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2016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를 둔 가구 중 71.1%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판단력이 흐린 어린이가 고층에서 물건을 내던지기 쉬운 구조다./유토이미지
익명성과 고층이라는 특성을 가진 아파트가 '커튼 뒤의 괴물'을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선 언제 물건이 날아올 지 모르는 아파트를 '위험사회'의 단면으로 보고, 어린시절 고층건물의 특징과 공감능력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대표적 주거공간이 아파트인 한국인들은 투척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22일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길이 30㎝ 식칼이 떨어졌다. 전날인 21일 경기도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50대 여성이 누군가가 던진 1.5㎏짜리 아령에 맞아 어깨와 갈비뼈가 부러졌다. 경찰은 7살 A양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앞서 2015년 경기도 용인에서는 50대 여성이 길고양이 집을 만들다 초등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던진 벽돌에 맞아 숨졌다.
23일 통계청의 '2016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18세 이하 자녀와 함께 사는 가구의 69%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 자녀를 둔 가구는 71.1%가 아파트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판단력이 흐린 어린이가 고층에서 물건을 내던지기 쉬운 구조다.
어린이의 물건 투척을 형벌로 다스릴 방법은 마땅치 않다. 현행법상 만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에 해당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물건 투척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아파트 주민의 불안감을 위험사회 개념에서 찾는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저서 '위험사회'를 통해, 현대 산업사회의 풍요로움 이면에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들이 함께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위험을 무릅쓴 개인들이 성취를 이루던 과거와 달리, 산업화 이후의 세계는 불특정 다수가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이장영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도심 내 땅꺼짐 현상, 각종 원자력발전소 사고 등은 도저히 개인이 예측 못할 위험사회의 모습들"이라며 "한국인 대다수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언제 어디서 물건이 날아올 지 모르는 상황 역시 우리가 속한 위험사회의 그늘"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가 가진 성격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어린시절부터 교육하지 않으면, 익명성과 고층이라는 특성을 이용한 커튼 뒤의 괴물이 자라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도 공감능력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 교사 곽모(32)씨는 "어린 자식을 둔 입장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한다"며 "가정과 학교에서 아파트라는 고층 건물이 가진 물리적 특성, 지나가던 사람이 떨어진 물건에 맞았을 때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른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출근길에 나서던 사람을 덩달아 숨지게 한 일이 있지 않았느냐"며 "아파트 건설사들이 창문을 포함한 고층 세대 구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