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앱 스토어에서 '채팅'이나 '여자'를 검색하면 '따먹기-채팅,친구만들기' 앱을 쉽게 찾을 수 있다./아이폰 화면 캡쳐
#. A씨는 최근 애플 앱 스토어(App Store)에서 '채팅'을 검색한 뒤 화면을 내리다 두 눈을 의심했다. 채팅 앱 이름에 버젓이 '따먹기-채팅,친구만들기'라는 여성 혐오 표현이 적혀있어서다. 해당 앱은 지난 3일 기준 13번째 검색 결과로 나타나 쉽게 찾아 내려받을 수 있다. '여자'를 검색해도 같은 앱이 나온다. 사용 가능 연령은 최고 등급인 '17세 이상'이다.
애플 앱 스토어의 '여성 혐오 제목' 관리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은 폐쇄적인 운영체제 iOS·macOS와 까다로운 앱 검수 작업으로 높은 보안 수준을 유지한다. 아이폰(iPhone) 사용자들은 최근 불거진 페이스북 발(發) 개인정보 무단 유출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다.
애플 기기를 위한 앱을 만드는 개발자들은 바이러스 등 위험 파일 외에도, 누군가를 모욕하는 콘텐츠를 담아서는 안 된다. 개발자로부터 앱을 제출받은 애플이 출시를 허가하지 않으면 해당 프로그램은 앱 스토어에 등록되지 못한다.
4일 애플 '앱 스토어 심사 지침'에 따르면, 개발자가 애플에 제출한 앱에는 '모욕적이거나 사람들의 기분을 무시하거나 불쾌함을 주고, 의도적으로 혐오감을 주거나 매우 저급한 취향의 콘텐츠'가 있어선 안 된다. '성적인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성기 또는 행위의 노골적인 묘사 또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성적 지향과 성별 등에 대해 차별적이거나 악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특정 개인이나 그룹이 모욕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PC용 아이튠즈(iTunes)에서 '여자'를 검색해도 화면에 '따먹기' 앱(붉은 원)이 나온다./아이튠즈 화면 캡쳐
◆여성들 "기분 나쁘고 의도 다분"
판매자가 'ZHU CHANG SHAN'인 '따먹기' 앱은 제목과 함께 젊은 여성들의 사진을 내세운다. 앱 설명에는 "따먹기는 새로운 인연을 찾는 앱"이라며 "썸은 대화로 연애는 만나서"라고 적혀있다.
또 "안전한 소개팅을 위한 따먹기 프리미엄 본인인증 서비스"를 강조한 뒤, 지역 선택 정기결제 상품 구매도 유도한다. 앱을 설치하면, 아이콘에 '따먹기'만 적혀있다.
앱 제목과 화면을 본 강모(27·여)씨는 "기분 나쁜 제목이다. 너무 의도가 다분하고, 잘못 쓰이게 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따먹기 앱의 버전 기록을 보면, 해당 앱은 11개월 전 앱 스토어에 등록돼 2달 전 업데이트됐다. 리뷰는 3일 기준 1610명이 남겼다. 한 번 앱 스토어에 출시된 앱은 개발자가 이름을 바꿀 수 없다.
안드로이드(Android) 운영체제를 위한 구글 플레이 스토어 역시 '은밀한 대화' '야통채팅'처럼 성인 대상임을 짐작케 하는 제목이 많다. 아이콘에 젊은 여성을 넣은 채팅 앱도 상당수다. 하지만 앱 스토어처럼 직접적인 여성 비하 제목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제1항 1호에 따르면, 누구든 음란한 부호·문언 등을 배포하거나 공공연히 전시하는 정보를 유통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긴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따먹기 앱을 처음 실행하면, 젊은 여성을 배경으로 '따먹기에서 알림을 보내고자 한다'며 위치 접근과 알림 허용 여부를 묻는다./아이폰 화면 캡쳐
◆엄격한 제목 심사 요원
반면, 법조계에선 따먹기 앱을 유통했다는 이유만으로 애플이 법적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법원은 2008년 해당 조항의 '음란'을 ▲사회통념상 보통 사람의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고 ▲표현물을 전체적으로 볼 때 사람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 판시했다.
2012년 대법원 판례 역시 문언이 형사법상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왜곡했다고 평할 정도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해당 조항의 음란한 문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판례를 보면 앱 제목이 음란한 문언에 해당되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도 "애플의 심사지침에는 반할 소지가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애플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앱 스토어 담당 팀이 해당 문제를 놓쳤음을 인정했다고 들었다"며 "소비자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빠른 시일 안에 삭제 등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