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당 주인이 빈 테이블 사이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사진사 블란디
실제로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소상인 700명 대상 '소상인 일과 삶의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 2명 중 1명은 여가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51.7%), 여가가 있는 소상인의 1주 평균 여가시간도 5.9시간에 그쳤다./ 중소기업중앙회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가정의 달', 황금연휴에 인천공항에는 여행길에 나선 시민들로 가득했다. 또 서울 주요 번화가의 쇼핑몰과 영화관, 유명 놀이공원에는 휴일을 만끽하러 나온 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휴일에도 여전히 일터를 맴도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영업자들이다. 치솟는 월세와 인건비에 불안감에 시달리고, 오지 않는 손님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들에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휴일은 사치다. 자영업자의 무덤, 대한민국 현실 속 이야기다.
◆휴일 늘었지만, 자영업자의 시계 멈춰
한국은 세계에서도 악명 높은 '자영업자의 무덤'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는 모두 569만7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674만 명)의 21.3%에 달한다.
또 내수부문의 장기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업계에선 '제살 깎아먹기' 경쟁도 치열하다. 여기에 원자재비, 인건비, 임차료 등 필수 비용이 치솟아 휴일 없이 일해도 소득이 임금근로자의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휴일은 늘었지만, 자영업자들의 시계는 멈췄다. 가정의 달을 맞아 대체휴일까지 붙어 늘어난 '황금 휴일 특수'에도 자영업자들은 오히려 죽을 맛이다.
7일 오후 1시의 경기도 시흥의 한 식당가. 평소 같았으면 주변 회사와 공장지대의 직원들, 공사현장의 인부들로 북적거려 할 시간대지만 기자가 돌아본 식당 안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한식 식당을 운영하는 최 씨는 "휴일이면 손님이 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연장 휴일에 외국 나가지. 동네에 붙어있습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대체휴일을 지정하면서 내수(內需) 진작 효과를 거론했지만, 돈 쓸 사람은 다 해외나 일부 도심지로 나갔기 때문이다.
휴일이라고 월세는 깎아지 않는다. 하루라도 영업을 하지 않으면 손해는 자영업자의 몫이다. 휴일에도 자영업자들은 불안한 마음에 가게 문을 열어두고 떠난 님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김 씨는 "손님 없어도 다들 문 열고 있는데. 집에 가만히 있어봐요. 월세만 그냥 나가는 거지"라며 언성을 높였다.
◆자영업자, 週 여가 5.9 시간
한때 '사업은 사장님 발소리를 들으며 큰다'는 말이 돌았다. 사장이 열심히 뛰어야 사업이 성공 길에 오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직원 발소리가 들려야 사장이 사람답게 산다'는 말이 나온다. 직원을 마음 편하게 써야 사장도 자기 삶이 있다는 의미다.
경기도 부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 씨(64)는 휴일을 맞아 시민들에 나들이에 나섰다는 뉴스를 보면 통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없다.
김 씨는 지난 1월 1일 최저임금 인상 이후 평일과 주말의 편의점 야간 시간 근무를 도맡아왔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그가 근무 투입을 결심하게 된 도화선이었다.
김 씨는 "요즘은 사장님이 쉴 때 쉬면 자영업자보다 고용한 아르바이트생 월급이 더 많아질 수 있다"며 "정부가 최저임금 올려 어린 아르바이트생 도와주는 건 좋은데. 왜 내 억장이 무너지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는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로 이틀 동안 편의점 야근 근무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부담스러워 거부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에게까지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경기도 시흥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장 씨(44)는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가장이다. 지난 5일 어린이날에도 장 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놀이공원을 보내고 종일 가게를 지켰다.
장 씨는 2주 전부터 평일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주말 대타를 부탁했지만, 토익시험을 봐야 한다는 학생의 말에 말을 더 붙이지도 못했다. 구인사이트에 7시간에 일급 6만 원을 걸어 대타를 구했지만, 연락이 통 오지 않아 그만뒀다. 황금 휴일에 아르바이트하려는 학생이 많지 않다는 것이 장 씨의 추측이다.
자영업자들에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의미 없는 저울질이 되고 있다. 오히려 남들 다 노는 휴일에 가게를 지키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인 700명 대상으로 조사한 '소상인 일과 삶의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소상인들의 삶의 만족도를 세부 분야별로 살펴봤을 때 여가생활 만족도(38.1점)가 가장 낮았다. 뒤이어 자기개발·교육(38.8점)과 수입(41.3점) 만족도가 하위권을 기록했다.
중기중앙회는 여가생활 만족도가 가장 낮은 이유에 대해 양질의 여가생활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소상공인 2명 중 1명은 여가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51.7%), 여가가 있는 소상인의 1주 평균 여가 시간도 5.9시간으로 통계청이 2014년 제시한 '국민 평균 여가 시간'(29.7시간)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