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구속 연장을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재판부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날 사임 의사를 밝힌 변호인단은 "더럽고 살기 가득한 법정"이라고 재판부를 비난하며 법정을 떠났다.
박 전 대통령은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공판에서 구속 연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롯데·SK 뿐 아니라 재임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3일 법원이 발부한 추가 구속영장의 공소 사실에는 두 기업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들어있다. 이날 24시를 기해 석방될 예정이던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은 내년 4월 16일까지로 늘어났다.
변호인이 건넨 종이를 읽던 박 전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심신의 고통을 인내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구속기소된 박 전 대통령은 6월부터 주4회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지난 10일 공판에서 검찰 수사 기록이 방대하고, 남은 증인도 300명 가까이 돼 1차 구속 기간 내에 심리를 마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재판이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과 함께, 재판부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도 내놨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와 기업인들에게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이번 구속 연장을 '사법 흑역사'로 단정짓고 재판부를 비난했다.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SK 공소 사실은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과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증언하는 등 사실상 심리가 종결됐다"며 "(추가 구속 영장 발부 사유인) 증거 인멸 우려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피고인이 석방돼 안종범 등 아직 증언하지 않은 증인을 회유해 기존 진술을 번복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셨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추가 구속으로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 형사재판 원칙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저희 변호인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울음을 토하는 심정을 억누른다"며 숨을 고른 뒤 "더럽고 살기가 가득한 이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재판부를 비난했다.
이에 검찰 측은 구속 영장 발부의 적법성을 설명하고, 변호인의 사임 번복을 요청했다.
재판부 역시 "현재 피고인에 대해 가장 유리한 변론을 할 수 있는 변호인단"이라며 "조속한 진실을 규명해야 할 사안이므로 조속한 사임 철회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이 사임을 번복하지 않을 경우, 박 전 대통령은 새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야 한다.
재판부는 다음날로 예정된 증인 신문을 연기하고, 19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의견에 앞서 "구속영장 발부가 유죄의 예단을 갖는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라며 "유·무죄 여부는 법정에서 검찰이 한 입증의 정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는지 엄격한 기준을 정해 최종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