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응급실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아우성이다. 간단한 약 처방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될 수 있는 경증 환자들도 응급실을 찾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증 환자들이 신속하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경증 환자들은 값비싼 응급실 진료비를 부담하게 돼 많은 시민들이 '심야 의료공백'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심야시간 의료공백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가운데,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편의점 상비의약품 확대에 방점을 두고 있어 의료갈증 해소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에 약업계는 오남용 우려 등의 문제가 있는 상비의약품 제도를 비판하며, '심야공공약국' 등 의료 인프라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경기도 한 편의점에 구비된 '안전상비의약품'. /유재희 기자
◆ 상비의약품제도, '의료접근성' 완성 아냐
지난 2012년 정부는 심야시간의 의료공백을 채우기 위해 안전상비의약품제도를 도입했다. 안전상비의약품제도는 성분, 부작용, 함량, 제형, 인지도, 구매의 편의성 등을 고려해 감기약, 해열진통제, 소화제 20개 품목 이내로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해 편의점 등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에 힘입어 편의점 상비의약품 매출은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공급량은 2012년 194만개에서 2016년 1956만개로 10배나 증가했다.
고려대 약학과 최상은 교수는 "복약지도 없는 상비약의 편의점판매가 의료접근성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약품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의 해열진통제, 소화제 등 급하게 쓰이는 약들의 경우, 소비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의약품을 파는 '안전상비의약품'은 도입 단계부터 현재까지 찬반 논쟁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진통을 겪고 있다.
작년10월 국회의원 정춘숙 의원이 발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안전상비의약품 13종에 대한 공급량과 부작용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화제로 유명한 A 상비약의 경우 편의점 공급량이 2012년 14만7737개에서 2016년 71만8487개로 증가하는 동안 부작용 보고는 3건에서 110건으로 107건(36.6배) 증가했다.해열진통제로 유명한 B 상비약도 편의점 공급량이 같은기간 동안 34만4519개에서 595만9028개로 증가하는 동안 부작용 보고는 55건에서 107건으로 52건(1.9배)으로 늘었다.
이에 약업계에선 복용지도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수도권 약국의 한 약사는 "종합감기약도 중복 복용이 문제가 되는 만큼 여기에 대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며 "특히 해당 약물에 들어 있는 일부 성분은 전립선 환자나 녹내장 환자, 천식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국은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네 종류 13개 품목의 의약품에 제산제·지사제·항히스타민제·화상연고 등 4개 품목에 추가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심야 의료공백을 단계적으로 편의점 상비약품 품목 정리를 통해 개선하고 있다"며 "현재 5차협의까지 진행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취약시간대의 의료 접근성 강화는 의사진단과 약국의 적절한 조제가 어우러 지는 것이다. 13개 품목에서 무엇을 넣고 빼는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부천의 한 공공심야약국. /유재희 기자
◆시민 88%, 공공심야약국 필요해
의약품정책연구소가 지난달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취약시간대 보건의료서비스 불편 해소를 위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야간이나 휴일에 약이 급하게 필요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40%였다. 약국에서 약을 구하지 못했을 경우 '그냥 참는다'는 응답이 37.5%로 가장 많았고,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매한다'는 응답이 34.4%로 뒤를 이었다. 약을 구하지 못해 '응급실을 찾는다'는 의견은 16.1%였다.
이처럼 많은 환자들이 심야시간의 약이 필요해도 얻지 못하거나, 약국에서 약을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편의점이나, 응급실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심야시간의 의약품 접급성 강화와 의약품 오남용을 예방하기위해 일부 지자체들은 '공공심야약국'을 지정해 운영하고 잇다.
실제로 '공공심야약국'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서울 및 수도권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안전상비의약품 편의점 판매에 대한 인식 및 구입 조사' 결과, 공공심야약국의 필요성에 대해 88%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야간·공휴일 공공약국 운영 제도화에 대한 질문에는 92%가 '동의한다'는입장을 밝혔으며, 심야 환자 발생 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74.4%가 '야간·휴일 이용 가능한 의원이 연계된 공공심야약국 도입'을 꼽았다.
현재 새벽 1시까지 운영하고 있는 공공심야약국은 전국에 20여 곳이다.
경기도 평택에서 공공심야약국을 운영하는 김용희 약사는 "평소 새벽 1시에 문을 닫고 아침 일찍 문을 열어 몸은 굉장히 피곤하지만, 아기엄마들이 늦은 밤에 아픈 아이를 위해 급히 찾아와 약을 구매할 때는 심야약국을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에 대해 한 약학 전문가는 "심야시간대의 보건의료공백을 없애고 응급실 이용으로 인한 건강보험재정 절감을 위해선 병·의원이 연계된 심야공공약국의 확충이 절실하지만 대부분의 약국에서 심야시간대의 근무약사 고용의 어려움과 경영난이 심해 공공의료로의 편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약학과 최상은 교수는 "심야 의료공백은 약국차원 뿐 아니라 다각적으로 고민할 문제인 것 같다"며 "심야에도 개방되는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방법 등 여러 방안을 고려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