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업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침통한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독립된 법관의 양심으로 진행될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이 별개 사건인 '사법농단'에 발목 잡힌 모양새다.
사법 행정권 남용 관련 압수수색 영장이 줄줄이 기각되는 상황에서, 여권에선 법원이 이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무죄 선고로 '제식구 사건'의 방패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지난 5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1심에 불복해 항소한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선고 직후 항소 계획을 밝혔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다스의 미국 소송을 위해 김재수 변호사를 LA 총영사직에 앉히는 등 공무원이 사익에 동원된 점이 대통령의 직권을 벗어나 무죄라고 판단했다. 직권남용이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자신의 일반적 권한에 관련된 직무집행을 해야 하므로, 일반적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 구별된다는 설명이다.
같은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역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보수단체 지원 강요는 유죄, 직권남용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부분 무죄 판단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양심이 양승태 대법원에서 외면당한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여권은 '이명박 1심이 사법농단 선고의 포석'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법원이 사법농단이라는 '제식구 재판'에 대비해 이 전 대통령의 직권 범위를 좁게 해석해 놓지 않았느냐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지난 10일 대법원 국정감사 당시 '판사동일체'를 언급하며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끝난 순간, 법리해석이라는 칼자루를 쥔 법원이 반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 무죄를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결과가 '사법농단' 재판의 척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법농단 배후로 의심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유인 '주거의 평온' 역시 국감 내내 도마에 올랐다. 당시 주거의 평온을 이유로 영장이 기각된 사례를 아느냐는 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질문에,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경험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런 이유로 향후 법원이 이 전 대통령의 직권을 1심처럼 좁게 해석할 경우, 사법농단에 대한 법원의 반격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법원이 대통령 직권을 넓게 해석해 이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유죄를 인정하면, 앞으로 사법농단 사건을 담당하게 될 재판부의 고민이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