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의실과 화장실, 치마 속 몰카 등 인간성이 결여된 기기 사용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학계에선 이 같은 문화 지체현상의 저변에 '출세 지상주의' 속 패배감이 자리한다고 설명한다./오픈애즈
온국민이 손에 든 스마트폰 카메라가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흉기로 돌변하는 '문화지체 현상'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에 매몰돼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떨어진 자존감을 익명성 뒤에서 채우려는 욕구도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1일 남성혐오 사이트 '워마드'에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크로키 수업 중 촬영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이 실렸다.
해당 게시글에는 사진 속 남성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혐오 댓글이 달리면서 2차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 경찰은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고성능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어느 때보다 타인에게 상처주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찰청의 '2017 범죄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가운데 지난 10년 간 가장 급격한 증가를 보인 범죄는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이었다. 2007년 전체 성폭력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9%(564건)에 그치던 카메라 범죄는 2015년 24.9%(7730건)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6년 17.9%(5249건)로 줄었지만, 카메라를 이용한 성범죄는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해 아동 대상 성폭력 유형에서도 카메라 등 이용 촬영(11.1%)은 강제추행(55%)과 강간·간음(21.7%)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카메라 등으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배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학계에선 탈의실과 화장실, 치마 속 몰카 등 만성화된 불안감의 원인이 인간성이 결여된 기기 사용에 있다고 본다. 이 같은 의식 저변에는 '출세 지상주의' 속 패배감이 자리한다는 설명이다.
이장영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돈과 권력, 스펙 중심형 인간으로 길러지는데, 이는 '학벌이 출세의 조건'이라는 부모들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며 "그 결과, 자존감과 자아 정체감,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현대인이 양산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르면 내 마음이 아파야 하는데, 그런 일(홍익대 몰카)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승패의 세계에서 낮아진 자존감을 첨단 기술과 익명성 뒤에서 채우려 드는 모습이, 오늘날 만성화된 카메라 공포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다만 "처벌 강화 보다는 사회 전반의 윤리 도덕성과 자존감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