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송경동 간사가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이범종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경찰이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조사위)는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도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국정원, 문체부 관계자들과 함께 리스트 관련 정보를 주고받았다는 정황이 일부 문자메시지를 통해 드러났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블랙리스트 자료를 공유해온 사실 외에 경찰청 정보국 간부가 관련 사업 내용을 공유한 정황은 이날 처음 발표됐다.
이날 조사위는 국정원 소속 IO(국내 정보관) A·B 전무와 경찰청 정보국 C 경감, 문체부 소속 정모 영상콘텐츠산업과장 등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일부를 공개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이들은 일부 문자 메시지에서 '예술영화전용관사업 심의 결과' '영화 단체 지원 사업 중 인디다큐·포럼 지원' 문제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았다.
정 과장이 2015년 7월 1일 오전 9시 25분께 국정원 간부들과 C 경감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심의 결과, 예술영화관 지원 작품 수가 24편에서 48편으로 수정의결 됐지만, 지원받는 영화 풀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부분에 대해 영진위가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3분 뒤 국정원 B 전무는 정 과장에게 "영화단체 지원 사업 중 인디다큐·포럼 등 이념성이 강한 부분이 포함돼 있던데 어떻게 대처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조사 자료 일부./이범종 기자
이들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속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은 연간 11~13억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2014년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동성아트홀 지원 배제 이후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조사위는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가동을 위한 범죄 전과 기록을 경찰과 국정원 등 정보기관에 요청한 점도 문제 삼았다.
송경동 간사는 "꼭 필요한 수사와 관련된 사항 외에 범죄 전과 기록 조회는 형실효법 제6조 위반"이라며 "조사위는 경찰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에 관련 자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이밖에도 ▲야권 단체장이 이끄는 지방자치단체 지원 배제 ▲국정원 요구에 따른 영화 '자백' '불온한 당신' 지원 배제 ▲송파 세모녀 자살 사건 등 사회적 비극을 내세운 '현장예술인 교육 지원사업' 폐지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조사위는 이날 기준으로 문화예술인 1012명과 문화예술단체 320곳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구체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 건수로는 문화예술인이 1898건, 문화예술단체가 772건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