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업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침통한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별적인 재판 출석을 원하는 이유는 불리한 증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에 자신의 건강 문제를 내세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23일 첫 공판 출석 이후 식사는 물론 숙면도 못해, 증거조사기일 중 재판부가 자신에게 확인할 점이 있는 날에만 출석을 희망한다는 취지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출석이 원칙이다. 형사소송법 제276조에 따르면,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개정도 못한다.
다만 같은 법 277조의2는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때 피고인 출석 없이 공판을 열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재판 출석 거부를 선언한 이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선별적인 출석 의사를 밝혀, '현저히 인치가 곤란한 경우'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불출석할 경우 기일이 미뤄질 수 있다.
자신의 첫 공판에서 모두진술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이던 그가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배경을 두고, 일각에선 불리한 증거가 많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형사재판의 피고인은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를 열람등사할 수 있다. 세 차례에 걸친 준비기일과 1회 공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준비한 증거에 대해 불리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첫 재판을 마치고 방청석에 있던 가족들에게 "나도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오늘 많이 알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새로운 사실'에 재판의 유불리에 대한 판단이 섞였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피고인인 이명박 전대통령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을 열람하고 변호인과 함께 그 가치를 판단하고 재판 출석에 대한 실익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은 재판 시작 전에 모든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나, 공판 진행과정에서 피고인의 진술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며 "재판부는 증거 제출시기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를 배척할 수는 없으므로, 변호인은 검찰이 추후 제출할 수 있는 증거를 무력화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거를 둘러싼 수 싸움은 지난 3일 첫 준비기일부터 이어졌다. 당시 이 전 대통령 측이 다스 관련 증거 의견서를 가장 나중에 내겠다고 하자, 검찰은 "속된 말로 '패'를 먼저 제시했다"며 "저희의 공판전략이 모두 노출된 것과 다름없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