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기아자동차가 노동자 수만명에 400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근로기준법에서 기준하는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기아차가 노동자 2만7424명(사망자 포함)에게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기아차는 지난 2008년 8월~2011년 10월 상여금과 영업직 근로자에 지급한 일비와 중식비를 제외하고, 기본급과 각 직종별 통상수당을 기초로 시간급 통상임금을 산정했다.
회사는 이를 기초로 노동자들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연차휴가수당을 지급했다.
이에 기아차 직원들은 상여금과 일비, 중식대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연차휴가수당 미지급분 지급분 등으로 1조926억원을 청구했다.
사측은 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이 아니며, 만일 통상임금이라 해도 해당 청구가 신의 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신의칙은 법률관계 당사자가 서로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식으로 권리행사를 해선 안 된다는 일반 규범이다.
재판부는 상여금과 중식대가 소정근로 대가로 노동자에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봤다.
반면 일비는 영업활동수행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고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를 기준으로 한 원금 3126억원과 지연이자 1097억원을 합쳐, 사측이 4223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또 다른 쟁점은 기아차 노동자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노동자 측이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넘는 이익을 추구해, 사용자가 예측 못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울 경우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2013년 대법원 판결을 참고했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다만 노동자들이 노사 합의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로 인해 사측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지지도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2008년~2015년 해마다 1조~16조원의 이익잉여금을 부과했고,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169.14%에서 63.70%로 낮아진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사측이 최근 중국의 사드(THAAD) 보복과 미국의 통상 압력 등으로 영업 이익이 감소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명확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점 등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면, 우리나라 경제에 중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가정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동자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면서도 추가 비용 지출이라며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보는 것도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