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송경동 간사가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이범종 기자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사유에 2000년 '안티조선' 운동까지 끌어다 쓴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조사위)는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관련자 포함 9473명에 대한 명단을 블랙리스트 기초자료로 봤지만, 각종 지원 배제 사유에 'MB 정부 비판 6·9 작가 선언' 등 이전 정부의 시국선언 명단도 포함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조사위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문건 인용에 가장 앞선 시기는 2000년 '안티조선 지식인 선언명단'이다. 이를 포함해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취임사 준비위원회 ▲2006년 문화예술계 민주노동당 지지선언 ▲2010년 쇠고기 파동 시국선언 ▲안철수 팬클럽 ▲용산참사 해결 시국선언 등 35개 선언 명단이 블랙리스트에 인용됐다.
조사위는 선언명단의 출처 대부분을 국정원으로 추정했다. 송경동 조사위 간사는 "국정원 개혁위에서 공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 블랙리스트 명단 82명 중 절반인 41명이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 블랙리스트에도 연속적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블랙리스트가 문화 예술인이나 단체가 아닌 야권이 이끄는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봤다.
송 간사는 "문체부 예술정책과 관리 블랙리스트에 2016년 공연예술창작산실(음악) 지원사업에 안산·전주·충북·성남시가 올랐다"며 "문화예술인이나 단체가 아닌 지자체명이 문건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송경동 조사위 간사는 "지자체 이름 앞에 적힌 'B(8.10)'은 청와대 지시를 표기한 것"이라며 " 청와대가 지자체에 대한 배제 지시를 직접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건에 나온 지자체장은 모두 민주당 출신이었다.
감사원의 문체부 감사결과, 이 중 전주시와 성남시, 충북 3곳이 실제 지원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조사 자료./이범종 기자
조사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 · 일탈 행태 시정 필요' 문건을 통해서도 지역 문화재단 사업의 '좌쏠림' '좌편향단체 후원' '지자체장 정실 인사' 등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는 '보조금 삭감·불탈법 행위 의법 조치 등 정상화 견인', '건전언론·단체와 협조, 이념 편향 예산 낭비 및 과도한 제 몫 챙기기 행태를 알려 국민 공분(公憤) 조성' 등을 제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 간사는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정 지자체에 대한 블랙리스트 검열과 배제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관통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이밖에도 ▲국정원-문체부-경찰 관계자의 블랙리스트 정보 공유 정황 ▲국정원 요구에 따른 영화 '자백' '불온한 당신' 지원 배제 ▲송파 세모녀 자살 사건 등 사회적 비극을 내세운 '현장예술인 교육 지원사업' 폐지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조사위는 이날 기준으로 문화예술인 1012명과 문화예술단체 320곳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구체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 건수는 문화예술인이 1898건, 문화예술단체가 772건으로 총 2670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