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은 그들 사이에 놓인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새러 머리 남북 여자 대표팀 아이스하키 감독은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남북 단일팀이 함께 한 시간은 고작 24일. 승리는 없었으나 그 이상의 것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남북이 뭉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지난 20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 7·8위 결정전(1-6 패)을 끝으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남북 단일팀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단일팀 구성 소식이 들려오자 국내에서는 격렬한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기회를 빼앗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팽배했다.
이들을 향한 날선 여론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모든 경기가 끝난 지금, 전 세계는 남북이 보여준 진정한 '화합'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박철호 감독을 비롯한 북한 선수 12명은 지난달 25일 진천 선수촌에 합류했다. 첫 인사 때만 해도 어색했던 남북 선수들은 3일 뒤인 28일 합동훈련에서 금세 친해졌다.
그 바탕엔 머리 감독의 노력도 있었다. 머리 감독은 라커 순서를 남, 북이 섞이도록 지정했고 식사도 함께할 것을 요청했다.
훈련에서도 남북은 남과 북이 아닌 한 팀이었다. 박철호 감독은 머리 감독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한국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이 지시를 이해하지 못할 때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북한 선수들의 뛰어난 전술 적응력을 눈 여겨 본 머리 감독은 4라인에 북한 선수 3명을 배치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4라인에 북한 선수들을 고루 배치했다. 이를 통해 힘과 공격력이 좋은 북한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살리고 응집력도 키웠다.
'한 민족'으로 구성된 '팀 코리아'는 훈련 일주일 만에 기대 이상의 경기 운영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10일 스위스와 역사적인 첫 경기에서 0-8로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 경기였던 스웨덴전 역시 0-8 패.
숙명의 한일전에서는 도핑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북한 선수 가운데 도핑 양성 반응을 보인 이가 있었던 것. 그러나 다행히 2차 도핑 테스트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숨 돌린 '팀 코리아'는 숙명의 한일전에서 역사적인 첫 골을 기록했다. 앞서 7전 전패의 쓴맛을 봤으나 2피리어드에 랜디 희수 그리핀이 첫 골을 성공시키며 '팀 코리아'는 다시 되살아났다. 비록 1-4로 패했으나 이 경기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후 경기에서 단일팀은 확 달라진 경기력을 보였다. 1차전에서 만난 스위스와 재접전에서는 0-2로 패했으나, 불과 8일 전 0-8로 패했던 것에 비하면 일취월장한 실력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남북 단일팀에 응원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졌다. 비록 마지막 스웨덴전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한수진이 두 번째 골을 넣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관중은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다. 선수들은 참아온 눈물을 터뜨렸고, 냉철하게만 보였던 머리 감독과 박철호 코치도 감격해 마지 않았다.
북한의 황충금 선수는 "함께 훈련하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들이 하나가 되기에 '24일'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남북의 선수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된 모습으로 '단일팀'의 힘을 보여줬다.
'올림픽 최초 남북 단일팀'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참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진정한 '평화 올림픽'의 의미는 올림픽이 사라지지 않는 한 회자될 것이다. 단일팀은 오는 25일 폐회식을 끝으로 해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