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의 주체는 기업인데,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한다면서 정책들은 다 옥죄는 것들뿐이니 정말 답답할 따름입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삼성과 현대차, SK 등 30대 대기업을 비롯해 KB국민과 신한, 우리 등 시중은행에 채용 계획을 요구했다. 기아차 통상임금 패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을 옥죄는 일련의 정책들 속에서 정부가 채용까지 직접 점검하고 나서자 기업들이 불만과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일자리위는 최근 30대 대기업 집단에 올해 하반기 채용 계획과 모범 사례를 제출해달라고 공문을 발송했다.
금융위도 이달 초 주요 시중은행에 오는 2021년까지 5년간의 연도별 채용 계획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증권사에 하반기 채용 계획을 제출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일자리위는 고용노동부가 매년 시행하는 고용실태 조사와 유사한 단순한 실태 조사라고 해명했다.
일자리위 관계자는 "기업이 제출한 채용 실적을 연말 일자리 모범 사례로 소개하고 포상과 홍보 등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채용 계획 제출도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가 국정 1순위로 추진하는 일자리 사업에 강요가 없다고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채용은 대내외적인 상황을 감안해 진행된다"며 "정부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이지만 정부가 채용 계획까지 기업마다 점검하고 나서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오히려 재계는 투자 위축과 고용 차질 등을 우려한다. 새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기아차 패소에 따른 통상임금 범위 확대, 최근 파리바게뜨 불법 파견 논란 등까지 겹치면서 재계는 위기감이 넘어 무력감을 호소한다.
재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불편파견 논란까지 새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들을 보면 기업 입장에서 채용이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 채용 계획을 요구하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현 정부 정책을 보면 기업의 투자를 촉진할만한 정부 정책이 없는 것 같은데, 일자리 늘리기만 요구한다"며 "기업만 너무 몰아치고 있다"고 탄식했다.
일부 기업은 반도체 착시 현상을 지적한다. 대다수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 경제 전체가 문제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에 경제 전반 수치가 좋게 나오자 정부가 기업들의 어려움 호소를 거짓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제 강화, 통상임금 확대 등의 정책의 여파로 어려움이 크게 가중되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단체들은 정부가 기업에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당부하면서 기업을 옥죄기만 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대해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청와대서 열린 기업인들과의 호프 미팅에서 '정부는 경제 정책을 통해 기업의 경제 활동을 돕는 동반자'라고 말은 했지만 지금까지 정책들을 보면 기업의 일방적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권 초인데 벌써부터 기업들 짐이 상당하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 사이에서 5년만 버티자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며 "이런식으로는 정책도 경제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