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행을 폭로한 다음날 한 블로거는 "서지현은 O녀이고 매력도 없는 여자다. 아무리 O녀라도 OO를 품어내면 매력적"이라며 성추행을 정당화 하는듯한 글을 게시했다. 이 글은 7일까지 174명의 공감을 받았다. 해당 글을 발견한 곽모(34)씨는 "딸을 가진 아빠로서 놀랍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내 이웃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오싹하다"며 눈썹을 찌푸렸다.
같은 날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도 서지현 검사의 외모를 비하하는 게시물과 이에 동조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일부 남성들이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에 여성 혐오 표현으로 맞서 논점을 흐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선 혐오 표현이 소수자 억압의 결과임을 인식하고, 다른 소수자도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혐오 표현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대표적인 표현이 '김치녀(권리와 책임 앞에 이중적인 여성)'와 '한남충(매력 없는 한국 남자+벌레)'이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비하하는 데 쓰인다. 이 때문에 '여성도 똑같이 남성을 혐오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오곤 한다.
◆혐오표현은 욕설 아닌 억압
문제는 온라인에서 쉽게 오가는 혐오 표현이 결코 '단순 욕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을 향한 혐오 표현의 경우 구조적인 억압을 반영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2월 숙명여대와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를 발표하고 혐오 표현을 '어떤 개인·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으로 정의했다.
혐오 표현의 혐오는 '극히 싫어함'이라는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집단적 차별과 편견을 겪어온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적대성의 표출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혐오 표현은 소수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를 침해한다. 혐오는 편견에서 욕설·괴롭힘으로 발전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경제,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차별이 이어진다. 혐오가 더 큰 힘을 얻게 되면, 살인처럼 개인의 편견에 의한 폭력이 따른다. 집단 수준에서는 방화와 테러로 발전한다. 마지막 단계는 집단 학살이다.
이처럼 혐오표현과 증오범죄의 원인이 공통적이므로, 두 가지에 대한 대책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권위의 설명이다.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면서 평등의 가치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형사처벌과 자율규제 등이 협력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인권위는 "다만 어떤 법에서든 혐오 표현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명문규정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가가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고, 시민사회를 향해서는 혐오표현을 관용하지 않는다는 '상징적 기능'이 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실체 없는 '남혐'…소수자 응원해야
이 때문에 남녀가 주고받는 혐오 표현에서 진정한 의미의 '남혐'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성 비하 표현 자체에 문제가 있지만, 여성이 구조적으로 겪는 성폭력 문제와 대등하게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고려대 교수인 황명진 공공사회학회 부회장은 "(미투가) 제도적인 각성으로 소수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특정 누리집에서 여혐 표현에 동조하는 남성이 은근히 늘고 있다. 사회 약자에 대한 혐오가 세력을 넓히는 일종의 '전선(戰線)'인 셈"이라고 우려했다. '여성도 남성을 혐오한다'는 식으로 미투 운동의 논점을 흐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미투는 외국인을 포함한 노동 약자 등 다른 소수자들도 목소리를 낼 기점이 될 수 있다"며 "나는 당신의 용기를 지지한다는 분위기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소수자 혐오를 넘어 진지한 사회적 고민을 하기 위한 기점으로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