법원 정기 인사로 바뀐 새 재판장이 처음 진행했다. 기존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김 전 실장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계류 중 구속만기로 석방된 그는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10월 다시 구속됐다.
새 재판부가 김 전 실장의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지난해 김 전 실장 석방 당시, 서울 동부구치소 앞에서 그의 석방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길을 막아 충돌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그를 태운 차의 앞유리가 깨졌다. 구속기간 만료가 아닌 법원 재량에 따른 석방이 진행될 경우, 사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재판 1심부터 법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는 2017년 7월 발가락 부상을 이유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의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같은해 10월 구속연장이 결정된 이후로는. 자신의 재판에 불출석하고 있다. 그의 구속기한은 4월 16일까지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이 날을 넘길 경우, 박 전 대통령은 확정 판결에 따른 수형자 신분으로 상고심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2016년 새누리당 총선 공천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검찰 모두 상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