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 통과로 공무원 증원이 확정되면서 '넓어진 문'을 두드리려는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열기가 뜨겁다. 내년은 서울시-지방직 공무원 중복 응시 마지막 해여서 '다시 안 올 기회'를 잡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회는 6일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공무원 증원 규모를 정부 안인 1만2221명보다 2746명 줄어든 9475명으로 절충했다. 또 내년이 서울과 지방직을 중복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다른 시·도와 공무원 필기시험 날짜를 통일한다고 지난 3일 밝혔다. 타 시·도 시험과의 중복접수·합격으로 인한 피해와 시험관리 낭비요소를 줄이기 위해서다. 다만 시험일자 변경으로 인한 수험생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1년간 유예기간을 뒀다.
9급 시험을 준비하는 정모(26)씨는 "처음에는 응시 기회가 줄어 아쉽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서울시 거주 수험생이 당해온 역차별과 중복 합격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 문제를 생각하면 잘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위 수험생들도 '더 열심히 해야지 별 수 있느냐'는 반응"이라며 "나 역시 같은 각오로 내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합격만이 살길이다
공무원 시험은 국가직·서울직·지방직으로 나뉘어 있어 수험생에 주어진 기회는 일 년에 세 번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2019년부터 다른 자치단체와 같은 날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단 내년 한해는 유예하기로 했다. 결국 중복지원 내년에 끝난다. 공시족들이 내년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공무원을 증원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알려진 지난 5월이후부터 노량진 학원가를 찾는 공시족들은 꾸준히 늘어났다.
공무원 학원 관계자는 6일 "문재인정부 출범때 공무원 증원이 사실상 예고된 상태라 예산이 확정된 후 시험 문의가 급격히 늘지는 않았다. 대학입시를 포기하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학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번 예산안 통과로 준비기간이 오래된 수험생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노량진 학원가에는 '새내기 공시족'들이 부쩍 늘었다.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사표를 던진 박모씨(27)는 "중소기업을 다니다 사표를 냈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며 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윤모씨(19)는 대입을 포기하고 노량진에 들어왔다. 그는 9급 교정직 시험에 응시할 생각이다. 여러 공무원 직렬 가운데 비교적 경쟁률이 낮기 때문이다. 교정직 응시 가능 연령은 만 20세 이상이다. 학원 인근 서점에서도 새내기 공시족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만2000여 명으로 추산된 청년 취업준비생 가운데 공시족은 39.3%에 달했다. 10명 중 4명꼴이다. 직장인, 자영업자에 고등학생까지 공시족 대열에 합류한 탓이다.
◆중복 지원 불허가 정답인가
내년까지 지방에 거주하는 수험생은 거주지 외에 국가직과 서울직도 응시할 수 있다. 반면 서울 거주자의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기준에 따른 거주 기록이 있어야 한다.
공무원임용시험령 제19조에 따르면, 시험 실시 기관의 장은 일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거주한 사람으로 응시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과거 3년 이상 경기도에 거주했거나 최종 면접일까지 3개월 이상 해당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지자체 역시 대체로 이같은 기준을 세워뒀다.
이때문에 서울에 거주하는 수험생들은 지방 위장전입을 필수로 여겨왔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에서는 올해 서울 거주 수험생의 위장전입 사실을 면접에서 확인하고도 시험에 합격시켰다. 해당 지원자는 서울직에도 합격해 경기도를 떠났다.
정부로서는 수험생 거주지를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확인할 수밖에 없어, 지자체가 서울시에 합격자를 빼앗기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졌다.
서울시 수험생이 겪어온 역차별도 심각했다. 김용석(도봉1·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서울시 7~9급 합격자의 39.3%인 853명이 경기도 거주자다. 2014년에는 43.5%인 898명이 합격했다.
반면 서울시 거주자는 2015년 28.6%인 620명, 2014년에는 28.3%가 합격하는 등 전체 합격자의 1/3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각에선 여전히 세 번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공무원 시험 준비 카페 회원은 "시험 기회 박탈"이라며 "헌법 소원을 내서 종전대로 3번씩 보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다른 회원은 "기존 고수들 가운데 3~4월에 시험 붙은 다음 6월에 지방직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현직 공무원들은 달라진 시험 방식이 행정력 낭비를 줄일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울시 공무원 A(32)씨는 "서울시와 지방직 동시 시험은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다른 환경적인 이유도 아니고 시험 때문에 굳이 거주지를 옮기는 사례와 가능성이 크게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위장전입 문제 해결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시 공무원 B(31)씨는 "위장전입의 원인이던 서울-지방직 시험 선택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며 "전체적인 숫자는 줄어들 지 몰라도, 서울 거주자는 여전히 경쟁률을 따져 경기도로 위장전입 하는 등 눈치싸움은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