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태극전사들이 평창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한국 국적을 갖고 '한국인'으로서 평창을 빛낸 이들,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한국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144명의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이 가운데 19명, 13%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귀화 선수다. 적지 않은 비율이다.
이들은 설상, 빙상 종목에서 두루 두각을 드러냈다. 평창에서 스켈레톤 윤성빈을 통해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첫 설상종목 메달을 따낸 한국은 나머지 설상 종목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다.
그 중심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으로 귀화한 이들이 있었다. 먼저 바이애슬론에는 티모페이 랍신, 안나 플로리나, 에키테리나 에바쿠모바 등 러시아 출신 3인방이 출전했다.
랍신은 바이애슬론 스프린트 10km에서 16위를 기록했다. 메달권에선 동떨어져 있는 성적이지만 한국 바이애슬론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또 서른 중반에 접어든 '노장' 플로리나는 여자 추적 10km에서 50위, 에바쿠모바는 여자 15km에서 16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설상 종목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크로스컨트리에서는 김마그너스가 존재감을 빛냈다.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두 개 국적을 갖고 있다가 평창올림픽 출전을 위해 지난 2015년 한국 국적을 택했다.
부산에 살고 있어 '부산 사나이'로 불리는 김마그너스는 남자 15km 프리스타일 경기에서 119명 중 45위에 그쳤으나, 차기 대회인 베이징 올림픽의 '기대주'로 꼽힌다.
조국에 메달을 안기겠다는 김마그너스의 목표도 뚜렷하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예상하긴 힘들었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다음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또 독일 루지 국가대표 출신 에일린 프리쉐 역시 루지 여자 싱글 부문에서 8위에 오르며 한국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설상뿐 아니라 빙상 종목에서도 귀화 선수들의 활약이 있었다.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선수인 알렉산더 겜린은 남다른 한국 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파트너 민유라와 함께 평창올림픽에 서고자 지난해 7월 한국으로 귀화한 그는 민유라와 함께 한국 아이스댄스의 새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한국이 지난 16년간 따내지 못한 아이스댄스 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따냈다. 지난 20일 경기에서 한복을 입고 아리랑에 맞춰 감동적인 연기를 펼친 두 사람. 최종 순위 18위로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총점 147.74점을 기록하며 한국 아이스댄스 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을 새로 썼다.
캐나다 출신 맷 달튼과 미국 출신 랜디 희수 그리핀은 남녀 아이스하키의 주역이다.
2016년 3월 귀화한 달튼은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수문장이자 화제로 떠올랐던 '이순신 장군 동상 헬멧'의 주인공이다. 비록 대표팀은 4전 전패로 예선 탈락했으나 달튼의 활약은 고스란히 남았다. 그는 최근 치러진 자신의 모국 캐나다와 경기에서 45세이브의 선방쇼를 펼치는 등 최선을 다했다.
올림픽 역사상 첫 남북 단일팀을 꾸렸던 여자 아이스하키에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그리핀이 합류했다.
그리핀은 단일팀이 이번 올림픽에서 기록한 두 골 중 한 골을 책임졌다. 그는 한국의 '숙적'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역사적인 첫 골을 기록했다.
선수뿐 아니라 외국인 코치, 감독들의 활약도 주목 받았다. 남녀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감독인 백지선(영어명 짐 팩), 새러 머리(캐나다)는 탁월한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에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두 감독과 차기 대회인 2022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계약을 연장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네덜란드 출신 코치 밥 데용은 지난해 5월부터 한국 장거리 대표팀 코치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국 장거리 대표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분위기 메이커다. 최근 여자 팀추월의 팀워크가 논란을 빚은 상황에서 홀로 노선영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이렇듯 수많은 귀화 선수, 외국인 코치·감독들이 평창에서 활약 중이다. 한국은 뛰어난 리더십을 보인 코치·감독들과는 재계약 추진을, 귀화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문호를 보다 활짝 열 계획이다.
평창을 위해 귀화한 선수들은 '체육 우수 인재 특별 귀화' 제도를 통해 한국 국적을 획득했다. 법무부가 문호를 활짝 열어둔 만큼 앞으로는 더욱 많은 이들의 메달레이스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귀화 선수들의 역할은 평창에서 끝나지 않기에 더욱 중요하다. 귀화 선수 대부분은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한다. 또 올림픽 국가대표로 소임을 다한 뒤엔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들을 키워낼 코치로 활약할 수 있기에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