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9일 오전 10시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손진영 기자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미투 폭로자와의 '합의된 관계'를 주장한 데 대해 "범죄 성립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 전 지사는 지난 19일 오전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하면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고소인들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하신다.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안 전 지사는 9일 오후 서부지검에 나타나 '국민 여러분'과 '가족'에게만 사과했다가, 조사를 마친 다음날 새벽 귀가 하면서 김씨에 대해 "마음의 상실감과 배신감, 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그가 피해자에 대한 사과에서 '합의된 관계' 주장으로 입장을 바꾼 데 대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 혐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안 전 지사가 범죄 성립 자체를 다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위력이 있었느냐가 관건인데, 실제 위력이 있었다면 유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성의 거절 의사가 없었다면 업무상 위력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김씨의 경우 업무상 안 전 지사와 주종관계로 보이지만,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직원 A씨의 경우 업무상 주종관계가 쟁점이 될 듯하다"고 관측했다.
안 전 지사가 9일 자진 출석한 데 대해서는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가 출석한 날, 서부지검에서는 김씨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대한법학교수회 백원기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피고소인의 9일 자진출석은 자신이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점을 보여 구속영장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한 행위로 보인다"며 "만일 고소인의 조사 사실을 미리 알고 갔다면 이는 수사 방해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고소인에게 피고소인이 조사받으러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심리적인 불안감이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관련 의혹에 '사랑'과 '합의된 관계'로 대응해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배우 오달수 씨는 지난달 자신의 성폭력 의혹을 반박했다가 엄지영 씨의 실명 폭로 이후 사과문을 냈다.
하지만 오씨는 1990년대 자신으로부터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B씨에 대해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배우 김태훈 씨의 사과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20여년 전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C씨에 대해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D씨에 대해선 "서로가 가진 호감의 정도를 잘못 이해하고 행동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