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퇴 선언에 따라 삼성 경영에 큰 구멍이 뚫리게 됐다. 권오현 부회장을 필두로 윤부근 CE(소비자가전) 부문장·신종균 IM(IT·모바일) 부문장까지 물러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백은 더욱 크게 다가올 전망이다.
13일 권오현 부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문 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하고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에서도 사임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및 의장직도 내년 3월 임기까지만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그간 권오현 부회장은 그룹 총수 역할을 대행해왔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지난 2월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며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사임했고 이재용 부회장도 구속되며 사실상 상급자 전원이 자리를 비운 탓이다. 권 부회장이 사퇴하면 삼성전자에는 부회장 자리가 모두 공석이 된다.
권 부회장은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 할 때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3분기 실적 잠정치를 공시하며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와병과 그룹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까지 맞물리며 미래 성장 동력은 급격하게 둔화되는 모양새다. 권오현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이 총수의 공백을 메우고 있었지만 그 역시도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5년, 10년 뒤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
재계에서는 권 부회장이 과도한 중압감을 느껴 사퇴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경영 일선에서만 활동하던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의 구속 이후 그룹을 이끌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거대 글로벌 기업의 미래를 책임져야 했던 셈이다. 연구원 출신인 권 부회장이 대통령 만찬 등 경영과 거리가 있는 대외 행사를 참석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권 부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에도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지난 12일 첫 공판을 시작한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은 내년 2월 28일인 이 부회장 구속 만기 이전에 선고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권 부회장은 "곧 옥중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퇴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며 이번 결정이 스스로 내린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삼성 관계자 역시 "오래 전부터 사퇴를 고심한 것으로 안다"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자 스스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사회에 후임자를 추천할 예정이다. 후임으로는 김기남 반도체 총괄사장, 정칠희 종합기술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