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개원 10주년을 맞은 법조계가 '변시 낭인' 양산과 변호사 포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생들은 낮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문제삼고, 변호사 업계는 일자리 창출과 법조 유사 직군의 직역침탈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불합격자 누적제…떨어지는 합격률
전국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는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현 입학정원 대비 75%인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시험 응시자 대비 75% 이상으로 변경하라고 요구했다. 입학 정원이 아닌 응시자 대비 합격률을 높여야 암기 위주 공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해마다 떨어지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때문이다. 지난해 3240명이 응시한 7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49.35%(1599명)에 그쳤다. 2012년도 첫 시험에서 87%였던 합격률은 이후 75·68·61·55%로 줄어들다, 지난해 처음 50%대 밑으로 내려갔다.
현행 변호사시험은 불합격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구조다. 법무부는 2010년 12월 산하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합격률을 입학정원 대비 75% 이상으로 정했다. 로스쿨 과정의 충실한 이수를 전제로 무난한 합격률을 고려한 결정이었지만, 이 같은 기준은 큰 변화없이 이어져왔다.
변호사시험 합격 기준 점수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1회 시험 합격 점수는 1660점 만점에 720.46점이었다. 이후 2회는 762.03점, 3회 793.70점, 4회 838.50점, 5회 862.37점, 6회 889.91점, 7회 881.9점으로 치솟았다. 법무부는 자체 조정을 거쳤으므로 시험간 난이도나 타회 시험 응시자와의 실력 수준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결국 입학정원 기준 합격률에 합격 점수가 맞춰지다 보니, 수험생으로서는 적정 합격 점수가 몇점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험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올해 8차 시험에 응시한 서울소재 로스쿨생 A씨는 "합격자 발표 때 관련 내용이 정해지다 보니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낮은 합격률은 시험과목 강의 쏠림 현상으로 이어져, 기초과목이 홀대받는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10월 네이버 법률판 인터뷰에서 "로스쿨 합격자는 누적할 경우 80%가 넘는다"고 말했다./법무부 유튜브 캡처
◆5번 기회로 '끝' 변시낭인 문제 여전
현재 법조인이 되는 길은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됨에 따라 '로스쿨-변호사시험'으로 일원화됐다. 취지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 양성이었다. 당초 법무부는 2009년 변호사시험법 설명자료를 통해 '로스쿨에서 충실히 교육받았다면 누구나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나라, 고시 낭인이라는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내세웠다. 하지만 전국 로스쿨 정원 2000명 중 해마다 불합격자 500명이 누적되는 선발시험 구조가 만들어져, 고시낭인의 자리를 변시낭인이 대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는 합격률 기준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네이버 법률판 인터뷰에서 "(2018년 합격자) 49%는 그해 응시자 대비 수치여서, 그 다음해 합격자를 누적하면 80%가 넘는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11월 법무부가 발표한 변호사시험 개선방안에도 합격률 관련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법무부가 실제 누적 응시인원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류하경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열린 '변호사시험제도와 로스쿨 운영의 현황 및 문제점' 토론회에서 "누적인원이 포함된 실제 응시인원을 분모로 삼아야 합격률을 알 수 있다"며 "지금 추세라면 8회 변호사시험에서는 로스쿨 입학 정원의 75% 이상인 1500명 이상이 탈락하게 된다. (누적인원 적용시) 정원대비 불합격률 80%가 진실"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석사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 내에 5회만 응시할 수 있는 현행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험에 5번 탈락한 결과는 8년 허송세월과 1억 빚의 낭인인데도, 현행법이 임신부나 암 투병 환자, 재해민과 파산자 등에게 예외 조항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로스쿨 문제 해결을 위해 ▲의사·한의사·약사시험처럼 일정 능력을 갖추면 모두 자격을 줘 시장에 맏기거나 ▲합격자를 1000명으로 줄이거나 ▲응시 기한이 아닌 횟수만 5회로 제한하거나 ▲현행 3년인 로스쿨의 4년제화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지난달 치러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 당시 기호 2번 이율 변호사 공보물. 변호사 업계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강조했다./이율 변호사 공보물
◆시험 통과하면 '배고픈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 변호사가 되어도 레드오션인 법률시장에서 생존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1906년 3명이던 변호사 수는 102년만인 2008년 1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2012년 본격 배출되면서, 같은해 1만4534명이던 변호사는 지난달 31일 기준 2만5882명으로 늘었다. 법무사와 세무사 등 유사직역의 변론권 주장도 부담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 치러진 대한변호사협회장·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는 일자리 확보와 유사직역의 변론권 침탈 저지 등이 주요 공약으로 떠올랐다. 25일 임기를 시작한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은 당선인 시절 "변호사가 부족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유사직역 업무를 이제는 로스쿨 도입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며 "서로 겹치는 업무 영역에서 경쟁해 소비자의 판단을 받으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회장 후보로 나섰던 이율 변호사는 자신의 공보물에 쌀밥이 가득 담긴 밥그릇 사진을 넣고 "배고픈 변호사보다 무서운 맹수는 없다"며 업계의 위기를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