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1년 만에 징역 24년을 선고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목을 붙잡은 건 '안종범 수첩'으로 인정된 수백억원대 뇌물죄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뇌물 등 18개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삼성그룹과 롯데그룹으로부터 합계 140억원이 넘는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였고, SK그룹에 대해서는 89억원의 뇌물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에 내린 벌금은 180억원이다. 앞서 검찰은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유죄가 인정된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는 ▲롯데 신동빈 회장 부정정탁에 따른 70억원 제3자뇌물수수 ▲SK그룹 89억원 K재단 추가 출연 요구 ▲코어스포츠 용역대금과 말 3필, 보험료 등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 72억9427만원 수수다. 모두 최씨와의 공모관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다만 삼성그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 현안 해결이라는 부정청탁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각각 204억원과 16억2800만원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제3자뇌물수수) 두 가지는 증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선고에 결정적인 증거능력을 발휘한 것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작성한 업무수첩이었다. 재판부는 수첩에 적힌 박 전 대통령과 기업 총수 간 단독 면담 내용이 '간접 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박 전 대통령과 기업총수와의 단독 면담에서 (수첩) 기재와 같은 대화가 있었다는 진술증거로는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 맞다"면서도 "대화가 있었다는 간접증거로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기업 총수와의 단독 면담 후 둘 사이의 대화 내용을 안 전 수석에게 알렸고, 안 전 수석이 수첩에 받아적었다는 점이 근거였다.
박 전 대통령의 벌금 180억원은 뇌물 수뢰액의 2~5배 벌금을 병과(倂科)하는 특가법에 근거한다. 재판부는 "다만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72억원 중 피고인이 직접적으로 취득한 이익은 확인되지 않고, 롯데그룹으로부터 받은 70억원은 반환된 점,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징역 24년 선고도 특가법에 따른다. 특가법 제2조에 따르면,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때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38조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인 때에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법원이 이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혐의는 총 16가지다.
박 전 대통령은 3가지 뇌물 혐의 외에도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774억원 출연 직권남용·강요 ▲롯데의 K재단 70억원 추가 출연 직권남용·강요 ▲현대차의 플레이그라운드 광고 발주·KD코퍼레이션 납품계약 직권남용·강요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2800만원 지원 직권남용·강요 ▲포스코그룹 펜싱팀 창단 직권남용·강요 ▲KT의 이모 씨 채용·보직변경과 플레이그라운드 광고대행사 선정 강요 ▲GKL 펜싱팀 창단과 더블루K 에이전트 계약 직권남용·강요 ▲CJ 이미경 부회장 퇴진 강요 ▲청와대 비밀문건 누설(공무상비밀누설) 14건 ▲노태강 사직 직권남용·강요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사직 직권남용·강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지시 직권남용·강요 ▲이상화 하나은행 본부장 임명 직권남용·강요 등을 유죄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