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대형 IT 업계는 비교적 침착한 모습이다. 이는 창의성이 중요한 산업 특성상 많은 IT 업체들이 이미 유연한 근무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IT서비스 업체들과 인터넷 포털서비스 업체 등은 주 52시간 근로 시행에 차분한 모습이다.
카카오의 경우 지난해 6월부터 시차출근제를 시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10시에 출근해 7시에 퇴근하지만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거나 9시 30분에 출근해 6시 30분에 퇴근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는 원래도 주 40시간 근로가 잘 지켜지는 회사여서 '주 52시간 근로'가 이슈가 된 것을 두고 내부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책임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공식적인 출퇴근 시간이 없고 근로시간에 제한도 없다. 근로자는 자유롭게 일하는 대신 업무성과 부분에 있어서 책임을 진다.
네이버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A씨는 책임근무제에 대해 "매일 업무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춰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IT(정보기술) 서비스 업체인 삼성SDS도 2016년부터 자율출퇴근제를 통해 임직원 스스로가 출근과 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근무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근무시간이 아닌 성과로 평가한다.
삼성SDS 관계자는 "기존에도 근무시간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왔으며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로를 정한 것이니 더 잘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큰 영향이 없다는 반응이다. 한글과컴퓨터그룹은 현재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사규 제정 및 근로제도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이미 시행되고 있는 책임근무제를 비롯해 사전 연장근로 신청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신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신규인력 채용 등을 추진해 주 52시간 근무제의 빠른 정착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주 52시간이 IT 업계 특성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법이니 지키기는 하겠지만 무엇을 위해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한 IT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발주자와 계약을 맺고 기간 내에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주 52시간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52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현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논의 중이며 4월 중엔 실제로 테스트를 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IT업계 관계자는 "이 분야는 창의성이 중요해 업무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업무 성과가 중요하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이미 유연한 업무 환경을 갖추고 있는 편인데 정부가 52시간으로 못을 박는 게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SW 개발자 A씨도 "IT업계는 기획, 디자인, 마케팅, 개발 직군이 서로 의사소통하며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도중에 계획이나 개발 소요 기간이 바뀔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업무 시간을 하루 8시간 등으로 제한하는 건 애매모호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개발자들 중 자신이 맡은 서비스에 대한 애정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선하며 초과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부가 52시간을 강요하면 일을 하고 싶어도 더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IT 스타트업 등 일시적으로 주 52시간 이상 근로가 필요한 업종에 대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현장 실태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 나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