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애플 워치 활동 링을 채울 두 번째 장소는 서울 북촌으로 정했다. 1일 오후 1시 안국역 2번 출구.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다, 꽉 끼는 청바지를 입은 탓에 걷기에 대한 의지가 한풀 꺾였다. 그때 손목에 '또독' 신호가 왔다.
"이번 주에 운동하기 목표를 매일 달성했습니다. 다음 주에도 계속 하실 거죠?"
이렇게 동기부여를 하니 안 움직일수가 없다. 이때까지 소모한 칼로리는 116이다. 1일 목표는 400칼로리로 정했다. 비를 뚫고 링을 채우자.
한샘 DBEW(Design Beyond East and West) 연구소./이범종 기자
◆길 잃고 싶은 동네, 북촌
북촌 안내소에서 오른쪽으로 향해 창덕궁길을 가려다 북촌로를 그대로 가로질러버렸다. 다시 길을 내려가 창덕궁길을 찾아 올라갔다. 마을 분위기를 반영하는 건물과 장식들이 북촌의 대문 역할을 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관광지도를 따라 원서동 고의동 가옥 방향으로 갔지만, 목적지를 또 지나쳤다. 조선시대 상궁이 살던 집터인 원서동 백홍범 가옥 옆에는 층층이 기와가 올라선 '한샘 DBEW 연구소'가 발길을 잡는다. 곳곳이 한옥이니, 한옥 보려다 길을 잃는 경우가 없다.
◆빗속에도 북적이는 마을
우리나라 첫번째 서양화가인 고희동 가옥을 둘러보고 창덕궁길을 따라가면, 인촌 김성수 동상 뒤로 고려대 양식 석조건물 세 채가 우뚝 서 있다. 이곳은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중앙중고교다. 사진을 찍기 시작할때쯤, 여성 관광객들이 하나둘 씩 학교 건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한옥에 살면서 이런 학교에 등교하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다 교문을 나섰다.
한옥 밀집지역은 북촌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나뉘어 있다. 서쪽 밀집지역에 있는 '꼭두랑 한옥'에 들어가 꼭두 구경을 하고 나오니, 한복 입은 외국인들이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있었다. 꼭두랑 한옥의 입장료는 무료다. 내부에서 기념품을 판다.
북촌 생활사 박물관에 전시된 생활용품. 왼쪽부터 갈퀴, 망태기, 씨방태, 삼태기, 소쿠리./이범종 기자
◆아기자기한 생활사 박물관
다시 길을 잃자, '한옥 마을에선 종이 지도만 보자'던 다짐이 흔들렸다. 결국 왼손을 들어 말했다. "시리야, 북촌동양문화박물관까지 가는 길 안내해."
'또독(톡톡) 또독(톡톡) 또독(톡톡).' 갈림길에 가까워질 때마다 알려주는 방향대로 움직이니, 북촌 최고 전망대로 불리는 박물관에 도착했다. 건물을 나와 동네를 걷다 보니 '북촌 생활사 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지난 100년 동안 북촌에서 사용된 생활 물건들이 모여있다. 2000년부터 시행된 북촌지역 한옥 개보수 과정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자, 이경애 관장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수집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이곳의 입장료는 3000원이다. 입장권을 보니, 나는 이곳의 11만3955번째 관람객이다.
돌계단길을 따라 내려오니, 음식점과 전통체험공방, 갤러리가 길 아래로 펼쳐져 있다. 북촌 마을 안내소에 다다를 즈음, 애플 워치가 '디리링' 소리와 함께 손목을 두드린다.
손목을 드니, 물 속에 퍼진 붉은 잉크가 한 바퀴 원을 그린다. 이날 안국역 5번 출구까지 425 칼로리를 소모했다. 시계가 운동으로 인식한 시간은 81분. 링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