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주를 봤는데 그저 그런, 둥그런 공 같은 사주라고 하더군요.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특출 날 게 없는 사주라고 했어요." 상담을 청한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나이는 마흔 후반이었다. 자기 인생이 별 볼일 없는 게 사주 탓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사는 곳은 서울에서도 중상류층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남편은 대기업 부장이고 아이는 이름 있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해마다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고 자기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니 친구 남편은 변호사이고 옆집 아이는 서울대를 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 다닐 때 자기보다 공부를 못했던 다른 친구는 중견기업에서 이사 직함을 달고 있다며 또 한숨을 내 쉬었다. 자기가 사는 게 친구들과 달리 이런 모양인 게 사주 때문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부족할 게 없이 살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의 사주를 보니 특별하지 않은 것은 맞다. 그러나 사주가 좋다고 하는 이유는 험난한 운세가 없기 때문이다. 사주의 오행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상생구조가 뚜렷해서 어느 쪽으로도 모난 부분이 없었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사주였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먹을 게 떨어지지는 않을 운세이니 재물운이 좋은 편이다. 나이 들어서까지 일할 수 있는 운세이니 직장운도 좋다. 자식도 자기 할 일 잘하고 속 썩이지 않으니 어느 모로 보나 나쁠 게 없는 사주이다. 사람은 살면서 일상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 불만이 생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방 한 칸짜리에 살고 남편은 실업자고 아이는 사고나 치고 다닌다면, 지금의 자기 모습이 불만스러웠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주도 인생도 남들보다 월등하고 특출 난 게 꼭 좋은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무난한 운세의 사주가 더 좋을 수 있다. 목숨을 걸고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래를 잡는 것보다 잔잔한 바다에서 먹을 만큼 고등어를 잡는 게 더 나은 운세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험한 파도가 죽기 직전으로 배를 흔들어 놓아야 잔잔한 바다가 얼마나 고마운지 깨닫는다. 지금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 없고 험한 일이 없으면 좋은 인생이다. 특별히 좋은 일이 항상 생기고 날마다 축제 같아야 좋은 인생인 것은 아니다. 이유 없는 불만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고마움을 몰라서 생긴다. 특별히 나쁜 운세가 아니라면 좋은 사주이다./김상회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