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사건 쟁점인 '직권남용'을 둘러싼 해석싸움이 연말연시 법원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자신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부인했다. 사법농단 관련 보고서 작성은 차장의 직무 권한에 속하지 않으므로 혐의가 성립되지 않고,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없으니 임 전 차장이 의무없는 일을 시키지도 않았다는 논리다.
반면 검찰은 심의관들이 의무없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정당한 명령을 받았어야 하는데, 임 전 차장의 위법·부당한 명령으로 보고서를 작성했으므로 직권남용이 맞다고 반박했다.
정치권에서도 직권남용 공방이 예고된 상태다. 검찰은 지난 11일 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허위 사실 공표 등 3가지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재판에 넘겼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2년 4월∼8월 보건소장과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지시해 강제입원을 위한 문건 작성, 공문 기안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는다.
직권남용죄의 핵심은 공무원의 권한과 불법행위 간 연관성이다. 박판규 변호사가 지난 10월 발표한 '사법농단과 검찰수사-직권남용죄 적용에 관한 검토'에 따르면, 직권남용죄 구성요건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공무원이나 일반인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불법을 저지르는 행위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당한 권한 밖의 행위를 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공무원이 자신의 일반적 권한이 아닌 행위를 하는 경우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로 직권남용과 구분된다.
직권남용 성립 조건인 일반적 권한의 판단 기준은 법령상 근거 외에 재판부의 해석도 따른다. 대법원 판례는 법과 제도를 종합적·실질적으로 관찰했을 때, 형식적·외형적으로 직무집행으로 보이는 행위가 남용돼 상대방이 의무 없는 일을 했다면 공무원의 일반적 권한에 속한다고 본다.
직권남용 성립 조건에 대한 법원 판단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선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국정농단 사건 2심에서 13개 직권남용 공소부분 중 3개는 무죄, 1개는 일부 유·무죄를 선고받았다.
유죄 선고를 받은 미르·K재단 설립의 경우, 대통령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순차 지시를 받은 경제금융비서관이 전경련 관계자를 청와대로 불러내 재단 설립을 독려했으므로 형식적·외형적으로 대통령에 직무권한에 속한다는 판단이다.
반면 무죄를 선고받은 KT의 플레이그라운드 광고대행사 선정과 이모씨 채용·보직변경 부분은 박 전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불과하다고 봤다.
지난 10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직권을 벗어난 부분에 대해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한 다스의 미국 소송을 위해 김재수 변호사를 LA 총영사직에 앉히는 등 공무원이 사익에 동원된 점이 대통령의 직권을 벗어나 무죄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직권남용 판단기준을 좁게 해석할수록 피고인에게 유리해진다. 이 때문에 피고인의 일반적 권한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검찰과 변호인 간 설전이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