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정희 정부 당시 '긴급조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패소는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30일 판단했다.
청구인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1973년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중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수사를 받고 비상보통군법회·비상고등군법회의·대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이후 백 소장은 2009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해 2013년 무죄를 선고 받고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1심이 일부 인용했지만, 2014년 항소심과 이듬해 상고심에서 패소했다.
백 소장과 부인 김모 씨는 상고심 판결에 대해 2015년 8월 24일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공권력으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사람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헌재법 제68조 1항 역시 소원을 청구했다.
앞서 헌재는 2016년 해당 조항 중 '법원의 재판'이 위헌 법령을 적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일 경우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2010년에는 긴급조치 1·9호가 대통령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기 위해 발령했다며 위헌으로 결정했다.
이날 헌재는 두 심판청구 모두를 기각했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은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된다"며 "이 사건 대법원 판결들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반하여 위 긴급조치들이 합헌이라고 하였거나, 합헌임을 전제로 위 긴급조치를 그대로 적용한 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들에서 긴급조치 발령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긴급조치가 합헌이기 때문이 아니라, 긴급조치가 위헌임에도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해석론에 따른 것"이라며 "해당 판결들은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이수·안창호 재판관은 헌재가 긴급조치 1·9호를 위헌으로 결정했고,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명백한 위헌임을 알면서도 입법을 한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지 않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판결들은 헌재가 위헌 결정에 반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했으므로 취소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두 재판관은 "만약 긴급조치의 발령이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어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여부에 관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이는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관련된 국가작용은 사법적 심사에서 면제될 수 없다는 2010년 헌재 결정의 기속력에 위배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