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 경비병과 미군이 북측 판문각을 바라보고 있다. / 유재희 기자
막바지 공사를 진행중인 평화의 집./ 유재희 기자
임무 교대를 수행하고 있는 북측 판문각의 병사들./ 유재희 기자
일흔 해를 앓은 한반도의 요통을 뒤로하고 평화의 새 국면을 맞이할 4.27 남북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8일 프레스투어를 통해 방문한 판문점은 남북의 지도자를 맞이하기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날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문재인 대통령과 첫 대면과 더불어 '평화의 봄'을 향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봄 기운' 역력한 판문점
이날 기자는 서울 광화문에서 판문점으로 가기 위해 '1번 국도'를 달리는 취재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1번 국도는 목포에서 대전·서울을 거쳐 신의주까지 연결된 한국 최초의 국도다. 판문점으로 향하는 1번 국도의 길 한 켠에는 개나리가 펴 봄 기운이 물씬 풍겼다.
우리 군, 미군, 유엔군은 소총으로 무장한 채 동선과 촬영장소를 한정했고 프레스 투어에서 취재진이 접근 가능한 장소는 평화의 집 외부를 비롯해 '자유의 집' 내부, 통상 'T2'라고 불리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등으로 제한했다.
이날 취재라인의 통제를 맡은 JSA 책임 장교는 "이곳은 북한군이 코앞에 있습니다. 노란색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지휘에 따르지 않으면 취재가 중단될 수 있습니다"라며 엄숙한 표정을 자아냈다.
취재진의 관심이 집중된 곳은 역시 정상회담장인 '평화의 집'이었다. 정상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 집 출입구에는 가림막이 처져 있었다. 정상회담에 맞춰 건물 내부를 개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당초 청와대는 평화의 집 내부도 공개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이날 내부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평화의 집 리모델링은 지난 20일에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장은 평화의 집 2층에 마련되며, 3층은 오·만찬이 가능한 연회장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판문점은 삼엄한 경비와 통제 속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지만, 여느 때와 달리 정상회담을 수 일 앞둔 설렘도 눈에 띄었다.
이날 방문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에는 기지국이 설치되지 않아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됐다. 하지만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판문점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도록 조치하자고 남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지국이 설치되지 않아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된 판문점에 각자 이동 기지국을 가져와 휴대전화를 사용하자는 것이다.정상회담에서 적극적으로 뭔가 이뤄보려는 북한의 긍정적인 행보가 감지된다.
JSA 안보견학관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재현한 전시품. /유재희 기자
◆상흔과 공생의 공간, '판문점'
주한 유엔사 김영규 공보관은 "동서 800m, 남북 600m 규모의 판문점 내에는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측에는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이, 북측에는 판문각과 통일각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직선거리 52㎞, 평양에서 147㎞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판문점은 공식적으로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공간이다. 광복 이전 행정구역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였던 판문점의 현재 공식 명칭은 유엔(UN)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이다.
옛 명칭은 '널문리'다.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에 위치했던 '널문리 주막' 앞 콩밭에 설치된 임시 막사에서 1951년 10월부터 정전회담이 열리면서 이곳은 분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불안정한 '정접 협정' 체제가 시작된 곳이자 남북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곳이다. 슬픈 역사를 가진 판문점은 이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평화의 공간, 대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판문점에는 항상 삼엄한 긴장감과 일촉즉발의 도발이 넘쳐왔다. 1976년 8월 18일,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살해한 도끼만행사건도 바로 이 판문점 안에서 발생해 판문점내 남북의 초소 위치가 바뀌기도 했다.
또 지난해 11월 13에는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가 JSA 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귀순했다. 타고 온 차량을 버리고 남측 구역을 향해 질주하는 오씨를 쫒아 북한군 추격조는 MDL 코앞까지 내려와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남북이 긴장 완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담을 진행했던 장소 또한 판문점이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1991년까지 판문점에서는 총 459회 군사정전위원회가 개최됐고, 1971년에는 '남북적십자 파견원 제1차 접촉'을 시작으로 남북당국간 회담이 총 360회 이어졌다. 1994년·2000년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 진행됐다.
이에 김 공보관은 "오늘도 오전 북측 판문각에서 열린 2차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에 참석한 우리 측 대표단은 T1과 T2 사이의 통로를 이용해 도보로 MDL을 넘었다"고 설명했다.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에서 주한 유엔사 김영규 공보관이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유재희 기자
◆김정은, 정주영 회장의 '소떼길' 밟을까
프레스 투어에서 언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27일 김 위원장이 남측 평화의집으로 향할 이동 동선이었다.
이에 "현재로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길로 MDL을 넘게 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 헬기 또는 자동차를 타고 온 뒤 걸어서 이동할 수도 있고요"라고 김 공보관이 기자들의 질의에 답했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 사이에 위치한 하늘색 건물 3개는 T1, T2, T3로 불리는데 T는 '임시(Temporary)'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로 쓰인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그림자가 MDL을 넘었다며 남측병사와 북측병사가 신경전을 벌이던 하늘색 건물 T1과 T2 사이에서 두 정상이 첫 대면하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날 내외신 기자들은 MDL 너머 판문각부터 T1, T2까지 몇 걸음 정도가 될지를 예측해보고, 문 대통령이 어디쯤에 서서 김 위원장을 맞을지도 체크해봤다. 김 위원장이 판문각 계단을 내려와 MDL 앞에서 문 대통령의 손을 맞잡는 모습과 회담이 열리는 남측 평화의집까지 대화를 나누며 걷는 모습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머릿 속에 그려지는 순간이다.
한편, 다른 이동경로는 김 위원장이 차편을 이용해 평화의 집으로 향할 경우, T3 파란색 회의장 오른편 회색지붕 건물인 북측 휴게소 바깥으로 들어올 수 있다.
1998년 6월 16일, 당시 83세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50대의 트럭에 500마리의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었던 바로 그 길이다. 소떼는 이후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경제협력의 초석이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위해 남한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게 될 27일 오전이면, 북한의 연속적 도발로 인해 수렁에 빠졌던 남북관계가 대전환의 신호탄을 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