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16일 현대그룹본사 기자간담회에서 장진석 현대상선 준법경영실장이 기자들에게 질의를 받고 있다. / 인턴기자 유재희
현대상선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 5명을 배임혐의로 고소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있는 가운데 현대상선이 롯데그룹과의 소송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장진석 현대상선 준법경영실장은 16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상선 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 매각 과정에 부당한 계약 체결이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며 "현대상선이 2014년 현대로지스틱스 주식과 신주인수권을 공동 매각하는 과정에서 15건의 부당 계약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장 전무는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할 때 피고소인들은 매각가격을 높이기 위해 현대상선이 후순위 투자(1094억원) 및 영업이익 보장(연 162억원)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현 회장 등을 지목해 배임 혐의를 묻는 것과 관련해선 "당시 경영권과 책임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소를 진행한 것"이며 "현대상선에 기획본부가 있기는 하나 주요 의사결정은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실이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또 "불합리 계약성사에 영향을 준 배후인물은 검찰수사를 통해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현대상선이 현 회장을 고소하고 나선 것이 차후 롯데와의 소송문제를 적극 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현대상선이 현 회장의 배임죄와 계약체결의 부당함을 증명해 롯데와의 계약을 무효화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현정은 회장 재직 당시 체결된 계약에 따라 현대상선이 롯데글로벌로지스에 매년 16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자 지난해 12월 롯데 측에서 계약 불이행을 근거로 소송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상선이 부당조항으로 "국내외 육상운송, 항만서비스사업 등 사업부문에서 5년간 독점적으로 롯데글로벌로지스(구 현대로지스틱스)만 이용해야 하고, 해외 영업이익이 162억원에 미달할 경우 현대상선이 미달 금액만큼을 롯데글로벌로지스에 지급해야 한다"는 부분을 적시한 것으로 보아 롯데와의 계약내용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대상선의 행보를 두고 현대그룹과 경영상 관계가 사라진 만큼 현 전 회장과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따른다. 또, 새로운 사장이 취임한 만큼 현대상선이 지난해 회사 로고를 'HYUNDAI(현대)'가 아닌 'HMM'으로 변경하는 등 계열 분리 후 향후 회사의 재건에 더욱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현 회장이 각별히 애정을 쏟았던 현대상선으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소를 당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16년 12월 현대상선이 경영 위기의 봉착했을 당시 자구안의 일환으로 현정은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300억원 규모의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참여했었다. 당시 현 회장의 사재출연은 현대상선의 경영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대주주의 책임 있는 행동이라는 여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은 당시 죽어가는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 배임 관련 기자회견에서 현정은 회장 이름만 실명으로 공개하고 나머지 피고소인은 공개도 안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당시 현대그룹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자산 매각하는 등의 어려운 상황에서 이사회 결의 등 적법적인 절차를 준수해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을 진행했으며 현재 이번 사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파악 중이다. 피고소인 당사자들은 개별적으로 법률적 검토를 통해 적절히 대응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번 소송의 승패는 현대상선이 현정은 회장 등 5명의 피고소인들에 대한 배임 및 책임을 묻기 위한 명확한 근거 또는 증거에 달렸다. 또 혐의 입증을 위해 현대상선의 대외비로 분류되는 문서 등을 검찰 등에 공개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현대상선과 현대그룹 간 소송이 긴 소모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